[월요 논단] 일본 따라잡기, 아직은 시기상조?

2020-06-01 09:00:00

남영진 / 한국지역신문발전위원회 부위원장
남영진 / 한국지역신문발전위원회 부위원장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가 한국정부와 한국인들의 재난대응 성공사레인 K-방역을 칭찬했다.

마스크 배급제, 신속한 진단키트, 드라이브 스루 등 구체적 사례와 더불어 이를 성실히 지켜온 질병관리본부의 정은경본부장이 국제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에 힘입어 여당은 4,15 총선에서 압승했고 문재인대통령의 지지율은 고공 행진중이다.

지난 4달간 ‘코바사태’기간 중 SNS에에 많은 글들이 올랐다.

우리는 코로나사태를 잘 극복했는데 일본의 아베정부는 엉망이라는 식의 내용도 많았다. 그중 ‘150년 소원인 일본 따라잡기’라는 글이 눈에 띈다. 작년에 이미 봤는데 코로나 이후 다시 올라온 ‘1인당 GNP 일본추월’이라는 내용이다.

일본은 1868년 명치유신이후 부국강병책으로 국력을 신장하고 한국을 병탄했다. 이어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패전했지만 결국 경제입국으로 세계의 선진국이 됐다. 1945년 해방된 한국인들은 지금까지 이를 부러워하며 일본 따라잡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이제는 1인당 GDP 기준으로 일본을 추월해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조금 ‘국뽕’ 냄새가 나는 글이다.

이 글을 읽으면 우선 기분은 좋다. 구체적으로 2차 대전 이후 피식민국이 식민국을 추월한 두 나라가 아일랜드와 한국이라는 거다. 아일랜드는 300년 이상 영국의 지배를 받다 20세기 들어 독립했는데 IT강국으로 2003년 영국의 1인당 GDP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 역사적 성취를 기념하여 수도인 더블린광장에 ‘기념탑’을 설치했다.

왜 이 뉴스가 크게 취급되지 않았는지 궁금해 네이버를 검색했더니 내용은 맞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홈페이지에 2019년 한국의 1인당 GDP(PPP, 구매력지수)는 42,136달러로 일본의 41,502달러보다 높게 나온다. 룩셈부르크가 116,622달러로 1위고 한국이 21위, 스페인 22위, 일본이 23위다. 중요한 경제지표 중 하나에서 일본을 추월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미 2017년에 한국은 일본을 추월했고 지금은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1인당 명목 GDP와는 다른 개념이다. 2018년 '명목GDP'는 일본 39,286달러, 한국 33,346달러로 나온다. '명목GDP'는 일반적으로 국가의 경제력을 표시하는 개념이어서 아직 일본이 한국보다 높다. '구매력지수(PPP)'는 각 국가의 화폐가치와 물가를 고려한 1인당 구매력으로 표시하는 개념이란다.

구매력지수 또한 중요한 경제지표이기 때문에 일본을 넘어섰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일본은 정부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하다’는 세간의 평가가 맞는 것이다. 1인당 명목GDP차이도 6,000달러정도라 조만간 따라잡을 수 있다. 우리에겐 해방이후 일본은 언제나 넘을 수 없는 상대였고 늘 앞서 있는 존재였는데 수치를 보니 이제 만만해 보이기까지 한다. 경제뿐만 아니라 K팝, BTS, 기생충에서 보듯 문화예술과 사회전반에 걸쳐 국격이 높아졌다.

일본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뒤 남북전쟁을 겪고도 박정희대통령이후 공업화와 수출입국으로 여러 면에서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났다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특히 최근 한류열풍으로 90년대 이후 전 세계에 <대장금>등 한국드라마가 유행하고 올해 <기생충>이 콧대 높은 미국 할리우드의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다. K-팝의 총아인 BTS는 한국의 아이돌이 아니라 비틀즈이후 세계의 아이콘이 된 것도 분명하다.

한국일보 기자시절인 1988년-89년 1년 반 일본 도쿄의 게이오(慶應)대학 신문연구소에서 연수를 한 적이 있다. 그 전에 3번 정도 백제유적이 많은 오사카, 나라, 교토 등지와 일본 남부인 큐슈의 가고시마, 구마모토 등지를 돌아본 적은 있지만 식구들을 데리고 현지에서 살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 시절 가장 부러운 것이 도쿄 지하철에 걸려있는 20여개의 지하철, 국철이 이어진 철도망이었다.

우리는 74년 1호선, 84년 2호선이 개통되고 3호선이 시작될 즈음이었는데 복잡한 노선도를 보면서 역시 우리보다 100여년 앞선 일본 근대화의 진면목을 보는 듯 했다. 당시 88서울 올림픽 시절이라 일본TV에서는 수시로 한국특집을 방영했다. 한국의 명승지만 아니라 전통시장, 시골 촌락까지 전국의 모습을 방영했다.

반갑기는 했지만 일본에 비해 초라한 모습이 확연해 좀 위축되기도 했다. 아시아에첫 하계올림픽인 64년 도쿄올림픽에 이어 2번째 열린 서울올림픽이어서 더욱 그랬다. 20-30년의 간격을 따라잡기는 어려워 보였다. 한국 유학생들은 도심이 깨끗하다거나 일본시민들이 법을 잘 지킨다는 등 한국이 한창 뒤떨어져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제 많이 따라왔다. 지하철 철도망이 88년 당시의 도쿄 인근 노선도와 비슷해졌다. 아베정부가 전자업계의 핵심부품 대한수출을 금지했는데도 우리 업체는 잘 대응해나왔다. 자동차 반도체 전자업체등 경쟁력도 그만하다.

하지만 전체국력은 아직 멀었다. 우리가 자주 일본과 비교하는 것은 정신적 극일차원이다. 일본의 크기가 남한의 3배, 인구가 2배 이상인데 단순비교는 어불성설이다. 나아가 중국, 미국을 넣어 한국과 일, 중, 미 비교도 국토의 크기 인구수 등을 감안하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기다. ‘통일한국’이 되어 한반도크기와 1억 정도의 인구라야 시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구와 스위스 같은 ‘강소국’을 지향하는 게 맞다. 경제적 양극화 줄이기, 안정감 있는 사회, 약자에 대한 배려와 법의지배 등 진정한 ‘민주공화국’만들기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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