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수송사업이어 1977년 중동향 건설자재수송사업 도전
영업조직 확대개편, 화주 다변화 등 경쟁사와 차별화 추구
선복량 확대 추진해 1978년 말 선복량 100만DWT 돌파
‘아시아’ 시리즈 벌크선대 중동항로 등 투입, 17호선까지 운용

당시는 현대건설을 비롯한 국내 건설사들이 건설 붐이 일던 중동 지역에 대거 진출해 많은 공사를 수행하고 있었다. 건설사들은 대부분 한국과 일본 등 극동지역과 동남아에서 인력과 장비, 기자재 등을 조달하였으므로 막대한 중동향 운송 수요가 창출되고 있었다. 이러한 수송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아세아상선은 업계 최초로 중동 벌크선 정기항로를 개설했다.
아세아상선이 중동 정기선 영업을 시작하자 다른 해운사들도 정기선 영업에 뛰어들면서 선사 간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아세아상선은 기존의 영업조직을 부정기선 영업을 담당하는 영업1부와 국내 최초로 개설한 극동~중동 간 정기선 영업을 담당하는 영업2부로 확대 개편해 전문화를 도모했다. 이와 함께 현대건설에 치중했던 영업에서 벗어나 중동에 진출한 여러 건설사와 대기업 계열의 종합상사, 일반 무역회사 등을 확보하는 ‘화주 다변화’를 추구했다.
또 현대건설의 화물은 전용선 형태의 부정기선이나 용선을 활용하고 타 건설회사의 화물은 정기선을 운항하여 수송하는 등 정기선과 부정기선을 효과적으로 배선하여 화주의 요구에 부응했다. 이에 힘입어 아세아상선은 창립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중동 정기선 시장의 70%를 점유할 만큼 높은 경쟁력을 확보했다.
한편, 아세아상선은 중동에서 극동으로 돌아오는 항로의 인바운드(Inbound) 영업을 강화하여 영업 범위를 더욱 확대했다. 초기의 인바운드 영업은 중동에서 돌아오는 항로에 인도·태국 등을 들러 철광석·유황·비료원료 등을 선적하고,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연료탄을 수송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1978년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고추를 수송해 큰 수익을 올렸다.
선복량 확대를 추진하면서 아세아상선은 먼저, 현대건설 수송부가 소유하고 있던 1800DWT급 예인선(Tug Boat) 청룡1·2·3호와 1만~2만DWT급의 부선(Barge) 대양1·2·3호의 운항 업무를 인수했다. 예인선단 청룡1·2·3호는 부선에 대형 철구조물 등의 건설자재를 선적해 대양을 횡단했다.
이어 이탈리아에서 1만5376DWT급 벌크선 두 척을 매입해 아세아1호와 아세아2호로 명명한 후 중동 항로에 투입했다. 또 현대울산조선소에 2만5000DWT급 벌크선 2척을 발주해 벌크선단을 강화했다. 아세아3호와 아세아5호로 명명된 이 벌크선은 1978년 8월 취항했다. 대한해운공사가 곡물 수송용으로 현대중공업(현 HD현대중공업)에 발주했다가 인수를 포기한 1만9400DWT급 벌크선 2척도 인수해 아세아6·7호로 각각 명명했다.
1978년 10월과 12월에도 아세아상선은 1만2000DWT급 중고선 2척을 매입해 아세아8호, 아세아9호로 각각 명명하여 중동 항로에 투입하는 등 선박에 대한 투자를 계속했다. 아세아 시리즈 선박은 그 이후 17호까지 투입되었다.
이로써 중동 항로에 투입된 아세아상선의 선단은 아세아 시리즈 13척과 예인선 4척, 부선 6척 등 총 23척으로 늘어났다. 선복량 확대에 쓸 자금 확보를 위해 증자를 단행하여 1978년에는 자본금도 100억 원으로 증가했다.
한편, 유조선 분야에서도 아세아상선은 1979년에 3척의 중고선을 매입해 현물시장((Spot Market)에 투입했다. 설립 당시 보유했던 VLCC 3척을 포함해 모두 6척으로 늘어난 유조선은 페르시아만과 한국 간 항로에 투입돼 연간 5000만 배럴 이상을 수송했다.
<자료: HMM 50년사>
채명석 빅데이터뉴스 기자 cm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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