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등에도 웃지 못하는 정유사…5월부터 부담 본격화

김유승 기자

2026-03-30 15:47:46

정유 판매까지 시차 있어… 4월까진 기존 재고로 '버티기'
5월부터 고가 원유 본격 투입… 원가 급등에 수익성 적신호
레깅 효과에도 운송비·가격규제 발목… 1분기 실적 미지수
유가 하락 시 역레깅 공포… 업계 "수출가 수준 내수값 필요"

정유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정유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빅데이터뉴스 김유승 기자] 국제 유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나, 정제마진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정유업계의 1분기 실적이 불확실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오는 5월부터 고가 원유가 본격적으로 투입되며 원가 부담이 커지고 실적 하방 압력이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30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공급망을 강타하며 원유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지 한 달여가 지난 가운데,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가 이스라엘 참전을 공식화하면서 ‘글로벌 물류 동맥’인 홍해마저 폐쇄 위기에 직면했다. 한국의 중동산 원유 수입 의존도는 70%에 달한다.

해상 경로가 막히면 정유사들은 수에즈 운하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해야 한다. 이 경우 운송 거리와 시간이 대폭 늘어난다. 이는 선박 확보 비용과 운임, 보험료의 연쇄적 폭등으로 이어진다. 미국 자문기구 유라시아그룹은 공급 차질이 심화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은 바 있다.

정유사의 수익 구조를 살펴보면, 원유 도입부터 정제, 판매까지 통상 1~2개월의 시차가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단순히 원유를 비축해둔 시점이 아니라, 과거 저가에 도입한 원유가 생산에 투입되는 시점에 결정된다. 100달러에 들여온 원유가 투입될 무렵, 석유제품 가격이 이미 상승한 유가를 반영해 120달러 수준으로 형성되면서 마진이 확대되는 원리다.

예를 들어 평상시 100달러에 원유를 사서 110달러에 판매해 10달러의 마진을 남겼다면, 유가 상승기에는 100달러 원유로 125달러의 가치를 창출하며 총 25달러의 마진을 기록하게 된다. 이때 기본 마진 10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15달러가 시차(레깅)에 따른 추가 이익인 '재고 효과'가 된다. 이는 기업 회계 기준상 재고자산이 취득원가와 순실현가능가치 중 낮은 금액을 적용하는 ‘저가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원유를 들여왔을 때 바로 쓰는 게 아니라 3월 초에 도입된 물량은 3월 말이나 4월에 투입된다"며 "재고자산이기 때문에 실제로 들어온 가격을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일정한 기준에 따라 평가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은 4월까지 기존에 보유한 저가 재고를 바탕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성을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는 실제 이익이라기보다 장부상 이익에 해당한다. 더욱이 중동 사태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정제마진 변동성도 확대되면서 업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이는 운송비 상승과 수송 지연으로 원가 부담이 가중된 데다, 휘발유와 경유 등 주요 석유제품 가격이 최고가격제에 묶여 인상 폭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제도에 따른 손실 보전 방식이나 규모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해당 부담이 1분기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더 큰 변수는 레깅 효과가 발생하는 5월 이후다. 지정학적 위기로 가격이 치솟은 고가 원유가 정제 설비에 본격 투입되면 원가 부담은 급격히 불어난다. 이때 제품 가격이 원재료비 상승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경우 정제마진은 빠르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선다 해도 안심할 수 없다. 비싸게 들여온 원유를 정제해 낮은 가격에 팔아야 하는 ‘역레깅’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재고자산의 순실현가능가치가 취득원가보다 낮아질 경우, 대규모 평가손실이 발생해 실적에 추가 타격을 줄 수 있다.

이처럼 비용은 치솟고 있지만 이를 국내 판매가에 온전히 반영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최고가격제 등 규제가 적용되면서 재고 도입 시점에 따른 수익 개선 효과가 반감될 수 있어서다. 정부의 유류세 인하와 가격 억제 정책 역시 소비자 물가 안정에는 기여하지만, 정유사 입장에서는 수익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정유사로서는 수익 방어를 위해 고환율을 겨냥한 수출 확대 카드를 검토할 수 있지만, 정부의 물량 제한에 가로막혀 이 또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사들은 국제시장 가격, 특히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수출단가가 형성되는 만큼 수출단가와 국내 판매 가격이 유사한 수준으로 결정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김유승 빅데이터뉴스 기자 ky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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