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사주면 조선소 짓겠다"던 정주영, 반세기 만에 '5000척' 신화 썼다

성상영 기자

2025-11-19 14:00:21

HD현대, '선박 5000척 인도' 금자탑
5000번째 선박은 필리핀 해군 초계함
"유럽·일본 조선사도 못 세운 대기록"

옛 현대조선중공업 울산조선소(HD현대중공업)에서 건조돼 1974년 6월 그리스 선사에 인도된 HD현대 1호 선박 '애틀랜틱 배런'호 ⓒHD현대
옛 현대조선중공업 울산조선소(HD현대중공업)에서 건조돼 1974년 6월 그리스 선사에 인도된 HD현대 1호 선박 '애틀랜틱 배런'호 ⓒHD현대
[빅데이터뉴스 성상영 기자] HD현대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선박 누적 건조 실적 5000척을 달성했다. 조선업 선발주자인 유럽·일본 조선사도 이루지 못한 대기록이자 1974년 옛 현대중공업이 첫 선박을 건조한 지 반세기 만에 쌓은 금자탑이다.

HD현대는 지난달 필리핀 해군에 초계함 2번함 '디에고 실랑'을 인도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날 HD현대는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에서 선박 5000척 인도 기념 행사를 개최했다.

최신예 함정인 디에고 실랑함은 길이 118.4m, 폭 14.9m, 순항속도 15노트(28㎞/h), 항속거리 4500해리(8330㎞)에 이른다. 이 함정은 지난 3월 진수돼 10월 필리핀 해군에 전해졌다. HD현대는 필리핀으로부터 총 10척의 함정을 수주한 바 있다.

누적 건조·인도 5000척 기록은 1974년 시작됐다. 단순 계산하면 지난 50여년 간 평균 1년에 100척, 사나흘에 한 척 꼴로 배를 지은 셈이다.

당시 현대조선중공업(현 HD현대)은 26만t급 초대형 유조선 '애틀랜틱 배런호'를 그리스 선사에 인도했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이 1971년 영국 버클레이은행으로부터 조선소 건설 차관을 들여 온 지 3년여 만이었다. 정주영 회장이 차관 도입을 위해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들고 영국 측을 설득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가 해외 선사와 투자자들에게 "우리 배를 사주면 조선소를 지어 배를 만들어 주겠다"고 한 이야기도 잘 알려져 있다.
이후 울산조선소와 더불어 울산 미포조선소(HD현대미포), 영암 삼호조선소(HD현대삼호)로 사업장이 늘어나며 한국 조선업 역사가 만들어졌다. 현재까지 3개 사업장에서 건조된 선박 수를 살펴보면 HD현대중공업 2631척, HD현대미포 1570척, HD현대삼호 799척에 달한다. 이들 선박을 한 줄로 세우면 총 길이가 1250㎞에 이른다고 HD현대 측은 전했다. 이는 서울-도쿄 간 직선 거리(1150㎞)보다 길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8800m)을 140개 쌓은 수준이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선박 건조·인도 5000척은 대한민국 조선 산업의 자부심이자 세계 해양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도전의 역사"라며 "함께 만든 도전의 역사를 바탕으로 다음 5000척, 또 다른 반세기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HD현대는 대기록 달성을 기념해 조선 계열사 임직원과 사내 협력사 근무자에게 상품권 30만원을 지급했다.

성상영 빅데이터뉴스 기자 showing199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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