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통합 HD현대중공업’ 출범, 51년 만에 간판 내려
30개에 이르던 중형 조선사 5개 내외에 불과, 생태계 붕괴
HD현대미포 중형조선소 수주 80%, 남은 4개사 존재감 미비

통합 HD현대중공업의 출범으로 중형 조선업계에는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중형조선업계=HD현대미포’라는 공식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수치로만 봐도 알 수 있다. 국내 중형조선업 현황 통계는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유일하게 정기적으로 배포하고 있는데, 수은이 통계에 활용하는 중형조선소는 HD현대미포를 비롯해 케이조선(구 STX조선해양), 대선조선, 대한조선, HJ중공업(구 한진중공업) 등 5개사다.
가장 최근인 2025년 9월 7일 발간한 ‘2025년 상반기 중형 조선산업 동향 및 시사점’에 따르면, 이 기간 국내 중형 조선사의 수주량은 33척·68만CGT(표준선 환산톤수)였으며, 이중 HD현대미포는 27척·54CGT로 78.6%의 비중을 차지했다, 나머지 6척·15만CGT는 케이조선의 수주 몫이었고, 대한조선, 대선조선, HJ중공업은 한 척도 실적이 없었다. HD현대미포를 제외한 4개 사 수주액은 2억9000만 달러(약 4000억 원)로 중형 조선사 수주액이 국내 신조선 전체 수주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8%에 불과했다. 중형 조선사 수주액 비중이 1% 아래로 떨어진 것은 수은이 2006년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2025년 상반기 세계 중형 선박 발주량은 총 321척·611만CGT였는데, 한국의 시장 점유율은 11.2%였으며, HD현대미포는 8.8%, 나머지 4개사는 2.4%였다.
시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중형조선업 현황 통계에서 HD현대미포 착시현상이 컸다. 대한민국 조선산업을 이야기할 때 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삼성중공업 등 빅3 실적에 가려 중형조선업이 드러나지 않은 것처럼, 중형 조선 역시 HD현대미포에 가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HD미포조선을 제외했다면, 중형조선업의 의미가 없어진 것은 오래 전이다”라면서, “조선소 실적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기반도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 30개에 달했던 중형조선소는 수주 급감과 국내 물가·인건비 등 생산원가 급등으로 인한 중국과의 가격 경쟁력 상실, 선물환 사태, 채권단의 과도한 구조조정 등으로 하나씩 문을 닫아 현재는 한 자릿수 업체만 남겨졌다. 살아남은 업체들도 또다시 수주 불황에 빠져 영속적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HD현대미포가 그동안 중형 선박 전문 조선사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HD현대라는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HD현대중공업, HD현대삼호중공업과 함께 조선 계열 군을 형성한 HD현대미포는 그동안 선박영업과 설계 연구·개발(R&D), 원재료·기자재 구매 등 업무 영역을 통합해 규모의 경제 효과를 거두며 비용 지출을 낮추고 효율을 높였다. 중국보다 높은 선가는 ‘HD현대’ 브랜드 가치와 높은 품질 및 유지보수, 애프터서비스(AS) 등 무형의 경쟁력으로 상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뼈를 깎는 경쟁력 향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수년 전부터 HD현대미포도 수주 영업에서 중국에 패배하는 횟수가 급증했다. 물량을 따내기 위해 선가를 낮추면 중국 물량보다 국내 다른 중형조선소 물량을 빼앗아 가는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실제로 중형 석유화학제품운반선 시장이 호황일 때 HD현대미포가 수주량을 크게 늘린 뒤 국내 다른 중형조선소의 수주실적이 급감한 적이 있다.
중장기적 시점을 놓고 봤을 때, HD현대는 독립법인 중형 조선사 HD현대미포의 미래는 불투명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상황을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해 왔으며 그중 하나가 수리조선업을 재개하는 것이었다. HD현대미포는 1974년 수리조선을 목적으로 설립했고 1997년 신조 시장에 진입해 수리조선 노하우는 여전히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K-방산의 성장으로 군함 건조 수요가 늘면서 방산 전용 도크와 작업장을 보유하고 있는 HD현대중공업이 시설 투자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군함 건조에 알맞은 크기의 도크를 보유한 HD현대미포의 인프라를 활용하는 것이 이상적이었다. 더불어 한국이 제안해 향후 주도해 나갈 미국 ‘마스가’(MASGA) 프로젝트 등 한 한미 조선 협력의 베이스캠프가 될 수 있다.
상선 영업과 건조도 보다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HD미포조선 단일 회사의 수주 물량으로는 생산원가 상승을 피할 수 없지만, HD현대중공업의 전체 수주의 일부로 놓고 보면 인력 투입과 원재료·기자재 구매 가격을 낮추는 규모의 경제 효과를 볼 수 있다. 가장 큰 이점은 반드시 따내야 하지만, 중국과의 경쟁을 극복하려고 낮은 선가를 써냈다가 손실을 볼 수 있는 중형 선종이라도 다른 대형 선종 건조에서 거둔 이익으로 이를 메울 수 있어 더욱 공격적인 선박 영업을 전개할 수 있다.
HD현대미포는 사라졌지만, HD현대중공업으로서 중형 조선 사업은 계속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남은 업체들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형 선박 건조 시장에선 중국 업체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끼리의 경쟁도 치열한 데, HD현대중공업이 비교 우위의 경쟁력으로 밀어붙이면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업계 관계자는 “중형조선소는 조선산업의 허리에 해당하는 데 이 시장에서 사실상 한국은 퇴출당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라면서, “10년이 넘도록 채권단이 주도해 구조조정을 했음에도 실패를 이어가는 이유를 다시 한번 살펴보고 생존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채명석 빅데이터뉴스 기자 cm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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