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28만DWT급 VLCC 6척 발주했으나 현대정유 사업 부진
30만DWT급 VLCC 2척으로 부정기 원유수송사업 개시해 수익
유조선 시황 최저던 2002년 중반부터 2단계 선대 확충 추진
운임 오르면서 2002년 3억 달러였던 수익, 2004년에는 7.6억 달러

그런데 1990년대 후반 유조선에 의한 해양오염 사고가 늘어나자 유럽연합(EU)이단일선체 유조선을 퇴출하고 이중선체 유조선을 의무화하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시장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이 변화 속에서 노후 유조선이 점차 사라지고 신조 유조선이 시장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장기간 계속된 침체로 인해 신조 유조선이 많이 건조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제는 선복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때에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 기정사실화된 중국의 가파른 성장세가 이어지며 원유 수송량이 급증했다. 2000년의 경우만 해도 중국의 원유수입량은 전년도의 두 배에 달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에 들어가고 글로벌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인 것도 원유 수요를 촉발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자 2000년 들어 유조선 운임이 폭등하는 현상을 보였다. 페르시아만~한국 항로의 경우 VLCC 운임지수가 2000년 1월 WS(World Scale) 50대에서 11월에는 170에 육박할 정도로 초강세를 보였다. VLCC 운임이 급상승함에 따라 30만DWT(재화중량톤수)급 VLCC 1척의 운임 수입이 연간 2000만 달러에 달할 정도였다.
이에 힘입어 2000년에 현대상선의 유조선 운임 수입은 당초 목표치를 훨씬 웃도는 4억7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현대상선이 유조선 부문에서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시황 변동을 예측한 선제적인 투자와 공격적인 신시장 개척 노력 덕분이었다.

현대상선은 유조선 시황이 여전히 침체해 있던 1995년과 1996년에 현대정유의 원유도입에 대비해 모두 6척의 VLCC를 발주했었다. 이 중 1995년에 28만DWT급 VLCC인 ‘현대 스타(Hyundai Star)’호, 1996년에 같은 제원의 ‘현대 배너(Hyundai Banner)’호, 이어 1997년에 30만DWT급의 ‘유니버설 프라임(Universal Prime)’호와 ‘유니버설 브레이브(Universal Brave)’호가 차례로 인도되어 취항했다.
그러나 현대정유의 원유 도입 규모가 예상보다 저조해 선박에 여유가 생겼다. 이에 현대상선은 1998년 3월 인수한 30만DWT급 VLCC ‘현대 썬(Hyundai Sun)’호와 9월 인수한 ‘밀레니엄(Millennium_’호를 현물시장 영업에 투입하여 부정기 원유수송사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부정기 원유수송사업은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쌓을 수 있게 했다. 자신감을 얻은 현대상선은 1999년 말 유조선 운임이 하락하는 상황에서도 시장을 관망하던 경쟁사들과는 달리 26만DWT급 VLCC ‘퍼시픽 커리지(Pacific Courage)’호를 3년 계약으로 용선하고, 2000년에는 24만DWT급 VLCC ‘코스모 갤럭시(Cosmo Galaxy)’호를 단기 용선하는 과감한 투자로 사업을 확대했다.
이러한 선제적인 투자는 2000년에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원천이 되었다. 퍼시픽 커리지호만 해도 사상 최고의 유조선 호황 속에서 1년 동안 벌어들인 수입이 이 배를 사고도 남을 정도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2000년에 호황을 보이던 유조선 시황은 2001년 들어 다시 급락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는 결과적으로 현대상선의 운용 역량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되었다. 퍼시픽 커리지호의 경우만 해도 용선료가 바닥일 때 용선하여 운임이 사상 최고일 때 현물시장에 투입하고, 2년여 잔여 기간이 남았을 때는 장기용선계약으로 투입하는 절묘한 타이밍을 보여주었다.
2001년에 급락한 유조선 운임은 2002년 들어서도 원유 및 석유제품의 해상 물동량이 감소하면서 하락세를 이어갔다. 유조선 선복량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면서 공급과잉 양상을 보인 것도 운임 하락의 요인이 되었다.
이 무렵 현대상선은 향후의 시황을 예측하여 보유 선박을 가감하는 것이 아니라 최저 원가로 선박을 장기 용선하여 시황 침체기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호황기에 대비하는 영업전략을 폈다.
이러한 전략에 따라 유조선 시황이 최저이던 2002년 중반 무렵부터 장기 용선을 통한 2단계 선대 확충을 추진했다. 이에 2002년에 ‘VI 코스모스(Cosmos)’호와 ‘VI 말리부(Malibu)’호 등 2척의 VLCC를 확보했다. 2003년에도 27만DWT급 VLCC 1척, 30만DWT급 VLCC 2척, 석유제품선 1척 등을 추가로 확보하여 선대를 대폭 확충했다.

2003년 11월에는 1996년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31만DWT급 VLCC 2척을 신조 발주했다. 또 2004년에는 중고선 2척을 용선하고 2척을 매입하여 선대를 더욱 보강했다.
2003년에 신조 발주한 VLCC는 2005년 11월과 12월 인수하여 ‘유니버설 퀸(Universal Queen)’호, ‘유니버설 크라운(Universal Crown)’호로 명명하여 중동 항로에 취항시켰다. 유니버설 크라운호는 길이 330m, 폭 60m, 높이 29.6m로, 세워 놓으면 63빌딩보다 84m나 높은 초대형 유조선이었다. 이에 따라 현대상선은 18척의 초대형 유조선과 12척의 중형 유조선 및 석유제품선 등 총 30척의 유조선단을 운영하는 국내 최대 유조선사로서의 입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침체기에 선단을 확대한 전략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2003년 유조선 운임지수는 다소 등락을 보이기는 했지만 대체로 상승곡선을 그렸다. 2004년에는 중국의 원유 수입 증가와 미국의 동부지역 한파에 따른 난방유 수요 증가에 힘입어 급등세를 보였다. 특히 중국의 원유수입 증가는 매년 두 자릿수의 성장세를 보이며 사상 최고의 호황을 이끌었다. 심지어 세계 선복량도 낮은 증가율을 보이는 바람에 2004년 연평균 VLCC 운임지수는 사상 최고치인 149.63포인트를 기록할 만큼 뜨겁게 달아올랐다.
덕분에 현대상선의 유조선 운임 수입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2002년 3억 달러를 돌파한 수입 규모는 2003년에는 그 두 배인 6억 달러대로 올라섰고, 2004년에는 7억6000만 달러 수준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2005년 이후 유조선 시황은 다시 하향 추세를 보였다. 원유 수요는 완만하게 증가하는 추세였으나 신규 선박의 공급이 늘어 공급 과잉 현상이 벌어졌다.
2006년에는 OPEC의 원유 생산 감축 등 악재가 겹치면서 침체 양상을 보였다. 현대상선은 시장 환경 변화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2006년에 국내 정유사인 현대오일뱅크 및 에쓰오일(S-OIL)과 수입원유 장기수송계약을 체결하여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했다. 또 국외 정유사인 PETRON·PTT와도 추가로 장기수송계약을 맺어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확보하고자 했다. 중국의 동위안과 합작법인을 설립하여 중국의 국영 석유회사인 UNIPEC에 원유수송을 시작하는 성과를 이루었고, 케미컬선 3척을 용선하여 케미컬 시장에도 진입하는 등 비컨테이너 부문의 사업 다각화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침체 시황이 길어지던 2007년에는 선박의 장기 대선을 추진하여 안정적인 수익 기반 확보에 노력하기도 했다.
<자료: HMM 50년사>
채명석 빅데이터뉴스 기자 cm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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