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논단] 백기완의 영혼, 미얀마 투쟁에 불어넣는 힘

- 비슷한 침략역사…한국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등 민주화 투쟁 적극 지지

2021-03-29 09:49:34

[월요 논단] 백기완의 영혼, 미얀마 투쟁에 불어넣는 힘
2월초 미얀마의 군부쿠데타에 항의시위를 하다 사망한 국민들이 2달만에 320명을 넘어섰다. 민 아웅 훌라잉 군총사령관이 지휘하는 쿠데타본부는 군인과 경찰들에게 시위대에 최루탄이 아닌 기관총과 개인화기로 무차별 사살명령을 내렸다. 아웅산 수치여사를 지원하는 시위대는 전쟁터에 가까운 현장에서 돌과 바리케이트로 맞서고 있다. 그간 군부와 내전을 벌여온 소수민족 군들이 속속 투쟁을 선언해 사실상 미얀마는 내전상태다.

미얀마 최대의 도시 양곤, 수도 네피도, 제2의 도시 만달레이 등 곳곳에서 벌이지고 있다. 이 시위현장에 얼마 전 돌아가신 고 백기완선생이 작사한 ‘남을 위한 행진곡’이 미얀마어로 번역돼 불리고 있다 한다. 이 노래는 80년 전두환 신군부가 압살한 ‘광주민주화항쟁’때 곡이 붙었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고 자연스레 부른 소위 ‘운동권가요’의 백미다. 80년 운동가요가 40년 만에 미얀마까지 넘어간 것이다.

광주의 쓰라린 기억위에 우리 맘에 안타까움을 더하는 건 비슷한 역사적 운명 때문이리라. 19세기 중반 인도를 경략했던 영국이 버마(미얀마의 옛 국호)를 침략하자 여러 부족이 ‘목숨을 걸고 싸웠으나 결국 식민지가 됐다. 태평양전쟁 때는 일본군이 버마로 치고 올라가 버마 국내에서 영국군과 싸웠다. 이때 일본군이 영국군포로들을 동원해 태국과 버마국경에 기차 철교 ’콰이강의 다리‘를 놓는 장면은 영화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영국의 식민지, 일본의 침략, 2차대전 후 영국에 대한 아웅산장군(아웅산 수치여사의 아버지)의 독립전쟁 등이 우리와 비슷하다. 태국에 가면 TV역사물에 버마군과 코끼리를 타고 싸우는 전투장면을 가끔 볼 수 있다. 임진왜란 때 ’불명의 이순신‘장군의 ’명량‘ 전투같은 역사물이다. 대부분 버마와의 전쟁이다. 두 나라는 같은 불교국가지만 역사적으로 원수지간이었다. 태국 북부에 있는 제2의 도시 치앙마이는 태국 초대 왕조 란나타이의 수도였지만 버마군에 의해 멸방했다.

우리나라에서 1962년 박정희장군이 5.16쿠데타로 집권할 한 해 전인 61년 미얀마에서도 네윈장군이 쿠데타로 집권했다. 이후 87년 직선제로 노태우대통령이 당선될 즈음인 88년 미얀마에서도 민정이양을 위한 제한적인 선거가 치러져 이때까지는 비슷한 정치경로를 밟아 왔다. 이후 1992년 김영삼대통령의 문민정부에서 군부의 핵심인 ‘하나회’를 제거한 뒤 우리나라에서는 군부쿠데타는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미얀마는 2007년 불교 승려들이 주동한 ‘샤프란 혁명‘도 군부의 탄압으로 좌절됐다.그 후 2015년 총선에서 민주세력이 등장한 뒤 군부세력과 아웅산 수치를 중심으로 하는 민간정치세력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공존하는 부분적인 민주정부가 유지되어 왔다.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국민들은 군부의 지지를 받는 정당을 거부하고 압도적으로 민간 정당을 지지했다. 이에 세력을 잃게 될까 두려워한 군부가 지난 2월 1일 탱크를 동원하여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군부는 아웅산 수치를 비롯한 민간정부 지도자, 시민사회 인사 수십 명을 구금하고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한 뒤 앞으로 1년간 국가를 통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군부는 버마노총을 비롯하여 15개의 산업별노조와 노동단체를 불법화했다. 이에 어느 정도 민주화의 맛을 본 젊은 층을 중심으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지난 60여년 경제 이권 등 모든 것을 독점한 군부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들을 학살하고 있다.

사태 해결을 위해 유엔 등 국제사회가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져 미국, 영국이 원조중단을 선언했다. 유엔안보리는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어떠한 제재도 할 수 없는 상태다. 미국도 유럽, 일본도 비난과 원조중단을 외치지만 직접 개입 할 방법이 없다. 쿠데타이후 동남아국가연합(ASEAN)도 모였지만 그간 ‘내정간섭 금지’전통에 묶여 우려만 표명했다.

미얀마 민주세력들은 국제사회에 지지와 원조를 요청하면서 ‘죽음의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많은 민주세력들은 시위를 벌여온 대도시를 떠나 남동부 태국접경지역인 카렌주, 북서부 방글라데시와 접경지역인 라카인주, 그리고 북부 중국과의 접경지역인 센주 등지로 옮겨 무장항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수치여사를 지지하는 1,000여명의 무장반군이 72년째 정부와 내전을 벌여온 카렌반군지역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 카렌주는 88년 민주항쟁 좌절 때부터 반정부투쟁을 해왔다. 정부군이 40만 명이고 소수민족군대도 10만 명에 달해 내전이 격화되면 시리아 내전같은 양상으로 비화될 수 있다.이를 우려해 국제앰네스티, 국경없는 의사회, 국제기자협회(IFJ)등 국제시민단체들이 시위에 강력한 지지와 군부에 대한 탄압중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미얀마 국민들도 아시아 민주화의 상징인 한국에 도움을 바라고 있다. 우리 종교계, 시민사회도 강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미얀마 군부가 병원에서 시위대의 부상을 치료하지 못하게 하자 지난 3월초 보건의료노조와 국제민주연대가 미얀마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모색하는 온라인 긴급토론회를 개최해 연대방법을 모색했다.

한국불교계는 오체투지시위를 통해 미얀마불교신자와의 연대를 표시했다. 한국천주교회도 불교국가인 미얀마국민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연대를 표명했다. 염수정추기경이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불교4개국의 교황청대사인 장인남대주교(한국인)를 통해 지원금을 보냈고 정의구현사제단도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지만 미얀마국민들은 너무 오래 피를 흘리고 있다. 인도차이나반도의 베트남의 독립전쟁,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미얀마의 민주화항쟁 등을 보며 일제침략과 한국전쟁, 광주항쟁 등을 겪은 우리 국민들은 ‘남의 일 같지 않은’ 연민을 느끼고 연대를 보내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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