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 뉴 노말 시대의 출석부

2020-05-28 09:14:21

김대운 / 충훈고등학교 교사
김대운 / 충훈고등학교 교사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배우지 않고는 제대로 살아가지 못한다. 배우는 방법은 많지만 크게 보면 경청과 성찰로 나눌 수 있다.

분류는 쉽다. 남의 말을 듣거나, 나를 돌아보거나. 막상 해보면 둘 다 어렵다. 남의 말을 듣다보면 딴 생각이 떠오른다. 이 사람이 하는 말에 대한 대답이 떠올라야 하는데 자꾸 내 나이가 떠오른다. 잔소리 들을 나이는 지난 것 같은데. 내 생각과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속이 거북하다. 남의 글을 읽다보면 금세 잠이 온다. 요점만 간단히 적으면 좋으련만 세줄 아래부터는 전부 사족 같다.

내 뒤를 돌아보려니 앞으로 걸어갈 길도 구만리다. 돌아볼 겨를이 없다. 나를 돌아보려니 내 잘못을 시인해야 할 것 같아 겁이 난다. 용기 내서 돌아보아도 잘못을 합리화할 구실부터 찾게 된다. 내 잘못을 변명해줄 이유를 찾으면 잃어버린 가족이라도 찾은 것처럼 반갑다.

하지만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남의 말을 듣고 나를 돌아봐야 한다. 몸에 좋은 약은 쓰다는 옛사람의 말을 되뇌며, 듣기 싫은 말도 들어야 한다. 남의 말을 듣다가 내 나이가 떠오를 땐, 이 정도는 참고 들을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글은 말보다 오래 고민한 결과이므로 말보다 배울 게 많다. 남의 글을 읽다가 잠이 올 땐, 오늘밤 숙면을 위해 읽을 곳은 몇 번째 줄인지 밑줄 쳐가며 배울 거리를 찾아야 한다.

늘상 반복하던 자기 일상을 되짚어볼 줄 알아야 하고, 더러는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실수도 겪어봐야 한다. 익숙하게 다니던 길도 가끔은 낯선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간 무심코 지나쳤던 오래된 새로움을 찾아봐야 한다.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며 새로 익혀볼 필요도 있다. 새로운 길을 가다보면 오래된 길에서 배웠던 것을 응용해서 적용할 기회도 생긴다. 내 잘못을 덮어줄 이유를 찾기 전에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되짚어봐야 한다.

코로나 19 이후 뉴 노멀의 시대가 도래했다고들 말한다. 멋진 신조어다. 새로운 표준. 2008년 무렵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새로운 경제 질서를 일컫는 말로 등장한 뉴 노멀은 이제 2020년 무렵 세계 전염병 위기 이후 새로운 사회 질서를 일컫는 말로 뿌리내렸다. 시장과 정부는 언택트 산업을 선도하기 위해 잰걸음을 달린다. 정치지도자들은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천명한다. 뉴 노멀의 세부 내용이 무엇으로 채워질지는 아직 모른다. 위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고, 빠른 시일 내에 결론 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학교도 뉴 노멀을 뿌리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교사들의 손에는 학교 상황에 맞게 세부 내용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라는 교육부의 지침이 쥐어져 있다. 아침마다 학생들을 열감지 카메라로 관찰하며 무사한지 확인한다. 마스크를 쓰고 교실의 모든 아이들이 들을 수 있는 크기로 말하다보면 숨이 가쁘다. 점심 시간 직전 수업은 종료령이 울리기 전 다시 한 번 발열 체크를 하고 교실마다 시간차로 학생들을 급식실까지 인솔한다. 매 수업 종료 2분 전엔 마스크 착용과 물리적 거리두기를 당부하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1, 2학년은 온라인 수업과 등교 수업을 병행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모두 처음 겪어보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과거의 제도와 관행이 변화된 상황과 맞물려 어색한 장면을 연출한다. 예컨대 기한 내에 수업 영상을 시청하고 과제를 제출하지 않으면 그 수업 시간은 결과(결석) 처리하는 식이다. 기존 출석 관리 규정을 전면 개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속하게 대응한 결과인데, 장기적 관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등교수업을 전제로 만들어진 전산망에 온라인 수업 이수 상황을 출결 형태로 입력하려니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온라인의 장점이 무엇인가? 언제, 어디서나 접속하여 원하는 정보를 얻는 것 아니던가. 과제 제출이 몇 시간 늦었다고 해서 결과 처리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의문이다. 애초에 온라인 수업 이수 상황을 출결 개념으로 접근한 것부터 성찰할 필요가 있다. 학습 독려 목적이라면 다른 방식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온라인 수업 출결 처리를 놓고 누적된 학생과 교사들의 피로도 또한 고려해야 할 것이다. 기존의 오래된 출석 개념을 바탕으로 뉴 노멀을 수립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김대운 / 충훈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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