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준 회장 선제 투자로 美 생산기반 확충...북미 전력시장 입지 강화
유럽·호주·일본으로 시장 다변화...초고압변압기 곳곳서 점유율 1위
HVDC·AI 데이터센터로 신사업 확대...창원엔 3300억원 투자

데이터가 21세기의 원유가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전력 인프라 투자를 뚝심 있게 밀어붙인 효성중공업의 10년 선구안이 '전력 슈퍼사이클'을 맞아 마침내 빛을 발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과 글로벌 노후 전력망 교체 주기가 맞물려 철저한 공급자 우위로 재편된 시장 상황 속에서 효성중공업은 올 상반기에만 지난해 연간 실적에 맞먹는 7조5000억 원 규모의 '수주 잭팟'을 터뜨리며 사상 최대 실적 랠리를 증명해 냈다.
미국 내 거점 확보를 비롯한 선제적인 현지화 전략과 독보적인 'K-전력기기' 기술력을 무기로 전 세계 송전망 패권을 쥐고 있는 효성중공업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장기적인 구조적 성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기존 초고압 변압기 시장에서의 압도적 지배력을 바탕으로 차세대 송전 기술인 초고압직류송전(HVDC)과 AI 데이터센터 신사업까지 성공적으로 연계하며 글로벌 전력망의 판도를 바꾸는 '토털 전력 솔루션' 기업으로 확고히 도약하고 있다.
美 생산기반 선제 확대…매출·수주 성장 견인
9일 업계에 따르면 효성중공업의 미국 전력시장 사업 확대 중심에는 멤피스 초고압변압기 공장이 있다. 조현준 효성 회장은 미국 내 생산거점이 향후 전력시장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고 2020년 멤피스 공장 인수를 추진했다. 효성중공업은 이후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노후 전력망 교체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에 앞서 생산능력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
멤피스 공장은 미국에서 유일하게 765kV급 초고압변압기를 설계·생산할 수 있다. 효성중공업은 2010년대 초부터 미국 765kV 초고압변압기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유지하며 현지 송전망에 설치된 제품의 절반 가까이를 공급해 왔다.
효성중공업은 최근 약 7870억원 규모의 765kV 초고압변압기·리액터 공급계약도 체결했다. 이는 미국에 진출한 국내 전력기기 업체의 단일 프로젝트 기준 최대 규모다.
효성중공업은 초고압변압기에 이어 초고압차단기까지 현지 생산체제를 확대하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북미 에너지 인프라 솔루션 기업인 콴타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오는 10월부터 미국에서 초고압차단기를 생산할 예정이다. 합작법인 설립 과정에서는 조 회장이 직접 협력을 주도했다. 조 회장은 미국 전력시장 확대를 위해 현지 인프라 기업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올해 3월 미국에서 콴타 CEO 등 주요 경영진을 만나 최종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에 따라 효성중공업은 국내 전력기기 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에서 초고압변압기와 차단기를 모두 생산하는 체제를 갖추게 된다. 양사는 향후 효성중공업의 전력기기 기술력과 콴타의 미국 내 유틸리티·발전·ESS·데이터센터 사업 기반을 연계해 사업 영역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미국향 매출 비중도 늘고 있다. 중공업 부문의 미국향 매출 비중은 올해 1분기 33%에서 2분기 38%로 높아졌다. 초고압변압기와 차단기 등 고수익 미국향 물량의 매출 반영이 실적 개선을 뒷받침하고 있다.

유럽·호주·일본으로 시장 다변화…초고압변압기 곳곳서 점유율 1위
효성중공업은 미국을 넘어 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도 수주 지역과 고객을 넓히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올해 상반기 북유럽에서만 약 2000억원 규모의 전력기기를 수주했다. 효성중공업은 최근 덴마크 국영 송전망 운영사 에너기넷에 400kV급 초고압변압기를 공급하며 덴마크 시장에 처음 진출했고 스웨덴에서는 최대 민간 전력 배전사 엘레비오와도 초고압변압기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효성중공업은 기존 핀란드·노르웨이까지 포함하면 북유럽 4개국에 400kV급 초고압변압기를 공급하게 됐다.
