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통의 시작은 경청이요 토론의 완성도 경청이다

기사입력 : 2020-01-09 09:5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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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순 /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말, 잘하기보다 잘 듣기가 중요한 이유

지난 1일 JTBC 신년특집 토론 방송이 1주일이 더 지났는데도 이슈가 끊이질 않는다. 언론개혁을 주제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전 진중권 교수와 국민대 이창현 교수, 한양대 정준희 겸임교수 등 스펙터클한 패널로 시선을 끌면서 기대감을 모았지만 방송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좀더 정확하게는 혹평이 많았다. 지난 토론 방송은 몰입해서 시청했지만 남는 게 없이 공허한 느낌은 필자만의 소회가 아닐 것이다. 단순하게 재미있다 없다로 말할 정도가 아닌 그 이상의 깊은 사색이 절실했다.

무엇보다 상대의 말은 듣지 않고 마구잡이식으로 자기 말 폭탄을 터트리는 토론장면을 보면서 우리 나라가 선진국이란 사실이 민망했다. 갈등과 분열의 여의도 국회 장면과 말폭탄 토론 장면이 겹치면서 더욱 그랬다. 토론 문화는 한 나라의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이기도 하다. 정치 수준이 낮은 경우 토론 문화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 세삼 공감된다. 고대 그리스가 민주주의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정치, 경제 사회 주요 사안에 대해 토론을 의사 결정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잘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신년특집 대토론이라면 논거를 갖춘 품격 있는 논쟁과 그에 상응하는 솔루션이 있어야 했다. 분노를 주체치 못하고 주제와 상관없는 말 폭탄을 던지는 패널이나 이를 방치하는 진행을 토론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설령 노이즈에 시청률만 계산한 토론이라 해도 혹은 지지하는 진영을 향한 깊은 뜻과 범인은 생각지도 못할 노림수가 있다 해도 신년특집으로 갈등 유발하며 시창자를 기만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토론이란 이견을 가진 상대가 있기 마련이고 상대방의 말을 차분하게 경청할 수 있어야 이견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 가능해진다. 이런 과정에서 상대를 설득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지난 토론에서 경청의 힘이 무엇인지 잘 듣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제대로 실감나게 확인해준 순간이 있었다. 주제와 동떨어진 말을 마구 쏟아내는 패널과 개입하지 않는 사회자를 향해 “토론 주제에 맞는 말씀을 해야지요. 사회자 비용도 주나요?”. 다른 패널과 달리 흥분하지 않고 줄곧 경청하는 모습을 보이던 국민대 이창연 교수의 한마디가 말 폭탄과 사회자를 단 한 방에 제압시켰다. 진행을 촉구하면서 토론을 살려낸 것이다.

주제에서 막 벗어나려는 순간, 경청의 힘으로 기지를 발휘했던 것이다.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이 교수의 순발력 넘치는 지적은 상대의 말에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다. 자기 말만 앞세우지 않고 상대의 말을 잘 듣고 있을 때 적절한 반격이 가능한 것이다. 이 교수의 한마디가 분노의 말 폭탄 보다 훨씬 설득력이 높았다는 사실이 확인 된 순간이다.

듣기의 시작이 곧 소통이다. 말하는 양과 속도를 줄이고 상대의 말을 귀담아들으려는 자세에서 소통이 시작된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면 절제의 언어가 가능해진다. 감정을 절제하면서 담아낸 언어는 강한 울림이 있어서 설득력이 있게 마련이다.

이제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아무 말이나 마구 내뱉는 대신에 상대의 말은 경청하는 자세와 경청의 힘에 관심을 갖아야 한다. 경청하는 마음 자세로는 갈등을 야기하고 반목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2019년 우리 사회는 유독 갈등하고 반목했다지만 2020년은 달라야 한다.

총선이 이제 100일도 남지 않았다. 총선이 다가오면 후보들은 유권자들을 향해 또 얼마나 많은 말 폭탄을 쏟아 낼 것이지 우려스럽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총선 후보들은 조금은 힘을 빼고 말을 줄이라고 권하고 싶다. 어째에 힘이 들어가면 헛스읭이 나오는 것은 골프뿐이 아니다. 말로 갈등을 유발하기보다는 상대의 말을 경청하며 소통으로 가는 길에 화합이라는 답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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