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영의 正주행] 볼보 EX30, 작은 고추가 매운 이유

성상영 기자

2025-07-15 08:00:00

볼보 전기차 막내 'EX30' 730㎞ 타보니

볼보 EX30 앞모습 =성상영 기자
볼보 EX30 앞모습 =성상영 기자
[빅데이터뉴스 성상영 기자] 작은 고추가 맵다더니 헛말이 아니었다. 볼보자동차가 지난 2월 국내에 출시한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X30은 작지만 다부졌다. 경쾌한 움직임과 안정감 있는 자세는 볼보라는 브랜드를 다시 보게 했다. 흔히 알려진 대로 '충돌로부터 탑승자를 잘 지켜주는 차'에만 그치지 않았다.

EX30의 사전 예약이 시작된 건 무려 2023년 11월 말. 정식 출시일과 1년 넘게 차이 난다. 지난해 몇 차례 출고가 지연되면서 해가 두 번이나 바뀌었고 구매자들은 목이 빠져라 기다려야 했다. 올해 4월에서야 본격적으로 차량 인도가 이뤄졌으니 사전 예약자들은 만 16개월 동안 '참을 인(忍)'자를 쓰며 버틴 셈이다.

최근 서울 도심과 강원 고성군·속초시 일대를 오가며 경험한 EX30은 오랜 기다림에 화답하듯 좋은 면모를 보여줬다. 시승은 시내 도로와 고속도로, 일반국도, 와인딩 로드(구불구불한 길) 총 730여㎞에 걸쳐 이뤄졌다.

볼보 EX30 옆모습 =성상영 기자
볼보 EX30 옆모습 =성상영 기자
◆"이거 볼보차 맞아?" 파격적 '미니멀리즘'

EX30은 최근 출시된 소형급 전기차 중에서도 작은 편이다. 전장은 4235㎜로 같은 소형 SUV에 속하는 현대자동차 코나 일렉트릭(4355㎜), 기아 EV3(4310㎜)보다 짧다. 앞뒤 바퀴 중심 축 사이 간격인 휠베이스는 2650㎜로 앞선 두 차량이 각각 10㎜, 30㎜ 더 길다.
차체 길이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휠베이스가 길고 앞뒤 오버행(바퀴 축에서 범퍼 끝까지 거리)이 짧은 모습이다. 차체 하부에 배터리가 들어갈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 덕분에 시각적으로 역동적이면서 안정감 있어 보이는 효과도 챙겼다.

외관은 볼보 차량에서 드러나는 특징이 녹아 있으면서 기존 내연기관 모델과는 다른 인상을 풍긴다. 전면부는 볼보차를 상징하는 '토르의 망치' 전조등과 사선형 엠블럼을 재해석해 전기차 특유의 간결함과 미래 지향적 느낌을 담았다. 이런 특징은 후면부 'd'와 'b'자 모양 후미등으로 이어진다. 옆에서 바라보면 작은 차체에도 불구하고 SUV다운 볼륨감이 제법 멋스럽다.

볼보 EX30 뒷모습 =성상영 기자
볼보 EX30 뒷모습 =성상영 기자
극적인 변화는 실내에 집중됐다. 운전석 문을 열면 깜짝 놀랄 정도로 단순하다. 있는 거라곤 스티어링 휠과 태블릿 PC를 연상케 하는 중앙 인포테인먼트 화면이 거의 전부다. 비상등, 공조 장치, 주차 브레이크 등을 조작하는 버튼은 물론 계기반도 없다. 심지어 스피커는 문짝과 A필러(앞쪽 첫 번째 기둥) 어디에도 없다. 감당하기 어려운 '미니멀리즘'에 "이게 볼보차라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각 부위에 적용된 소재도 남달랐다. 일반적인 가죽과 직물, 우레탄, 플라스틱 대신 내장재 30%를 재활용·친환경 소재로 썼다. 좌석 재질도 가죽이 아닌 직물이다. 대시보드와 팔걸이는 푹신하면서 까슬까슬해서 처음엔 낯설었는데 더운 날엔 끈적거리지 않아 괜찮았다.

뒷좌석은 예상 외로 좁았다. 체급 대비 긴 휠베이스 때문에 공간이 꽤 넓을 것 같았는데 아니다. 키 180㎝ 남성을 기준으로 운전석 위치를 맞추고 그대로 뒷좌석에 앉으면 무릎 쪽에 여유가 별로 없다. 물론 EX30은 패밀리카는 아니다. 그래도 천장 전체를 뒤덮는 파노라마 글라스 루프가 있어 답답하진 않았다.