효성중공업은 서유럽에서도 입지를 넓히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2022년부터 영국 초고압변압기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지난해 12월 스코틀랜드 전력망 운영사와 약 1200억원 규모의 초고압변압기 공급계약을 체결했고, 앞서 5월에도 스코티쉬파워와 약 850억원 규모의 400kV 초고압변압기 공급계약을 확보했다.
효성중공업은 독일에서는 국내 전력기기 업체 최초로 주요 송전사업자와 초고압변압기·리액터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했고 프랑스에서도 현지 송전사업자와 장기공급계약에 이어 추가 수주를 확보했다. 효성중공업은 지난해에는 프랑스 송전사업자 RTE가 실시한 단락시험에서 600MVA급 초고압변압기 시험을 성공적으로 완료하며 대용량 제품의 안정성도 검증받았다. 효성중공업은 남유럽에서는 지난해 12월 스페인 주요 전력·에너지 기업들과 약 600억원 규모의 변압기·리액터 공급계약을 체결하며 북유럽에서 서·남유럽까지 유럽 전역으로 고객 기반을 넓혔다.
효성중공업은 현지 기술 대응 역량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네덜란드 아른험에 첫 글로벌 연구거점인 '유럽 R&D 센터'를 설립한 효성중공업은 SF₆-Free GIS를 중심으로 유럽의 환경 규제와 기술 기준에 대응하고 있으며 향후 HVDC까지 연구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효성중공업 관계자는 "초고압변압기 중심의 유럽 사업을 리액터, 저탄소형 차단기, STATCOM, HVDC 등으로 확대해 종합 전력 솔루션 공급 역량을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효성중공업은 호주와 일본에서도 사업 기반을 넓히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호주에서 지난 7월 빅토리아주 유일 송전망 운영사인 오스넷과 향후 5년간 약 3100억원 규모의 초고압변압기·리액터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했다. 효성중공업은 현재 호주 초고압변압기 시장 점유율 1위로, 빅토리아·퀸즐랜드·뉴사우스웨일스·남호주 등 주요 지역에 전력기기를 공급하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ESS 사업도 확대해 지난 3월 호주 퀸즐랜드주에서 1425억원 규모의 100MW/200MWh ESS 프로젝트를 수주했으며 2027년 말 상업운전을 목표로 설계·조달·시공(EPC)을 수행할 예정이다.
일본 ESS 시장에서도 진출 첫해부터 성과를 내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지난 2월 홋카이도 시라누카 지역의 48.5MW/228MWh급 특고압 ESS 프로젝트를 수주했고 5월에는 오이타·구마모토·야마구치·오카야마·미에 등 5개 지역에 총 10MW/40MWh 규모의 고압 ESS를 구축하는 약 110억원 규모의 EPC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상반기 일본 ESS 누적 수주액은 약 640억원으로 국내 전력기기 업체 중 최대 규모다.
지역별 전력 주파수와 계통 연계 기준이 까다로운 일본 시장에서 효성중공업은 설계와 기자재 공급에 더해 최장 20년간 유지보수(O&M)까지 제공하며 'ESS 토털 솔루션'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2009년 ESS 사업에 진출한 이후 국내 시장에서 경험을 축적해 왔다. 2024년에는 단일 기준 국내 최대 용량인 336MW 규모 ESS를 한국전력 부북변전소에 구축했고 BNEF(BloombergNEF)의 최우수 ESS 업체(Tier 1)로도 등재됐다. 효성중공업은 영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해외에서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재생에너지 확대가 빠른 국가를 중심으로 전력기기와 ESS 사업을 계속 넓혀갈 계획이다.

HVDC·AI 데이터센터로 신사업 확대…창원엔 3300억원 투자
효성중공업은 미래 전력망의 핵심 기술인 HVDC(초고압직류송전)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HVDC는 대규모 전력을 장거리로 효율적으로 송전하고 계통 안정성을 높이는 기술로, 서해안과 호남권의 재생에너지 전력을 수도권 등 주요 수요지역으로 보내는 정부의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 구축에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2017년부터 약 1000억원을 투자해 전압형 HVDC 기술을 개발해 왔으며 2024년에는 국내 최초로 독자 개발한 200MW급 전압형 HVDC를 양주변전소에 구축했다. 효성중공업은 현재 2GW급 대용량 전압형 HVDC 기술을 개발 중으로 창원공장에는 총 3300억원을 투자해 HVDC 변압기 전용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27년 완공 후에는 시스템 설계부터 컨버터·제어기·변압기 등 핵심 기자재까지 자체 공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된다. 효성중공업 관계자는 "국내 대규모 송전망 사업은 물론 해외 HVDC 시장까지 사업 영역을 넓힐 것"이라고 언급했다.
