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T “모든 이해당사자 이익 추구” 재정의한 기업 목적 성명 발표
밀턴 프리드먼 “주주가치 극대화” 비리고 모든 이들과 ‘공생’ 강조
MBK 인정 시 “한국, 약탈적 기업 M&A로 성장한 PEF 천국 될 것”

미국 기업이 주주 우선주의를 버린 이유는 간단하다. 주주를 우선하기 위한 행동과 제도가 기업에 참가하는 모든 주주의 가치를 증진 시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MBK파트너스가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뛰어들면서 꺼낸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명분은 ‘절대 비중의 주식을 보유한 소수 대주주만의 이익을 대변한다’라는 의도를 포장한 궤변일 가능성이 높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은 개인주의 사상에 기초한 ‘우리끼리만 잘 되면 된다’라는 논리를 포기하고 주주뿐만 아니라 기업 가치사슬에 포함되는 모든 이해관계자와 공존과 번영을 이뤄 나가기로 지배구조의 대대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관은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 국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동양적 기업가 정신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2019년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변하는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 Business Roundtable) 소속 181명의 CEO는 재정의 한 ‘기업의 목적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서 이들은 “고객, 근로자, 납품업체, 커뮤니티 등 모든 이해당사자에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기로 했다”라고 공헌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기업의 유일한 의무는 주주들을 위한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오래된 이론을 신봉한 기존의 성명에서 “주요한 철학적 전환”이라고 평가했다.
CNBC도 “기업은 주주에 대한 봉사와 이윤 극대화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오래된 개념을 내려둔 것”이라면서 근로자들에 대한 투자와 고객으로의 가치 이전, 납품업체들에 대한 윤리적 대우, 커뮤니티에 대한 지원 등이 미 기업 사업 목표의 최전선에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BRT는 새로운 기업의 목적은 ‘살아있지만 시들해지고 있는 아메리칸드림의 부활’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이미 다이먼 당시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회장(JP모건 체이스 회장)은 “주요 경영자들이 근로자들과 커뮤니티에 투자하고 있으며, 이는 그것이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그들이 알기 때문”이라면서 “이런 현대화된 원칙은 모든 미국인에게 봉사하는 경제를 위한 비즈니스 단체들의 흔들리지 않는 약속을 반영한다”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의 기업 지배구조 철학을 변화시킨 주원인이 ‘금융자본’ 사모펀드(PEF)의 약탈적 기업 M&A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PEF의 위협이 제조와 서비스업 등 비금융 산업뿐만 아니라 은행과 보험, 증권 등 금융산업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들의 약탈적 수익 추구 행위가 미국 사회에도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따라서 WSJ은 새로운 성명이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이나, 지출, 수익 확대를 선동하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등의 문제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재정의 한 기업의 목적이 PEF와 헤지펀드의 공세를 방어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대로 말하면 PEF와 헤지펀드 때문에 기업의 목적을 재정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PEF 운용사에게 새로운 기업의 목적은 상당히 위협적이다. PEF는 금융자본 중에서도 은행에 비해 법·제도적 규제에서 벗어나 막대한 이익을 취하며 명성을 쌓아 올렸다. 기업과 산업에 대한 거액의 투자로 사업 환경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PEF에 속한 일부 투자자들의 주머니를 불리기 위해 인수기업에 속한 모든 이해관계자의 피해는 불가피한 것이라는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의 극단을 보여주는 부정적인 효과 또한 크다.
이러한 상황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에서 불거졌다. 하지만, 한국 내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가 정부가 금융투자산업 성장을 위해 외국인 투자를 대폭 허용하고, 기업 M&A 시장 활성화와 산업 구조 개편을 위해 PEF 산업을 키우려는 쪽으로 정책이 전개하면서 불거졌다. 처음엔 기업 매각과 구조조정에 뛰어든 PEF를 한국 경제의 동반자라고 인식하기까지 했다.
MBK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국내 최초 토종’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PEF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고려아연 인수전에서는 가면을 벗고 PEF 본래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MBK는 고려아연 인수의 목적으로 ‘주주가치 증대’라는 내세운다. 오너 중심의 잘못된 거버넌스(의사결정구조)가 회사 가치, 나아가 주주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어 자신들이 인수해 이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BRT가 재정의 한 기업의 목적대로라면, 주주가치 증대라는 이유로 MBK가 고려아연 인수를 고집할 명분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7년 전에 발표한 것이니 김병주 회장 등 MBK 경영진들도 이 사실을 접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시대 상황에 맞지 않는 낡은 철학이라서 미국에서도 버린 이러한 이념을, MBK는 한국에서 고려아연 인수의 당위성으로 강조하고 있다. 여전히 제조업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MBK가 2024년 말 공개한 ‘고려아연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밸류업 방안’ 보고서에서도 ‘고객·근로자·납품업체·커뮤니티 등 모든 이해당사자에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게다’는 계획과 문구는 찾아볼 수 없다. PEF 입장에서 “이익을 나누고 공생하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존재감을 부정하는 것이자, PEF에 투자한 내부 투자자(LP)들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배신행위를 할 수 없으므로 주주가치 증대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MBK의 딜레마가 엿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은 기업 지배구조의 책임 범위를 기업 외부로 확장하는 등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데, 한국은 오히려 최악의 미국 상황을 따라가는 상황이 직면하고 있다”면서, “낡은 경영 철학을 고집하는 MBK가 다른 PEF의 약탈적 M&A 참여를 동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MBK가 고려아연을 인수할 경우, 당장 고려아연 주주들은 환호하겠지만, 10년도 못 가 회사의 암울한 미래와 만날 가능성이 매우 클 것이며, 대한민국이 미국을 잇는 ‘사모펀드의 천국’이 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제기된다”며, “고려아연 주주들은 이 점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명석 빅데이터뉴스 기자 cm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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