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논단] 태국 Z세대 젊은이들, 왕실권위에 도전…정치개혁 가능할까

기사입력 : 2020-11-02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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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남영진
태국의 수도 방콕의 국제공항인 수왓나폼공항을 벗어나자마자 고속도로 변에 삼성, 소니 등 국제적인 기업광고 전광판이 솟아있다. 이중 2배나 큰 광고판이 밝은 전등빛을 받고 서 있다. 정장차림인 현 국왕인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라마10세, 68세)의 실물크기의 사진과 ‘LONG LIVE THE KING(장수무강)’이라는 표어가 붙어있다. 이렇듯 태국의 국왕은 거의 전제군주나 다름없고 국민들의 통합의 상징으로 군림해왔다.

전임 푸미폰 아둔야뎃국왕(라마9세)이 4년 전 죽고 1년여 간의 국상기간을 거쳐 2017년 현 국왕이 취임했지만 그 권위는 이전보다 현저히 떨어졌다. 이 와중에 코로나19가 습격했고 이어 태국경제를 뒷받침해온 관광수입이 급락하면서 경제상황이 악화됐다. 이 결과가 지난4개월간 이어진 반정부시위다. 프라윳 찬오차 총리가 10월15일 급기야 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총리퇴진’을 넘어 ‘왕실개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지난 2014년부터 2년 이상 방콕의 도심시위가 잦았다. 당시는 탁신 전총리의 여동생으로 선거에 의해 선출된 잉락총리가 대법원의 판결로 물러나자 일어났다. 왕당파(노란셔츠)와 민주파(빨간조끼)간의 정치적 대립이었다. 이번에는 절대권위를 이어온 1782년부터 방콕에 자리잡아온 차끄리 왕실에 대한 도전이어서 주목된다.

여름인 지난7월 시작된 이 시위가 지난8월 10일 1973년 타놈 키티카초른 군사독재를 타도한 상징대학인 방콕의 탐마삿대학(Tammasat University)에서 열린 항의 집회로 가열됐다. 지난10월14일 방콕도심의 대규모시위도 1973년 타놈 군사독재 정권을 타도했던 10월 14일 ‘피의 일요일’과 같은 날에 진행됐다. 대학생들이 처음으로 왕실을 헌법 하에 두는 진정한 입헌군주제의 실현 등 10항목의 개혁을 요구했다. 이제는 방콕도심 일반 시위대도 왕실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10월13일 수도 방콕도심에 2만 명의 시위대가 몰리자 10월15일 군부출신의 프라윳총리 정부가 ‘방콕 도심서 5인 이상 집회금지’라는 초강수 비상사태를 선언했다.경찰은 시위현장에서 평소 왕실개혁을 주창해 온 집회 주도자 아논 변호사 등 주도자와 학생 22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2014년 쿠데타로 발족한 집권해 지난해 총선에서 정권을 연장한 사실상의 군사정권의 퇴진과 헌법개정, 왕실개혁을 주장했다.

그러나 대학생 직장인등 젊은이들은 겁을 먹기는커녕 시위가담자가 더 늘었다. 이들은 네이버가 운영하는 라인이나 페이스북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시위가담을 촉구한다. 오히려 비상사태가 적용되지 않는 동북부 콘켄과 서남부 푸켓지방으로 번져가 시위가 확산되는 양상이다.

태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불교가 운영하는 초등학교에서 왕실 숭배 교육을 받아 왕을 ‘살아있는 신’처럼 생각한다. 이러한 불가침 영역에 노골적인 반기를 든 것이 바로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세대)다. 소셜미디어의 익명성과 솔직한 교류 등에 익숙한 이들은 부모세대와는 달리 고압적인 정권과 왕실에 대한 반발감이 크다. 국왕이 코로나19를 피해 독일 호텔에 머무르고 있다는 소식에 온라인에서 ‘#우리 왕은 왜 필요한가(#whydoweneedaking)’ 해시태그 운동을 전개할 정도다.

시위대는 지난3월 독일에 갔다가 최근 귀국한 국왕과 왕비가 탄 왕실 차량의 통행을 방해하며, 독재에 대한 저항을 나타내는 '세 손가락 경례' 제스처를 취했다. 이는 전 국왕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며 ‘왕실모독죄’로 최고15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범법행위다. 시위대 요구도 처음에는 의회해산과 총리퇴진이었으나 왕실개혁까지 나아갔다. 현 국왕은 왕위승계 후 재무부소유의 왕실재산관리국을 왕실 직속기구로 만들어 최소 400억달러(약 47조원)에 달하는 왕실재산을 왕 개인에게 귀속시켰다. 태국 국왕은 1782년 방콕에 차크리왕조가 선 이후 영화 ‘왕과나’에 나오는 것처럼 모든 국정을 담당하다 1930년대 쿠데타로 왕의 권력을 의회와 정부에 이양해 왕은 상징적인 국가원수로만 남아있었다.

현 국왕은 2년전 근위대장 출신의 수티다 아유타야(42)와 결혼하고 대관식을 가진 뒤 직접 정치에 관여해 지난해 총선에서 현 쁘라윳총리를 공개 지지해 탁신 전 총리파 등 야당의 비난을 샀다. 전임 푸미폰국왕이 2차대전 종전직후인 1946년 취임해 70년 동안 재위하면서 미국과의 관계개선, 베트남전쟁, 화교대책, 아세안창설 등 대외정책을 잘 펼쳤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지증진정책과 직접봉사활동을 펼쳐 국민으로부터 절대 존경을 받았다. 현 국왕은 오랜 왕세자시절 3번의 비공식결혼 등 방탕한 생활로 전임 국왕과 대비돼 국민들로부터 이미 신망을 잃었다.

문제는 경제다. 경제계는 정치적 혼란 심화로 태국에 대한 해외직접투자가 줄어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우려한다. 안 그래도 코로나 사태로 경기가 침체돼 반정부 시위가 폭력사태로 번지면 국가적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외국인 투자가들의 태국에 대한 신용도가 떨어져 투자가 줄어들어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다. 정부는 지금은 신종 코로나 사태 극복에 전념할 시기라고 호소한다

태국언론들도 정부개혁에는 찬성하나 헌법 개정과 왕실개혁에는 부정적이다. 언론들은 "왕실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라며 반정부 집회 주최 측에 ‘왕실개혁’이라는 목표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데모가 폭력으로 번져 국민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되면 모두가 손해라는 주장이다.

“정부가 법에 따라 강력히 대처해야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다"와 ‘엄벌’‘강력대처’‘경제에 악영향’등의 말을 유신 이후 군사정권 때까지 많이 들었다. 40년 전 군사독재시절 우리나라 상황과 꼭 ‘데자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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