볼보 EX30 앞좌석 =성상영 기자
볼보 EX30 앞좌석 =성상영 기자
◆"통풍 시트 없음 어때" 기본기는 '동급 최강'

EX30은 달릴 때 진가를 드러냈다. 힘과 안정성이 균형을 이루면서 승차감도 잘 다듬어졌다. 몸집이 작아 운전이 편하기도 했지만 움직임이 상당히 민첩했다. 뒷바퀴를 굴리는 전기 모터는 최고 출력 272마력, 최대 토크(회전력) 35.0㎏f·m를 낸다. 공차 중량이 1810㎏인 점을 감안하면 차고 넘치는 성능이다.

그렇다고 힘만 센 것도 아니다. 그만큼 하체가 잘 받쳐 줬다. 급격하게 조향을 해도 차체가 중심을 잡았다. 소위 '펀 드라이빙'을 웬만큼 즐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작은 크기, 짧은 휠베이스가 강점이기도 하겠지만 국산·수입차를 불문하고 동급 전기차 대비 기본기가 확실히 잘 다져졌다. 종합적인 주행 성능만 놓고 본다면 '5000만원 넘는 전기차에 통풍 시트가 없다'고 불평하기 망설여진다.

승차감은 기본적으로 부드러운 편인데 도로에 땜질을 한 곳이나 맨홀 같은 특정 조건에선 단단함도 느껴졌다. 요철을 넘을 때 충격을 운전자에게 일정 부분 전달하지만 몸을 거칠게 툭툭 치는 듯한 불쾌감을 주지는 않는다. 마냥 부드럽다거나 단단하다기보다는 고급스러움에 가까웠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뗐을 때 이질감 없이 자연스러운 감속이 이뤄지는 점도 승차감 향상에 도움을 줬다.

볼보 EX30 운전석. 인공지능(AI) 편집 기능으로 배경 일부 제거 =성상영 기자
볼보 EX30 운전석. 인공지능(AI) 편집 기능으로 배경 일부 제거 =성상영 기자
감성 품질을 결정하는 또 다른 요소인 음향은 독특한 느낌이었다. 일반적으로 소형 SUV에 들어가는 스피커 개수는 6~10개 정도인데, EX30에는 여러 스피커 한 데 합친 하만카돈 사운드바가 대시보드 좌우로 길게 자리 잡았다. 앞좌석에서만큼은 각 문짝에 스피커가 달린 차 못지않게 공간감과 입체감이 있었다.

전기차에서 가장 중요한 배터리 성능은 무난했다. 서울에서 잔량 81%로 출발, 속초까지 195㎞를 달렸더니 17%가 남았다. 킬로와트시(㎾h)당 주행 거리(㎞)로 환산한 연비는 약 4.8㎞/㎾h. 공식 제원표에 적힌 WLTP 기준 복합 연비와 동일한 수치다.

이후 100㎾급 급속 충전으로 배터리를 89%까지 채운 결과 356㎞ 주행 가능하다고 나왔다. 환경부 인증 기준 1회 충전 복합 주행거리(351㎞)를 한참 웃돈다. 요즘 같이 무더운 날씨만 아니면 1회 완충으로 서울-부산 완주도 노려 볼 만하다. 덧붙이자면 서울에서 인천 영종도까지 71㎞를 주행한 연비는 6.8㎞/㎾h, 총 시승 거리 734㎞ 기준으론 5.6㎞/㎾h를 기록했다. EX30에는 66㎾h 용량의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가 탑재됐다. 셀 제조사는 중국 '선우다'라는 곳이다.

볼보 EX30 뒷좌석에서 바라본 모습 =성상영 기자
볼보 EX30 뒷좌석에서 바라본 모습 =성상영 기자
◆디자인·가격·성능 다 좋은데…'미니멀리즘'도 과유불급

볼보 EX30은 분명 잘 만든 전기차다. 디자인도 잘 빠졌고 성능도 우수하다. 친환경차 보조금을 받지 않고 세제 혜택만 적용한 트림(세부 모델)별 가격은 '코어' 4755만원, '울트라' 5183만원으로 가격 경쟁력마저 갖췄다.

