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에세이] 코로나19, 사람에 대한 예절이 먼저

기사입력 : 2020-02-28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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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운 / 충훈고등학교 교사
요새는 외출할 때 휴대폰보다 마스크를 먼저 챙긴다.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다. 마스크는 단순한 개인위생용품이 아니다. 집단 감염으로 마스크 부족에 시달리는 자매도시에 마스크를 선물함으로써 우애를 표현하는가 하면, 마스크를 실어 나르는 군용 차량 행렬은 전방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아군에게 보급품을 전하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마스크는 어느새 우리 공동체의 토템이 되었다.

즉 우리가 경배해마지않는 성스러운 상징이 된 것이다. 고전사회학자 뒤르켐은 원시종교 연구를 통해 종교적 사고의 본질을 ‘세상을 성(聖)과 속(俗)으로 구분하는 신념체계’로 규정한 바 있다. 토템은 사람들을 하나로 결속하는 성스러운 힘을 물질적 형태로 표현한 것으로서, 그러한 결속을 좀 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원시 부족 사회 구성원들은 성스러운 것을 숭배하는 동시에 속된 것과 접촉하여 오염되는 것을 경계했고, 각종 의례를 통해 이러한 믿음을 실천했다.

단순히 전염병 예방이라는 실용적 목적만으로는 마스크 열풍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마스크 착용은 우리에게 공동체의 성스러운 도덕적 질서 안에 안전하게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준다. 마스크를 착용한 타인은 나처럼 질서 안에 있으므로 나와 동등한 사람으로 대접해야 한다. 바꿔 말하면, 마스크를 하지 않은 타인은 그 질서 바깥에 있는 것이고, 나와 동등한 사람이 아니다. 언제라도 기침해서 비말을 통해 나를 감염시킬지 모르는 존재,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바이러스 숙주 같은 존재로 대접받는다. ‘사람’은 ‘숙주’에게 그 경계심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한마디로 마스크 없이는 사람대접 받기 어렵다.

하루에도 수차례 울리는 확진자 이동경로 안내 문자를 보며, 자신이 갔던 곳과 겹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조금 더 적극적인 사람은 자신과 관련 있는 사람의 안위까지 살펴보는 것 같다. 상당수 교사는 방학 중 지정된 출근일에만 학교에 간다. 출근일을 앞둔 어느 날 필자는 동료 교사에게 뜻밖의 메시지를 받았다.

필자의 집 근처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몇 시간 전 이미 안전 안내 문자를 통해 확인한 내용이었다. 조심하라는 안부 메시지 정도인 줄 알았다. 두어 차례 더 메시지를 주고받고, 오후 늦게 걸려온 전화 통화 후에야 그 진의를 파악하고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적극적으로 필자의 출근을 만류하는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으나, 확진자와 접촉하거나 이동경로가 겹친 것도 아닌데 출근을 피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날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과 대면하면서 이성보다 감정이 강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사람들의 공포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그 공포는 위기경보 수준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TV 화면과 신문 지면을 재난 영화에 나올법한 풍경과 나레이션으로 가득채운 언론의 영향도 크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언론의 보도를 접한다. 포털의 알고리즘은 비슷한 방향의 보도를 끊임없이 제시한다. 몇 년 전 마블에서 제작한 드라마 ‘에이전트 오브 쉴드’시리즈를 3일 밤낮으로 보고 나서 잠시나마 천지분간 못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드라마 속 빌런인 ‘하이드라’ 같은 조직이 정말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자의든 타의든 온 국민이 전염병 뉴스에 푹 빠져 있는 상황에서 ‘신천지’라는 빌런까지 출연하니 사람들의 공포가 합리적 수준을 넘어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시국에 누구보다 침착해야 할 정치인들은 코로나19가 총선 표심에 미칠 영향에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고 잔뜩 흥분한 상태에서 각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코로나19 사태를 소비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는 감염 공포보다 격리 공포에 가깝다. 확진 판정을 받는 순간 마스크 착용 여부로 대접이 달라지는 차원을 넘어 공동체로부터 완전히 격리될지 모른다는 공포. 생물학적 죽음보다 사회적 죽음을 더 무서워하는 것이다. 그 공포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내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는 예절이다. <김대운 /충훈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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