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승만과 한동훈의 평행이론

2023-09-05 09:45:06

버네이즈 아마존출판대행 대표 한승범
버네이즈 아마존출판대행 대표 한승범
평행이론은 서로 다른 시대에 살면서도 두 사람의 운명이 같은 패턴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이론을 말한다.

에이브러햄 링컨과 존 F. 케네디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100년의 간격을 두고 전개된 그들의 삶은 놀랍게도 많이 비슷했다. 링컨은 1846년에, 케네디는 1946년에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고, 링컨은 1860년에, 케네디는 1960년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들은 모두 암살되었으며,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위인들 중 하나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875년 3월 26일 조선에서 태어났고,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거의 백 년 후인 1973년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이승만 대통령은 왕족 집안에서, 한동훈 장관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금수저를 물고 자랐다. 두 사람 모두 공부에 독보적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조선의 천재로 불렸으며, 단 5년 만에 미국의 명문 대학인 조지 워싱턴대, 하버드대, 프린스턴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모두 받았다. 한동훈 장관도 그를 이어가는 인물로서, 강남 8학군 출신이며 서울대 법대에서 학부 시절 사법고시를 합격, '소년급제'를 달성했다. 또한 역대로 가장 어린 나이에 검사장이 되었으며, '최연소 법무부 장관' 타이틀도 얻었다.

두 천재의 공통점 중 하나는 영어 실력이다. 19세기 조선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승만 대통령의 영어는 원어민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청년 시절 이승만은 배재학당 졸업식에서 '한국의 독립(The Independence of Korea)'이라는 제목의 영어 연설을 유창하게 진행해 많은 외국 공사들을 놀라게 했다. 또한 5년 7개월 동안 투옥된 한성감옥에서 그는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더욱 향상시켰다.

한동훈 장관의 영어 실력은 국내외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영어 논문을 표절 분석 프로그램인 카피킬러에 넣으면 표절 지수는 0%가 나온다. 2004년에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석사(LL.M) 과정을 이수하고, 이듬해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그의 IQ가 175라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다.

이승만 박사와 한동훈 장관은 또한 미모를 겸비했다. 이승만은 조선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인정받는 미남이었고, 그의 패션 감각과 매너는 많은 호감을 받았다. 그는 미국에서 맥아더 장군, 우드로 윌슨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교류했으며, 엘리너 루스벨트 영부인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의 친분도 구축했다.

조선에서 온 청년 이승만과 오스트리아의 금발 미녀 프란체스카 도너와의 결혼은 당시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미국 위스콘신대학의 동아시아연구센터 부소장, 데이비드 P. 필즈 박사는 이승만이 미국에서 아이돌 스타 같은 인기를 누렸다고 저서 <외국인 친구들: 이승만, 미국 예외주의, 그리고 한국의 분단>에서 밝혔다.

한동훈 장관의 매력은 명백하다. 큰 키와 늘씬한 몸매, 빼어난 패션 감각, 그리고 뛰어난 언변으로 대부분의 아이돌 스타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매력은 단순히 외모뿐만 아니다. 그는 항상 겸손하게 국민 앞에서 낮은 자세를 유지한다. 인간의 진정한 품격은 약자 앞에서 나타나곤 한다. 그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많은 이들을 감동시킨다. 모든 것을 갖춘 한동훈 장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그렇게 빛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진영 내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경향이 있다. 한 가지 이념이나 사상에 편승하여 상대방을 무조건 반대하는 극단적인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것은 ‘지적 게으름’ 탓이다. 단순화된 세계관과 사회적 소속감이 사람을 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승만 박사와 한동훈 장관은 진영 논리에 얽매이지 않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승만 박사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지만, 대한민국의 번영을 위해 소위 ‘빨갱이'로 불린 사람들과도 협력했다. 실제로, 대지주의 땅을 빼앗아 소작농에게 주는 농지개혁을 진행하려고 공산주의자인 죽산 조봉암에게 초대 농림부 장관직을 맡겼다.

‘검사 한동훈’이 걸어온 길은 정말 놀랍다. ‘재계의 저승사자’로서 재벌 총수들을 잡아들이고, 전직 대통령 두 명을 구속시켜 ‘조선 제일검(檢)’으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황태자로 불리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와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수사를 지휘하고 난 뒤부터는 정권 눈밖에 났다. 한동훈 검사장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독립운동과 같은 고난의 길을 선택하였다.

‘검사 한동훈’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나오는 대로 수사하는’ 원칙주의자였다. 그는 진영 논리가 아닌 '정의와 상식의 법치'가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고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를 '탈냉전 스마트 우파'라 부른다.

7월 15일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이 대한민국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영어에는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을 알아본다(Like recognizes like.)’는 말이 있다. 역시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

두 사람은 닮아도 너무 닮았으며, 그들의 삶의 궤적도 매우 유사하다. 이승만 박사가 오늘의 위대한 대한민국의 토대를 세웠다. 100년 뒤 태어난 한동훈 장관이 그 잘 차려진 밥상에서 대한민국의 어떤 미래를 만들지 기대가 크다. 20세기 최빈국이었던 조선이 21세기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로 거듭나는 데, 두 사람의 평행이론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Parallel Lives of Syngman Rhee and Han Dong-Hoon

Han Seung-beom, CEO of Bernays Amazon Publishing Services

Parallel theory posits that two individuals from distinct eras can share uncannily similar trajectories. Abraham Lincoln and John F. Kennedy are often cited as textbook examples. Their lives, separated by a century, held striking resemblances: Lincoln was elected to the House of Representatives in 1846 and to the presidency in 1860, while Kennedy mirrored this timeline in 1946 and 1960. Both leaders tragically met their end by assassination, securing their places as two of America's most revered figures.

