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실 “노무현은 최초 여성 ‘총리ㆍ헌법재판관ㆍ법무부장관ㆍ대법관’ 임명”

김태영 기자

2015-05-25 13:17:24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을 넘어서고 국가를 넘어선 분이셨다고 고백하고 싶다”

[빅데이터뉴스 김태영 기자] 2015년 5월 23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6주기였다. 6주기 추도식은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대통령묘역에서 엄수됐다.

이날 추도식에는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씨 등 유족과 8000여명의 시민 그리고 이해찬 이사장을 비롯해 이재정ㆍ문성근ㆍ도종환ㆍ정영애 이사, 문희상ㆍ고영구ㆍ이기명ㆍ정세균 고문 등 노무현재단 임원들이 참석했다.

또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천호선 정의당 대표, 등 정당 대표와 정부 측에서는 김재원 청와대 정무특보가 참석했다.

▲5월23일노무현대통령서거6주기추도식(사진=노무현재단)
▲5월23일노무현대통령서거6주기추도식(사진=노무현재단)


이 자리에서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이 추도식을 낭독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참여정부 초대 법무부장관으로 안면도 없던 강금실 변호사(제23회 사법시험)를 임명했다.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헌정사상 첫 여성 법무부장관일 뿐더러, 법무ㆍ검찰에 판사 출신인 강금실 변호사를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강금실 전 장관은 추도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 국무총리, 여성 헌법재판관, 여성 법무부장관, 여성 대법관을 임명해 국가권력의 영역에서 평등의 근본기초인 성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만천하에 보여줬다”고 높이 평가했다.

첫 여성 국무총리는 한명숙, 첫 여성 헌법재판관은 전효숙, 첫 여성 법무부장관은 강금실, 첫 여성 대법관은 김영란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또한 첫 여성 헌법재판소장으로 전효숙 재판관을 임명하려 했으나, 당시 한나라당이 절차를 문제 삼아 무산됐다.

▲강금실전법무부장관(사진=노무현재단)
▲강금실전법무부장관(사진=노무현재단)


강 전 장관은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가장 강렬한 기억중의 한 가지가 참여정부 초기 있었던 ‘검사와의 대화’ 장면인데, 이 또한 전무후무한 기념비적 사건”이라며 “국가권력을 위임하는 과정에서조차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위계는 배제돼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몸소 실천한 역사적 장면이었다”고 회상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을 넘어서고 국가를 넘어선 분이셨다고 고백하고 싶다”며 “대선자금수사와 검찰개혁은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최고 권력자로서, 민주공화의 근본가치를 현실화하고자 하는 고인의 희생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과업이었다”고 평가했다.

강금실 전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은 죽음조차 넘어섰다”며 “우리 모두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넘어 대통합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열린 자세로 현실의 역량을 끌어 모아 국민들의 인정을 받아야 만이, 우리에게 ‘노-무-현’을 말할 자격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역분향소에서조문객을맞았던강금실전법무부장관
▲서울역분향소에서조문객을맞았던강금실전법무부장관


<다음은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이 낭독한 추도사 전문>

고 노무현 대통령님!
대통령님께서 서거하신지 6년이 되었습니다. 저 강금실, 참여정부 초대 법무부장관을 지낸 자격으로 이 자리에 서서 대통령님을 불러봅니다. 추도식 때마다 더러 오기도 했었지만, 이제서야 인사하느냐고 저 부엉이바위 하늘너머에서 그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음성으로 따끔 야단하시는 듯합니다. 서거 6주기를 맞아서 인사를 드리자니 무척 감회가 깊습니다.
지난 6년이라는 시간은 저희에게 슬픔과 회한의 감정을 추스르고 찬찬히 과거를 돌아보는 기회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대통령님과 참여정부의 역사적 의미와 유산에 대해서도 깊이 성찰하게 합니다.

대통령님,
대통령님은 “사람 사는 세상”이 무엇보다도 평등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최근 부산지역의 여성변호사들에게 강연할 자료를 준비하면서 저는 참여정부 초기 막 임명된 저를 비롯한 네 명의 여성장관이 함께 둘러서서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다수의 여성장관 임명은 지금까지도 전무후무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대통령님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 국무총리, 여성 헌법재판관, 여성 법무부장관, 여성 대법관을 임명해 국가권력의 영역에서 평등의 근본기초인 성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만천하에 보여주셨습니다. 이런 담대한 실천은 한국사회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상호 수평관계를 열어가도록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이 유리천장을 깨고 나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강금실전법무부장관이서울역광장에설치된분향소에서조문객들의조문에맞춰조의를표하고있다.
▲강금실전법무부장관이서울역광장에설치된분향소에서조문객들의조문에맞춰조의를표하고있다.