효성중공업은 AI 시대를 겨냥한 데이터센터 사업도 새로운 성장축으로 육성하고 있다. 조현준 회장은 일찍부터 데이터의 중요성에 주목해 데이터가 21세기의 원유가 될 것이라는 확신 아래 AI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인 시대를 내다보고 데이터센터 사업을 장기간 준비해 왔다. 효성은 2017년 데이터센터 사업 검토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으며 2019년에는 조 회장이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문기업 STT GDC의 브루노 로페즈 회장을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하며 전략적 파트너십과 합작법인 설립으로 이어갔다. 그 결과 효성은 지난 6월 서울 가산동에 AI·클라우드 특화 데이터센터 'STT Seoul 1'을 개관하며 사업을 본격화했다. 해당 데이터센터는 최대 30MW 규모의 IT 용량을 갖춘 도심형 데이터센터다.
데이터센터 사업과 기존 사업의 시너지도 기대된다. 효성은 효성중공업의 초고압변압기·차단기와 전력품질 솔루션, 건설 역량을 데이터센터 구축에 활용하고 효성ITX의 클라우드·디지털전환(DX)·IT 운영 경험도 연계할 수 있다. 효성중공업은 여기에 더해 반도체변압기(SST)를 고도화하고 STATCOM과 HVDC 등 전력변환 기술을 데이터센터 전력망에 적용하는 AI 데이터센터용 차세대 전력기술 개발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시장 상황이 한국 전력기기 업계에 '최적의 기회'라고 진단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급증에 따른 미국의 전력 수요 확대와 노후 전력망 교체 시기가 맞물리면서 초고압 변압기 등 전력기기 수요가 구조적으로 늘고 있다"며 "변압기는 수주부터 생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공급업체도 제한적이어서 현재 철저한 공급자 우위의 시장이 형성된 상태"라고 분석했다.
최근 미국의 정책 기조 변화도 효성중공업 등 국내 업체에 우호적인 여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외국산 전력기기가 자국 전력망을 위협한다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안보 위협으로 간주되는 변압기·인버터·고압차단기 등의 수입 및 설치를 제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김 교수는 "미국이 중국산 전력기기에 대한 안보 규제의 고삐를 죄면서 한국 기업들의 상대적 경쟁력이 한층 부각될 것"이라며 "중국을 대체할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두루 갖춘 한국 기업들에는 미국 내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내다봤다. 그는 "효성중공업을 비롯해 HD현대일렉트릭, LS일렉트릭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은 초고압 변압기 및 전력망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어 상당한 수혜가 예상된다"며 "단순한 일회성 수출 증가가 아닌, AI 시대 전력 인프라 투자라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성장 궤도에 올라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다만 중장기적인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는 선제적인 투자와 현지화가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 교수는 "미국이 자국 내 생산을 중시하는 만큼 현지화 전략을 얼마나 발 빠르게 추진하느냐가 향후 시장 점유율을 좌우할 것"이라며 "생산능력 확대는 물론 현지 생산시설 투자, 인력 확보, 공급망 안정화 등을 적극적으로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한국 전력기기 업체들이 향후 10년 이상 지속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맞은 시점"이라며 기민한 대응을 주문했다.
효성중공업의 사업 확장은 호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0.6% 증가한 1조6870억원, 영업이익은 60.9% 증가한 2643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다. 효성중공업은 상반기 누적으로는 연결 기준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7.1% 증가한 3조451억원, 영업이익은 56.2% 증가한 4166억원을 기록했다. 수주 성장세도 엿보인다. 연결 기준 2분기 신규 수주는 3조3242억원, 상반기 누적 신규 수주는 7조498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연간 수주 실적에 근접하는 규모다. 특히 미국이 상반기 신규 수주의 71%를 차지하면서 수주 성장의 핵심 시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동영상 뉴스 보기, 아래 클릭
AI가 불붙인 전력전쟁…효성중공업이 웃었다
조재훈 빅데이터뉴스 기자 cjh@thebigdata.co.kr
<저작권자 © 빅데이터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