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에 밀려 억울한 K8, 1000㎞ 타보니
'풀체인지급' 변화…세련미·고급감 두루 갖춰
아쉬움 없는 주행 성능, 승차감·안정성 조화
평균 연비 16.3㎞/ℓ…가격은 4206만원부터

판매량이 두 배 차이라고 해서 상품성까지 그렇지는 않다. 최근 시승한 '더 뉴 K8'은 충분히 권할 만한 차였다. 그랜저가 중후한 매력을 지닌 중년의 차라면 K8은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멋을 갖고 있다. 주력 모델은 1.6ℓ 가솔린 터보 엔진에 전기 모터를 얹어 연비를 끌어올린 하이브리드. 서울과 경남 창원, 합천 등을 오가며 더 뉴 K8 하이브리드를 1000㎞가량 타봤다.
◇풀체인지급 변화, 균형 잡힌 모습은 그대로
K8은 2021년 처음 출시된 이후 지난해 8월 한 차례 부분변경을 거쳤다. 초기형과 비교하면 풀체인지(완전변경)에 가까운 수준으로 변모했다.
겉모습부터 확연히 달라졌다. 초기형이 마름모꼴로 뒤덮인 라디에이터 그릴과 가늘게 찢어진 헤드램프(전조등)로 젊은 감각이 강조됐다면, 신형은 단조로운 듯하면서도 미래 지향적 인상과 무게감이 어우러졌다. 가로로 길게 이어진 주간주행등과 세로로 배치된 전조등, 플랩(공기 흐름을 바꿔주는 덮개)으로 마무리된 그릴이 절제된 세련미를 뽐낸다.

후면부는 범퍼 쪽 변화가 눈에 띈다. 초기형이 금속 재질 장식으로 배기구 형상을 담아냈다면 신형은 이를 깔끔하게 정리해 간결함을 추구한다. 전면부에서 강조된 선형 요소를 후면 범퍼 장식이 그대로 이어받는 모양새다. 리어램프(후미등) 무늬도 삼각형이 다닥다닥 박힌 형태에서 탈피해 쭉 그은 선이 강조돼 앞 부분과 통일감을 준다.
측면에서 바라보면 전체적인 윤곽이 유려하면서 균형이 잘 잡혔다. 트렁크 끝단으로 갈수록 완만하게 떨어지는 스포트백 형상은 부분변경 이전부터 호평을 받아 왔다.
실내는 운전석에서 보이는 곳 위주로 변화가 눈에 띈다. 운전대 모양은 물론 송풍구 위치, 디지털 계기반과 인포테인먼트 화면 형태, 중앙 콘솔 박스, 도어 트림 장식까지 전면적인 수정이 이뤄졌다. 그 덕분에 신차 느낌을 바깥뿐 아니라 안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고급스러움을 놓치지 않았다. 휴대전화 2대를 동시에 수납·충전할 수 있는 패드와 양문형으로 펼쳐지는 콘솔 박스 덮개에선 앞좌석 탑승객의 편의를 세심하게 고려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연비·성능 모두 잡아…하체는 그랜저보다 '한 수 위'
내부 변화를 통해 느껴지는 만족감은 주행을 할 때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단순히 겉보기에만 치중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초반부터 중후반까지 꾸준히 밀어 붙이는 가속력, 승차감과 주행 안정성 사이에 중심이 잘 잡힌 하체, 차급(車級)에 걸맞은 정숙성이 적절히 조화를 이뤘다.
K8 하이브리드에 탑재된 1.6ℓ 가솔린 터보 엔진과 전기 모터는 꽤나 믿음직하다. 중형·준대형급 차량에 폭넓게 활용되는 만큼 성능과 연비, 주행 질감 면에서 크게 부족함이 없다는 얘기다. 저속에서는 가속 페달을 밟는 정도에 따라 모터가 직관적으로 반응했다. 엔진이 작동하거나 멈출 때 승차감을 크게 해치지도 않았다.
고속도로에서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놓았더니 가속 반응이 한결 민첩해졌다. 엔진만으로는 버거웠을 테지만 모터가 받쳐주며 충분한 힘을 끌어냈다. 스티어링 휠 감각이 너무 가볍다는 의견도 있지만 스포츠 모드나 고속 주행 중엔 제법 묵직함이 느껴졌다. 130㎞/h가 넘어갈 땐 시트 볼스터(옆구리 날개)가 버킷 시트처럼 조이며 몸을 단단하게 잡아줬다.