대통령님,
대통령님에 대한 국민들의 가장 강렬한 기억중의 한 가지가 참여정부 초기 있었던 “검사와의 대화” 장면입니다. 이 또한 전무후무한 기념비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담긴 대통령님의 의지가 무엇이었을까를 우리는 되새겨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통령님이 내세우셨던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 개혁은 단순히 몇몇 기관을 지목하고 바꾸고자 하는 데 그치는 게 결코 아니었습니다. 대통령님의 정치철학은 국가권력을 위임하는 과정에서조차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위계는 배제되어야 한다는 데 있었습니다. 사람은 역할과 책임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며, 상호 자율적이고 자유로워야 합니다. 대통령님은 국가권력 최고 정점에 선 권력자가 자신이 임명한 평검사와 한자리에 나란히 앉아 대화하는 모습을 통해 그 철학을 상징하고자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자유롭고, 그 누구도 지위로 억누를 수 없다는 인간 보편의 존엄과 가치를 대한민국 대통령이 몸소 선언하고 실천하는 역사적 장면이었습니다.
이러한 대통령님의 정치철학과 실천은 우리 현실에서는 지각변동에 해당하는 행위였습니다. 대통령님의 결단으로 이루어진 임기 초기의 대선자금수사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었고, 지역균형발전정책은 지역주의의 오랜 차별구조를 뒤흔들며 새로운 시대의 출발을 알렸습니다.

대통령님,
저는 이 자리에서 대통령님을 회상하면서, 대통령님은 대통령을 넘어서고 국가를 넘어선 분이셨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단임제 임기동안 할 수 있는 직무의 한계를 무릅쓰고, 거대한 역사적 과업의 수행과 시대의 변화를 촉구하며, 외롭게 고군분투하셨습니다. 대통령님이 아니고서야 누가 과연 권력의 정점에서 역사에 도전하고 헌신하는 자세를 보여줄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저 부엉이바위도 바로 역사적 헌신의 상징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대통령님,
저는 대선자금수사를 직접 지휘하는 입장에 있었으며 검찰개혁과제를 수행하는 역할을 맡았었기에 체험을 통해서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선자금수사와 검찰개혁은 대통령의 통치방식에 근본적 전환을 불러온 과업이었습니다.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최고 권력자로서, 민주공화의 근본가치를 현실화하고자 하는 대통령님의 희생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과업이었습니다.

▲서울역분향소에서조문객을맞았던강금실전법무부장관
▲서울역분향소에서조문객을맞았던강금실전법무부장관
대통령님,
뒤에서는 밤잠도 제대로 못자고 고뇌하시면서 대의를 위해서 나를 희생하는 그 뼈아픈 고통을 대통령님께서 감내하셨던 것을 저는 기억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 자리에서 자문해야 합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님이 남기신 미완의 과제와 유산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보다도 공동체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대범한 정치적 자세를 배우는 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통령님이 남기신 역사적이며 근본적인 가치를 현실화하는 미완의 숙제를 해내야 합니다. 그러한 가치를 현실정치에서 보다 더 구체화하고 끝끝내 관철해내야만 합니다.
대통령님은 죽음조차 넘어섰습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넘어 대통합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열린 자세로 현실의 역량을 끌어 모아 국민들의 인정을 받아야 만이, 우리에게 “노-무-현”을 말할 자격이 주어질 것입니다. 심지어 대통령님이 현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연정을 제시했던 사실도 대통합 정신을 되새기며 똑똑히 기억해야 합니다.

▲서울역분향소에서조문객을맞았던강금실전법무부장관
▲서울역분향소에서조문객을맞았던강금실전법무부장관


우리 모두, 예외 없이, 편협한 시각으로 현실을 붙들다가 역사적 과오를 범하는 실수를 더 이상 반복하지 맙시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과 참여정부가 남긴 미완의 과제를 완성합시다. 모든 정치적 이해타산을 버리고, 역사의 커다란 흐름에 참여하는 크나큰 명예로움으로 공동체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협력합시다. 정치적 과업의 크기만큼 마음을 활짝 열고 대통령님의 담대한 정신을 담아 깊은 사랑의 유대를 공고히 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세상을 진정으로 사람 사는 세상으로 바꿔나갑시다. 이제 이 대의와 과업을 저버린다면 그것은 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희생과 열망을 저버리는 것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각성하고 우리 함께 앞으로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2015년 5월 23일
강금실 드림

김태영 기자 new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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