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8년에 크릭톤이라는 영국 의사가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상태에 대해 기록했는데 그는 타고나거나 질병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았다. 1800년대 중반 의무교육이 시작되면서 밖에서 뛰놀던 모든 아이들이 실내에 들어와 일정 시간 조용히 앉아있어야 한다는 요구를 받기 시작했다. 의무교육을 시작한 모든 나라에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학생들에 관한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1902년 조지 스틸이라는 영국 의사는 이런 문제가 남자 아이들에게 많으며 가족력이 많다고 하면서 도덕성(moral)의 부족이라 해석했다. 도덕심을 체벌을 통해 가르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던 중 1917년부터 1919년 사이에 세계적인 뇌염 인플루엔자 유행이 있었고 6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살아남은 사람에게도 후유증이 심각했는데 특히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충동성이 두드러지면서 사람들이 행동문제가 도덕성이 아닌 뇌로부터 기인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1947년에는 오늘날 ADHD, 학습장애, 품행장애로 세분화해서 진단되는 아이들을 통틀어 미세뇌기능부전(minimal brain dysfunction)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뇌의 작은 손상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다. 1957년에는 과잉행동/충동조절장애(hyperkinetic impulse disorder)라는 더 세분화한 명칭으로 바뀌어 부르게 되었다. 음모론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ADHD가 제약회사가 만들어낸 질환이라고 주장하지만 최초의 ADHD 치료제인 리탈린(Ritalin)은 1961년이 되어서야 시장에 나오기 시작한다.
1968년에는 다시 산만한 문제의 원인을 부모와 주변 환경에서 찾는 세력이 다시 득세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진단명이 과잉행동반응(Hyperkinetic Reaction of Childhood)으로 바뀐다. 산만한 행동을 스트레스에 대해 반응으로 본 것이고 스트레스를 줄이면 증상이 없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담고 있다. 1970년 워싱턴 포스트 지는 네브라스카 주 아동 중 5-10%가 약을 복용하고 있다면서 연방정부의 대책을 요구하는 기사를 내놓았고 이후 엄격한 처방규제로 인하여 처방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1975년 점차 줄어가던 ADHD 환자 수가 다시 늘기 시작한다. 장애교육법이 통과되면서 ADHD로 진단받으면 각종 편의제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ADHD부모가 정치인 그리고 변호사와 함께 자녀들의 권익을 주장해온 결과였다. 그리고 1980년 진단명이 ADD(주의력결핍장애)로 바뀐다. 과잉행동은 나이가 들면서 좋아질 수도 있으며 과잉행동만 있는 아이들은 나중에 적응에 그다지 문제가 없었다는 연구결과를 반영한 변화였다. 과잉행동은 중요한 증상이 아니고 주의력결핍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졌고 이때부터 각종 미디어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한다.
1987년 진단명이 ADD에서 ADHD로 바뀌고 이 진단명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과잉행동 없이 주의력결핍만 있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으며 전두엽이 감정이나 자동적 반응을 억제하는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과잉행동/충동성 증상을 한 묶음으로 묶어서 주의력 결핍과 같은 중요성을 부여한다.
이병학 기자 new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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