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철의 펀치펀치] 버림받은 나경원 전 의원

2023-01-14 10:19:03

문인철 위원
문인철 위원
13일 오전까지만 해도 직함이 있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나경원 부위원장이었다. 기후환경 나경원 대사이기도 했다. 둘 다 장관급이다. 대통령이 당일 오후에 두 직책 다 해임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장관급으로 해임 최초라는 타이틀까지 갖게 되었다. 이제 직함이 없는 자연인 나경원이다.

이날 오전 나 전 의원은 저출산위 부위원장직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바로 비감한 표정과 마음으로 사찰을 찾아갔다. 윤석열 대통령이 예비 후보 시절 찾았던 단양 사찰 그곳이다. 스님으로부터 “무소의 뿔처럼 고고하게 가라”는 덕담도 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민의힘 당 대표 출마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대통령이 어떤 생각이든 고고하게 가는 길을 고민했을 것이다.

과감하고 단호하게 사직서를 제출한다. 고독한 결심을 위해 바로 산사를 찾는다. 대통령하고도 인연이 있는 스님으로부터 한 말씀 듣는다.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다 뉴스가 된다. 얼마나 폼 나는가. 과거 대선주자급으로부터 봐왔던 모습이다. 한껏 취했을 수도 있겠다.

반나절 만에 산통이 깨졌다. 대통령이 사표를 처리하는 단순한 수순이 아니었다. 해임이다. 잘라버린 것이다. 잘리게 된 동기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다. 간단하다. 당 대표 출마를 위한 정치적 행보가 못마땅한 것이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지체없이 결정했다. 나 전 의원은 4선 의원 출신이다. 원내대표도 역임했다. 이 정도면 관록 있는 정치인이다. 그런 정치인이 권력을 우습게 보다 당한 것이다. 관록이 의심스럽다. 대통령이 임명한 고위직에 있으면서 대통령의 뜻을 어기는 것은 한판 뜨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최고 권력자한테 덤빈 것이다.

나 전 의원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개정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헌·당규도 유리하다. 당원투표 비율 100%로 지도부가 결정된다. 이제 전체 지지율이 아니라 국민의힘 지지층에서의 지지율이 중요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전체로는 1등이 아니지만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확고부동한 1등이다. 바뀐 규정이 본인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1등과 2등과의 차이도 크다. 나 전 의원은 30%대이지만 2등은 겨우 10%대다. 여론조사 1등이라는 자신감이 크다. 대통령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대선주자 같은 행동이 나온 이유다.

아 그런데 믿었던 지지율에 이상전선이 생겼다. 오늘 발표된 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 전 의원의 뒤통수를 때렸다. 미디어트리뷴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한 결과다. 지난 12일과 13일 이틀간 국민의힘 지지층을 대상으로 한 조사다.(오차범위 95% 신뢰수준에서 ±4.3%포인트. 무선(97%)·유선(3%) RDD방식 조사. 응답률은 3.7%.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렇게 확고하던 1위의 지지율이 2위로 떨어진 것이다.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 지지도가 확 바뀌었다. 김기현 32.5%, 나경원 26.9%, 안철수 18.5%, 유승민 10.4%이다. 단숨에 1위에 오른 김기현 의원은 나 전 의원에게 5.6%p 앞선다. 지난주만 해도 김 의원 10%대, 나 전 의원 30%대였다. 일주일 만에 완전히 바뀌었다.

엄밀히 보면 일주일만이 아니다. 단 하루만이다. 나 전 의원이 오전에 저출산위 부위원장 사직서를 냈고 오후에 해임된 13일 하루가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틀간 조사에서 13일 단 하루가 지지율 결과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향후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측면이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나 전 의원을 거의 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라면 이런 급격한 변화가 올 수 없다.

나 전 의원은 당 대표 출마 여부를 고민하는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 대통령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지지율을 보면 국민의힘 지지층으로부터도 완전 냉대다. 믿고 기댈 곳이 다 없어진 셈이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나름 순탄하게 걸어온 정치 인생에 큰 위기가 왔다. 큰 정치인의 공통점이 있다. 정치 행보의 위기를 인간승리로 잘 이겨냈다는 점이다. 나경원 전 의원이 위기를 잘 극복하느냐는 본인의 결정에 달렸다. 수가 많지 않아 보인다. 자신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어서 누굴 원망할 수도 없다. 이래서 정치가 무섭다. 권력이 무서운 것이다.

<문인철/빅데이터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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