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논단] 코로나19와 데카메론(Decameron)

기사입력 : 2020-04-01 08: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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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진 / 한국지역신문발전위원회 부위원장
코로나19를 둘러싼 글로벌 위기가 미, 중간에 책임 떠넘기기로 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지난3월21일 기자회견에서 세계보건기구(WHO)가 공식 명명한 ‘코로나19’대신에 ‘중국바이러스’(CHINA VIRUS)라고 언급했다. 중국이 이에 발끈해 공식멘트로 “지난 겨울 중국 우한에 모인 세계군인대회에 참석한 미군이 처음 바이러스를 퍼뜨렸다”고 반박했다. 책임의 핑퐁게임이다.

우리나라도 처음에는 ‘우한바이러스’로 부르다가 '코로나19'로 바꿔 부르고 있으며 대구의 신천지교회로부터 집단 감염이 퍼져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중국인과 아시아인들을 차별하는 모습이 SNS를 통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우리도 신천지 예배와 작은 교회에서 연이어 집단감염이 늘어났고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감염으로 이어져 기독교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주말 우울한 노인들이 남한산성으로 모여들었다. 옛 한국일보 동료 10명이 5호선 종점인 송파구 마천역에서 모여 300여m의 남한산성 수어장대에 올랐다. 1시간여 땀을 흘리고 간식 후 두부 요리로 점심을 하고 성남 쪽으로 걸어 내려가 8호선 남한산성역 근처에서 호프 한잔씩을 나누고 헤어졌다. 다른 때 같으면 평범한 주말등산이었겠지만 이 날은 주제가 온통 코로나뿐이었다.

70대 초반부터 60대 초반까지 모였으니 대체로 큰 어려움 없이 지내온 소위 ‘베이비 부머’ 세대다. 하산할 때는 날씨가 좋아 젊은 연인들끼리 다정하게 데이트하는 모습과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하는 부부들이 많아 ‘코로나 블루’를 잠시 잊었다. 술 한잔에 적당히 오른 기분은 평소와 다름없는데 지하철을 타고 마스크를 쓴 승객들을 보니 공포보다는 우울이 다시 배었다.

우리 부모세대들은 어릴 때 태평양전쟁부터 6.25전쟁까지 다 겪었다. 사람끼리 목숨을 빼앗는 처절함을 본 지라 흔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6.25동란이후 처음”이란 말을 자주 썼다. 인류는 1,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고서야 전쟁의 엄청난 파괴성을 실감했다. 중세의 기마전이나 창과 칼, 활 싸움 같은 전투는 낭만적이다. 이제는 핵공포나 드론같은 전멸전이다.

우리는 1997년의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시대도 겪었고 2009년 미국의 역모기지사태로부터 시작된 외환위기도 겪었다. 그러나 이번같이 중국부터 미국, 유럽까지 전 세계의 경제시스템과 자유 이동까지 막힌 ‘팬데믹’은 2차대전 이후 처음이다. 세계적 유행병으로는 중세 시대에 유럽인구의 3분의1의 생명을 앗아간 페스트부터 1차대전 사망자 2,500만명의 2배인 5,000만명이 죽은 1919년의 스페인독감이 있다.

스페인독감도 1차 대전후 귀국한 미군으로부터 시작됐으나 스페인독감으로 명명했다.

최근의 바이러스 감염병으론 사스, 신종 플루, 에볼라, 메르스가 있고 동물 전염병으로도 조류독감, 구제역, 아프리카돼지 열병 등이 종종 발생했다. 그러나 전염력이 가장 강했던 신종플루 때는 타미플루라는 약이 있었고 메르스는 전염력이 한정돼 공포까지는 가지 않았다. 코로나19는 그 예상을 벗어나 우리나라만 아니고 중국, 이탈리아, 스페인, 이란, 독일, 미국이 더 심하다.

이번에 코로나19로 이동금지조치를 당한 밀라노 피렌체 등의 큰 도시가 많은 이탈리아 북부를 롬바르디아 지방이라 부른다. 475년 게르만용병에 자멸했던 로마가 자멸하자 568년 알프스 북쪽에 있던 게르만족의 일파인 롬바르드족(랑고바르드족)이 쳐들어와 롬바르드 왕국을 열고 로마남부까지 세력을 떨쳤다. 2세기후인 774년 로마교황으로부터 대관식을 받은 프랑스 쪽의 샤를마뉴대제(영어로 찰스, 독일어로 카를)가 롬바르디아 왕국을 정복해 교황령으로 바친 지역이다.

왜 이 지역이 십자군 전쟁이 끝난 14세기에 페스트참화를 겪었고 이번에도 유럽에서 가장 환자가 많을까 궁금했다. 페스트 당시 이야기인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Decameron)을 교보에서 사봤다. 1348년의 페스트에 관한 기술로 ‘10일(deca)간의 이야기’다. 아랍의 ‘천일야화’의 축소판으로 보면 된다. 난을 피해 피렌체 교외의 별장에서 숙녀 7명, 신사 3명이 10일간 체류하며 사랑과 일상생활의 지혜 등을 담담히 털어놓는 이야기다.

음담패설에 가까운 이야기도 있고 십자군전쟁 때 적이었던 사라센의 살라딘왕의 지혜를 보여주는 유태교, 이슬람교 , 기독교가 한 형제라는 중세가톨릭 교리에 반대되는 내용도 있다. 중세의 교회와 봉건제도를 조소하는 신흥 부르주아지의 승리의 기록이어서 새 시대정신의 표현이다. 실제로 페스트이후 중세가 몰락하고 유럽의 르네상스가 시작된다. 그래서 1321년 발표된 단테의 <신곡(神曲)>에 견주어 <인곡(人曲)>으로 부르기도 한다.

코로나19는 어렵지만 극복될 것이다. 그러나 세계가 화석연료로 인한 기후위기와 신자유주의 이후 심해진 빈부격차, 종교간 갈등과 인종차별 등의 환란을 겪고 있다. 새로운 ‘배려의 제도’를 만드는데 힘을 합치지 않으면 또 다른 변종 바이러스가 인간사이의 틈을 비집고 들어올 것이다.

물질문명은 발전했지만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은 600여 년 전 페스트가 창궐했던 중세 때보다 나아진 게 없는 것 같다. <남영진 / 행정학박사·한국지역신문발전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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