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자율협약 조건으로 용선료 인하 등 제시핶으나
선주와 협상 실패, 한진그룹 자구안도 실망스런 수준
법원, 2017년 2월 17일 회생절차 폐지, 파산 선고
선복량 점유율 1.7%까지 감소하는 등 韓해운업 위상 추락

선사들은 2008년 이후 불황의 파고가 경영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얼라이언스 내 경쟁이 격화하며 운항 효율성이 급격히 저하되었다. G6 얼라이언스의 공동운항 체제에서도 운항비용이 증가하고 초대형선의 신규 확보가 지연되면서 수익성은 악화되고 규모 경쟁에서도 뒤처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2015년 들어서는 운항선박의 용선료와 금융비용 부담이 급증하고 회사채 만기까지 도래하는 바람에 유동성 위기가 고조되었다. 용선료 재협상과 신규 자금조달을 추진했지만 이마저도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지연됨에 따라 경영정상화의 길은 더욱 요원해졌다.
주채권은행인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은 2016년 초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회생을 위해 구조조정 계획을 병행하는 채권단 자율협약을 추진했다. 당시 한진해운은 부채 규모가 5조6000억 원에 이르고 부채비율도 1000%를 넘어선 상태였다. 채권단은 신규자금 지원에 앞서 용선료 인하 조정, 채무 재조정 등을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이 조건이 성사돼도 1조 원 이상의 자금이 부족할 것으로 판단됨에 따라 모회사인 한진그룹에 대해서도 자구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현대상선이 2016년 6월 글로벌 선주사들과의 협상에서 용선료 인하에 성공하며 일정한 성과를 보인 것과는 달리, 한진해운은 선주단, 특히 그리스·독일계 선주사들과의 협상에 실패해 채권단이 내건 용선료 인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한진그룹이 마련하겠다는 4000억 원의 자구안도 채권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결국 한진해운은 이튿날인 8월 31일 서울중앙지법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에 대해 법원이 2017년 2월 17일 회생절차 폐지와 파산을 명령하는 선고를 내렸다. 이로써 한진해운은 기업 청산 절차를 거쳐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행은 한국 해운업 사상 최대의 충격이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해운시장에도 큰 파장을 일으키며 전례 없는 물류대란을 몰고 왔다. 세계 각국의 항만에서는 항만당국과 하역업체가 운항비·항만료 미지급을 이유로 한진해운 선박 80여 척을 억류하거나 입항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LA·롱비치, 로테르담, 함부르크 등 미국·유럽의 항만에서는 화주들의 화물 인도가 기약 없이 지연되는 혼란이 벌어졌다. 국내에서는 800여 개 화주 기업의 화물이 선박에 실린 채 출항하지 못하거나 입항이 지연돼 수출납기 불이행 등 계약위반으로 클레임을 받아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보는 일도 발생했다.
정부는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개최하고 합동대책 T/F를 가동하는 등 범부처 총력 대응체계로 전환했다. 그리고 긴급하게 현대상선을 통해 13척의 대체선박을 투입하여 수출입 화물을 처리하도록 하는 비상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한진해운의 파산이 한 기업의 몰락에 그치지 않고 ‘국가 해운망 붕괴’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미 한진해운이 보유했던 롱비치·알헤시라스·가오슝 등 터미널의 지분을 상실해 한국 선사의 글로벌 거점이 약화되고, 세계 주요 항로의 점유율이 경쟁 관계에 있던 외국 선사들에 흡수되는 등 그동안 쌓아온 항만·운항 네트워크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또 우리나라가 2M, OCEAN, THE 얼라이언스 등 3대 글로벌 얼라이언스 중 어느 곳에도 정식 회원으로 참여하지 못해 국제적인 협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얼라이언스 공백국’이 되었다는 점도 앞날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었다. 이는 한국 해운에 매우 위협적이고 치명적인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세계 해운업계와 화주들에게 한국 해운의 신뢰도가 추락한 것 역시 뼈아픈 부분이었다. 해외에서는 “한국 국적선사 = 파산할 수 있는 선사”라는 인식이 확산하며, 해외의 화주·은행·보험사 등이 한국 선사와의 계약 조건을 강화하는 무형의 손실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 결과 한국 해운은 단기적으로 약 3조 원에 이르는 운임 손실을 입었을 뿐 아니라 ‘코리아 프리미엄’ 등으로 미주 항로에서 더 비싼 운임을 지급하는 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1만 명에 가까운 실업자도 양산했다. 장기적으로는 국적선사의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 축소에 따른 수출상품의 경쟁력 약화, 한국 해운의 핵심역량 유출과 신뢰도 추락에 따른 해운항만산업의 성장동력 약화 등의 피해를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진해운이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를 상실하면서 2017년 2월까지 부산항의 환적물동량이 큰 폭으로 감소하기도 했다. 또 우리나라 원양 정기선의 선복량은 2016년 8월 105만TEU로 세계 시장 점유율 5.1%를 기록한 이후 급락해 2017년 8월에는 35만TEU로 1.7%까지 감소했다. 세계 물동량 점유율도 2015년 11.9%에서 2017년 1~7월 기간 5.7%로 절반 이하로 떨어져 버렸다.
<자료: HMM 50년사>
채명석 빅데이터뉴스 기자 cm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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