시승 구간이 대부분 고속도로였고 주행 속력도 높았던 점을 고려하면 연비는 나쁘지 않다. 시승을 모두 마친 뒤 계기반에 기록된 연비는 16.3㎞/ℓ였다. 모터 주행 비중이 높은 시내 도로나 70~80㎞/h로 달리는 일반국도 구간에서는 20㎞/ℓ대가 찍히는 모습도 보였다.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대목은 하체였다. 시내 도로에선 힘을 숨기고 있다가 급선회를 반복하는 고갯길에서는 의외의 실력을 드러냈다. 흔히 국산차는 승차감이 부드러울수록 불안감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지만 K8 하이브리드는 이러한 관념에서 비켜 나 있었다. 하체만큼은 오히려 그랜저보다 한 수 위였다.
요철이나 과속방지턱을 부드럽게 넘을 땐 준대형 세단다운 편안함을 보여줬다. 그러다 곡선을 돌아 나갈 땐 전장 5m가 넘는 덩치가 무색하게 불안감이 적었다. 전방 카메라와 내비게이션 정보를 통해 노면 상태를 예측하고 감쇠력을 조절하는 프리뷰 전자 제어 서스펜션이 제 몫을 해낸 모습이었다.

정숙성도 대부분 상황에서 준수했다. 일상적인 주행 환경에서는 실내로 들어오는 소음이 상당히 잘 정제됐다. 빠르게 달려도 속도감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준대형 세단에 걸맞으면서 고급차와 견줘도 될 정도였다. 다만 오르막길에서 엔진 회전수가 높아지면 1.6ℓ 직분사 엔진 특유의 거친 음색이 도드라졌다.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은 반 자율주행에 가까울 정도로 온갖 기능이 아낌없이 채워졌다. 현대차그룹 중형급 이상 차량의 ADAS 수준은 웬만한 수입차를 능가하는 만큼 나무랄 게 딱히 없었다. 차로 중앙을 잘 유지할 뿐더러 크루즈 컨트롤(정속 주행 장치)을 켰을 때 앞 차량과의 거리에 따른 가·감속도 비교적 자연스러운 편이다. 전방 충돌 방지 보조가 민감해 앞 차에 너무 바짝 붙여 운전하는 습관은 지양하는 편이 좋겠다.
◇4000만원은 필수, 5000만원은 선택…"그래도 만족"
K8 하이브리드는 자동차로서 기본기, 플래그십(기함)에 버금가는 고급스러움, 아쉬움 없는 편의 사양을 갖추며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차였다. 그런 만큼 가격도 무시하기 어렵게 됐다. 20일 현재 친환경차 세제 혜택을 반영한 트림별(세부 모델) 가격은 △노블레스 라이트 4206만원 △베스트 셀렉션 4339만원 △노블레스 4552만원 △시그니처 4917만원 △시그니처 블랙 5052만원이다. 시승 차량은 시그니처 트림에 모든 선택 사양이 적용된 모델로 5582만원이다.
초기 구매 비용만 놓고 보면 3679만원부터 시작하는 2.5 가솔린 모델도 고려할 만한 선택지다. 뒷좌석 통풍 시트와 사륜구동을 원한다면 3.5 가솔린 모델을 구매해야 한다.
성상영 빅데이터뉴스 기자 ssy@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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