이는 본고장인 스웨덴은 물론 독일·프랑스 등 유럽 국가와 비교해 2000만원가량 저렴한 것으로 볼보자동차코리아가 본사와 치열한 '밀당(밀고 당기기)'을 거듭한 결과라고 한다. 그만큼 많은 국내 소비자에게 EX30을 판매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얘기다. 이윤모 볼보차코리아 대표는 올해 목표 판매량을 3000대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볼보차코리아의 이 같은 포부가 무색할 정도로 치명적인 단점이 EX30에 존재했다. 독이 든 성배가 돼 버린 '미니멀리즘'이 그것이다. 볼보차는 극한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한 나머지 있어야 할 것들도 없앴다.

대표적인 요소가 계기반의 부재다. 현재 주행 속력을 볼 때마다 시선을 중앙 인포테인먼트 화면으로 옮겨야 했다. 게다가 운전 중 내비게이션을 띄운 상태에서 주행 거리, 연비 같은 정보를 확인하려면 해당 메뉴를 찾아 들어가야 했다. 현재 시각, 배터리 잔량은 글자가 너무 작아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전면 유리에 속력, 경로 등 주행 정보를 표시해 주는 헤드업 디스플레이(HUD)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전기차 브랜드한테 이토록 고약한 걸 배웠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볼보 EX30 트렁크 =성상영 기자
볼보 EX30 트렁크 =성상영 기자
와이퍼나 등화 장치를 작동하는 것조차 화면을 보면서 해야 했다. 사이드미러를 접고 펴거나 각도를 조절하는 동작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운전자가 시동 버튼보다 더 자주 사용하는 비상등은 화면 우측 하단에 작게 박혀 있어 막상 '비상' 상황에선 쓰지도 못했다. 전방을 제대로 주시하고 싶어도 시선이 자꾸만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정작 차량은 스티어링 휠 뒤쪽 센서를 통해 끊임없이 운전자를 살피며 운전에 집중하라고 잔소리를 쏟아냈다. 그런데 EX30을 타는 동안 '주의' 경고를 들은 거의 모든 경우가 인포테인먼트 화면을 볼 때였다.

물론 완전 자율주행 시대가 온다면 사이드미러 스위치는커녕 거울 자체가 없어도 상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한 볼보는 미니멀리즘이 직관성을 해치지 않도록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이는 안전과 직결된 문제다. 국내 소비자가 볼보차를 선택하는 이유는 '안전한 차'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 같은 신뢰는 볼보가 오랜 기간 고집스러울 정도로 노력을 쏟아부은 끝에 얻은 결실이다.

<못다 한 이야기: 언젠가는 사라질 불편함>

EX30을 시승하는 중 걱정스러운 순간이 있었다. 안개가 잔뜩 낀 도로로 들어서게 됐는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후방 안개등을 켜려고 했더니 ①화면 하단 '차량 설정' 아이콘을 누르고 ②'외부 조명'을 누른 다음 ③후방 안개등 기호를 찾아 눌러야 했다. 스티어링 휠 양쪽에 있는 레버의 기능이 대폭 생략된 탓이다. EX30 스티어링 휠 왼쪽 레버엔 방향지시등, 앞·뒤 유리 워셔액 분사, 상향등 조작 기능만 있다. 반대편 레버로는 변속과 크루즈 컨트롤(정속 주행 장치) 실행만 가능하다.

사이드미러 각도나 좌석 위치를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았다. ①차량 설정 아이콘을 누르고 ②'미러'를 누른 뒤 ③각도를 조정할 사이드 미러 방향을 선택하고 ④스티어링 휠 오른쪽 버튼(◀▶▲▼)을 눌러야 한다. 시야가 제한적인 옥내 주차장에서 처음부터 완벽하게 사이드미러를 맞추기 어려울 뿐더러 운전자가 목석처럼 자세를 고정하지 않는 한 주행 중 거울로 보이는 범위와 좌석 위치가 조금씩 바뀔 수 있다. 혼자만 차량을 타고 다니더라도 해당 기능을 써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운전자가 차량을 모는 중에 운전대를 돌리고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만 밟는 게 절대 아니다. EX30의 가장 큰 문제는 운전 중 수시로, 신속하게, 직관적으로 조작할 수 있어야 하는 기능들조차 화면에 통합시킴으로써 운전자로 하여금 주의를 분산시킨다는 것이다. 뒷좌석 창문을 열기 위해 '리어' 버튼을 따로 눌러야 하는 정도는 애교 수준이다.


성상영 빅데이터뉴스 기자 ssy@thebigdata.co.kr, showing199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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