Syngman Rhee, South Korea's inaugural president, was born in 1875 in Joseon, while Han Dong-Hoon, a Minister of Justice, was born nearly a hundred years later in 1973 in South Korea. Rhee hailed from a royal lineage, and Han from an affluent family, allowing both to enjoy privileged upbringings. Their intellectual prowess was evident early on: Rhee, celebrated as a genius in Joseon, achieved Bachelor's, Master's, and Ph.D. degrees from prestigious American institutions -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Harvard, and Princeton, respectively - in a mere five years. Han, echoing Rhee’s brilliance, hailed from the elite 'Gangnam 8 School District', and cleared the rigorous Judicial Examination during his undergrad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Law School. Subsequently, he was titled the youngest prosecutor-general and youngest Minister of Justice in history.

Their shared brilliance extended to linguistic mastery of English. Rhee, despite being raised in 19th-century Joseon, was a fluent English speaker. He astonished foreign dignitaries with his eloquent speech, "The Independence of Korea", delivered in English during his graduation at Pai Chai School. During his 5 years and 7 months imprisonment in Hanyang Prison, his English prowess only sharpened.

Han's English proficiency is well-acknowledged both domestically and internationally. Astonishingly, when his English academic papers are run through the plagiarism detection tool, Copykiller, they score a plagiarism index of 0%. In 2004, Han graduated with a Master of Laws (LL.M) from Columbia Law School and obtained his New York State attorney qualification the following year. Rumors even claim his IQ to be a staggering 175.

Both Rhee and Han also boasted good looks. Rhee, renowned for his attractiveness both in Joseon and the US, was praised for his sartorial sense and demeanor. In the U.S., he fostered relationships with figures like General MacArthur, Presidents Woodrow Wilson and Franklin Roosevelt, even forming close ties with First Lady Eleanor Roosevelt and physicist Albert Einstein.

Rhee's marriage to Francesca Donner, an Austrian beauty, seemed almost implausible for a young man from Joseon. Dr. David P. Fields, Deputy Director of the Center for East Asian Studies at the University of Wisconsin, notes in his book Foreign Friends: Syngman Rhee, American Exceptionalism, and the Division of Korea that Rhee enjoyed a celebrity-like status in the U.S.

The allure of Justice Minister Han Dong-hoon is palpable. With his towering height, slender frame, impeccable fashion sense, and eloquent speech, he has captivated more hearts than many of Korea's idolized stars. However, the magnetism of Han isn't just skin deep. His humbling demeanor before the nation is emblematic of a leader who understands that true nobility shines brightest when extending compassion towards the vulnerable. His benevolent gestures toward the marginalized resonate with many, epitomizing the very essence of noblesse oblige.

In an age where ideological divisions run deep, where people fiercely champion their affiliations and shun those who oppose them, Han represents a rarity. Many fall into this trap of intellectual lethargy, opting for simplistic worldviews that provide comfort through a sense of belonging.

There's a discernible parallel between Dr. Syngman Rhee and Justice Minister Han. Though Rhee was a staunch anti-communist, he collaborated with those dubbed 'Reds' for the prosperity of South Korea. Notably, he entrusted the land reform policy – redistributing large estates to tenant farmers – to Jook-san Jo Bong-am, a communist.

The trajectory of ‘Prosecutor Han Dong-hoon’ is nothing short of remarkable. As the metaphorical 'grim reaper' of the corporate world, he reined in powerful conglomerate leaders and arrested two former presidents, earning him the moniker 'The Premier Prosecutor of Joseon'. But the tides shifted post his investigations into the family of a former justice minister, Cho Kuk, and subsequent allegations against Yoo Jae-soo. Unyielding in his principles, Han took a path fraught with challenges, reminiscent of Korea's fight for independence.

Han’s investigations never played to the gallery of conservatism or progressivism. He held a steadfast belief that it's not partisan politics, but the 'rule of law rooted in justice and common sense' that will spur Korea’s progress. No wonder he’s dubbed the 'Post-Cold War Sophisticated Conservative'.

At the Jeju Forum on July 15th, Han stated, "The land reforms of the Rhee government played a pivotal role in South Korea's development." There’s an English saying, 'Like recognizes like.' Indeed, one visionary acknowledges another.

Their lives, though separated by a century, bear uncanny resemblances, forging trajectories that mirror each other. Dr. Syngman Rhee laid the foundation for modern Korea, and the nation eagerly awaits to see the future Han Dong-hoon will craft upon that well-set table. From being one of the poorest nations in the 20th century, Korea's rise to a global powerhouse in the 21st century may well be attributed to the synergistic visions of these two lumina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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