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반도체 '대란' 이겨낸 현대모비스의 반성문…"K-생태계 만들겠다"

성상영 기자

2025-09-29 18:51:37

'K-차량용 반도체 얼라이언스' 추진
팹리스·파운드리·패키징·R&D 총망라
자생적 공급망 구축해 미래車 주도

이규석 현대모비스 사장이 29일 경기 성남시 더블트리 바이 힐튼 서울 판교 호텔에서 '제1회 차량용 반도체 포럼(ASK)'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이규석 현대모비스 사장이 29일 경기 성남시 더블트리 바이 힐튼 서울 판교 호텔에서 '제1회 차량용 반도체 포럼(ASK)'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빅데이터뉴스 성상영 기자] 현대모비스가 국내 차량용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발 벗고 나섰다. 삼성전자와 LX세미콘, DB하이텍 같은 기업과 연구기관을 한 데 모아 'K-차량용 반도체 얼라이언스(연합)'를 구축해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를 꾀하겠다는 전략이다. 민간 주도로 이 같은 계획을 추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현대모비스는 국내에 자생적인 공급망을 갖춰 외산 의존도를 줄인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현대모비스는 29일 경기 성남시 더블트리 바이 힐튼 서울 판교 호텔에서 '제1회 차량용 반도체 포럼(ASK)'을 열고 이 분야 생태게 구축에 첫 발을 뗐다. 이날 포럼에는 국내 완성차 기업을 비롯해 팹리스(설계 전문), 파운드리(수탁 생산 전문), 디자인 하우스(전자 회로 설계), 패키징, 설계 도구 전문 회사 등 반도체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기업·연구기관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각 기업·기관을 대표해 자리를 채운 최고경영자(CEO)급 임원 80여 명은 '자생력 강화'에 뜻을 모았다. 이들은 국내 차량용 반도체 생태계 조성 필요성에 공감하며 국산화 방안과 협력 체계 구축, 기술 방향성 등을 주제로 발표와 토의를 이어갔다. 현대모비스는 ASK를 매년 정례화하고 스타트업과 기술 기업, 협회 등으로 문호를 넓힌다는 방침이다.

이규석 현대모비스 사장은 "독자적인 반도체 설계 역량 확보와 함께 팹리스, 디자인 하우스와 공동 개발을 추진하고 주요 파운드리와도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며 "정보기술(IT)이나 모바일에 특화한 기업의 신규 진출을 적극 장려하고 국내 차량용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자동차 부품사인 현대모비스가 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들고 나온 건 그만큼 조급함이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자동차 산업은 자율주행, 전동화,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을 핵심 키워드로 급변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 반도체가 있다. 차 한 대에 들어가는 반도체 개수만 봐도 내연기관차는 200~300여개인 반면 최신 전기차는 500~10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율주행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면 그 개수가 2000개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반도체 없이는 완성차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실제 완성차 업계는 2021년과 2022년 전후로 '반도체 대란'을 겪었다. 코로나19와 물류난으로 차량용 반도체가 적기에 공급되지 않으면서 차량 생산이 지연된 탓이다. 당시 현대차·기아 인기 차종이던 제네시스 GV80은 신차 출고 대기 기간이 2년 6개월까지 늘었다. 반도체 부품이 많이 들어가는 하이브리드·전기차는 구매 계약을 하더라도 10개월~1년 6개월 뒤에나 차를 받을 수 있었다.

반도체 강국이라 자부하던 한국에서 반도체가 없어 차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국내 차량용 반도체 생태계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업계 안팎에서 터져 나왔다. 세계 100대 차량용 반도체 기업 중 한국 회사는 5개사에 불과하고 이들의 시장 점유율 역시 3~4%에 그치는 상황이다. 국내 반도체 산업은 선단 공정(미세화 공정), 고집적·고성능 제품 위주였지만 차량용 반도체는 미세 공정보다는 안정성·내구성이 중요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차량용 반도체 개발 과정이 길고 품질 인증 절차가 엄격하다는 점도 진입 장벽이 됐다. 많은 반도체 기업이 투자 대비 효율이 낮다고 본 것이다. 현대모비스가 가능한 한 많은 기업을 ASK에 끌어들여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겠다고 총대를 멘 배경이다. 국내 최대 부품사인 현대모비스로서는 지난 반도체 대란에서 뼈 아픈 교훈을 얻은 셈이다.

반도체 대란 이후 현대모비스는 자체 개발에 나섰다. 현재 전원·구동·통신·센서 등 반도체 16종을 자체 개발해 외부 파운드리를 통해 생산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전기차 주행 거리를 좌우하는 전력 반도체와 핵심 부품을 함께 개발하면 기존보다 최장 2년 가까이 연구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 의의는 단순히 공급망 안정화에만 있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업계에 따르면 세계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연 평균 9% 이상 성장해 오는 2030년에는 1380억 달러(약 200조원)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이 가운데 70%는 현대모비스가 주력하는 인포테인먼트와 커넥티비티,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전동화 반도체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이번 포럼을 계기로 생태계 구축에 참여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설계부터 품질 관리까지 전 과정에서 확보한 연구개발(R&D) 노하우를 협력사들과 적극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성상영 빅데이터뉴스 기자 showing199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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