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솜 칼럼] 언택트 시대 슬기로운 홈술 생활

2021-04-27 17:46:34

김다솜 소장
김다솜 소장
필자의 근래 소확행은 퇴근길 편의점에 들려 술을 사는 것이다. 2~3천 원짜리 맥주부터 5만 원이 넘는 와인까지 선택지는 다양하다. 3만 원이 넘는 주류에 손이 갈 때는 순간 흠칫하지만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 카피를 떠올리며 ‘떠나지 못하니까 마셔야지’라고 자기합리화를 한다. 장바구니에 와인을 넣으며 ‘오늘은 넷플릭스에서 뭘 보지.’라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나른해지면서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기분이 든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 등으로 외부 활동이 제한되면서 회식, 모임 등 다수가 함께 즐기는 음주 문화가 줄어든 반면 혼자서 술을 즐기는 ‘혼술’이나 집에서 술을 마시는 ‘홈술’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작년 9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발표한 ‘주류 시장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19~59세 성인 남녀 300명 중 주류 음용 장소로 ‘집’을 선택한 비중은 코로나19 이전 46.4%에 불과했으나, 이후에는 87.3%로 늘어났다.

최근에는 집에서 넷플릭스를 시청하면서 술을 즐기는 사람을 일컫는 ‘넷술족’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퇴근 후 평일 저녁이나 주말 동안 집에서 가볍게 즐기는 주류와 안주 그리고 영화와 드라마 정주행은 많은 스트리밍 족의 즐거움이다.

혼술·홈술 시장을 이끄는 핵심 주종은 바로 와인이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 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와인 수입액은 1억 966만 2000 달러(약 1220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15.4% 증가했다. 1분기 기준 와인 수입액이 1억 달러를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입량도 지난해 1분기보다 86.4% 증가한 1만 5473.1톤으로, 역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중의 와인 선호 현상은 빅데이터 분석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와인’이라는 키워드로 4월 19일부터 25일까지 12개 채널(뉴스 ·커뮤니티· 블로그· 카페 ·트위터· 인스타그램·유튜브·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지식인 기업/단체· 정부/공공)에서 연관어를 검색해보니 이전 일주일과(4월 12일~18일) 비교해 급상승한 연관어는 다음과 같다.

1위 연관어는 ‘만족하다(2,690개)’였고, 5위 ‘알뜰(1,652개)’ 6위 ‘편의점(1,579개)’ 9위는 ‘혼술(1534개)’이란 단어들이 눈에 띈다.

‘만족하다‘라는 단어는 여러 문맥에서 사용됐지만 최근 밀레니얼과 Z세대 등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을 추구하는 ‘가심비’ 문화의 확산으로 집에서 분위기 있게 즐기는 와인이 각광을 받고 있다는 분석 속에서 많이 쓰였다. 과거 와인은 특별한 날 고급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마시는 비싼 술, 전문 매장이나 백화점에서 구매하는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 알뜰한 가격의 와인을 선보여 와인의 대중화를 선도했고, 가성비 좋은 와인이 홈술, 혼술의 일상 주류가 됐다는 기사와 블로그 글들이 많이 보였다.

‘홈술’이란 단어의 지난 한 달 동안(3월 29일~4월 27일)의 감성어를 살펴보면 1위 ‘즐기다(2,637개)’부터 ‘맛있다’(2위 1,943개) ‘추천’(3위 1,549개) ‘최고’(4위 1,031개) ‘깔끔하다’(5위 1,015개) ‘쉽다’(6위1,002개) ‘좋아하다’(7위, 898개) ‘간편하다’(9위, 781개) 등 10위 안에 모두 긍정어가 자리했다. 코로나로 우울한 시절에 홈술이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홈술과 혼술 족의 증가에는 우려의 측면도 있다.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면 절제가 어려워 과음, 폭음 등 건강에 해가 되는 수준으로 술을 마시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혼술의 경우 평소 자신의 음주량의 절반 이하 정도로 마시고 속도도 최대한 천천히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안주 없이 술만 마시는 것은 피하고 음주 중간에 물이나 음료수를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전문가들은 또 사회적 소통 없는 혼술이 알코올 중독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충고하는데 이런 우려 때문인지 집에서 혼자 잔을 들이키면서도 비대면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술을 즐기는 ‘랜선 술자리’라는 새로운 문화도 생겨나고 있다. 아프리카TV, 트위치, 유튜브 플랫폼 등을 통해 크리에이터의 실시간 방송에 참여해 함께 술을 즐기는 ‘술트리밍족’과 화상 회의 플랫폼 ‘줌’을 통해 비대면으로 함께 술을 마시는 ‘줌술족’ 등이 등장했다.

술은 더불어 나눠야 제격이라며 여전히 ‘혼술유감’을 말하는 주당들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 ‘혼술’과 ‘홈술’은 거부할 수 없는 뉴노멀로 자리 잡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홈술’이란 단어가 계속 긍정적인 감성어들과 연관되기 위해서는 슬기로운 홈술 생활에 대한 사회적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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