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광장] 유머가 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2020-03-06 12:05:07

김희정 /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 이사. 전 KBS 아나운서
김희정 /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 이사. 전 KBS 아나운서
친구로부터 카카오 톡으로 ‘확찐자’라는 제목의 글을 받았다. 동네 아주머니가 ‘확찐자’로 판명 났다는 것이다. 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서워서, 밖에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 밥만 먹고 운동도 하지 않고 2주일이 지나다 보니 ‘살이 확 찐 자’로 판명 났다는 유머러스한 내용이었다. 바이러스 확진자가 아니라. ‘확찐자’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 뜻을 모르고 한참을 갸우뚱했다. 평소에 유머를 좋아하고 즐기는 편인데 언어적 뉘앙스를 쉽게 알아채지 못했다. 아마도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공포심을 갖고 있던 터라 두뇌활동이 원활하지 유연하지 못한 것 같다. 어쨌든 한참 만에 그 유머 포인트를 깨닫고는 오랜만에 한바탕 웃을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웃음기 없는 날들을 너무 오래 견디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답답함을 견뎌야하는 바로 그 상황을 비틀어 희화화한 유머를 접하고 나니 긴장된 마음이 풀리는 거 같다. 몸과 마음에도 작은 변화가 이는 것 같았다. 가족과 친지 등 만나는 사람마다 그 유머 글을 전했는데 대부분은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카톡방에서 대 유행이었던 모양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강퍅한 날들을 보내면서 사람들은 모두 정신적 여유와 유머를 갈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렇듯 사람에게 웃음을 유발하는 유머로 이낙연 전 총리의 아들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어떤이는 실언을 했다고 하고, 어떤 이는 망언이라고까지 했다. 대학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 이 전 총리의 아들은 한 유튜브 방송에서, “코로나는 코로 나온다”고 말해 야당으로부터 맹공격을 당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국민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때 전 총리의 아들이 코로나를 소재로 농담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정도 유머가 그렇게 정치적 공격을 당할 일인지 의문스럽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국가적인 고통과 엄중함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설득력을 얻으며 개인과 사회가 멈춰버린 듯한 불안과 고통 속에 살고 있다. 바로 이렇게 힘들 때일수록 유머가 필요한 것 아닐까. 어려운 일이 닥치면 웃을 여유가 안 생긴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웃다 보면 나름의 여유도 생기고 더 현실을 잘 직시할 수 있게 된다. 유머란 사람들에게 흥미만 자극하는게 아니고 이 과정에서 긍정적인 태도를 유발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이 전 총리의 아들의 유머가 공격 받는 이유가 더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것도 유튜브 방송에서 시종일관 농담을 한 것이 아니라 초반에 가볍게 유머로 시작한 것 뿐인데 야당 등 정치권은 그렇게 까지 공격을 해야 했는지 씁쓸하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 전체가 멈춘 듯, 힘들고 숨이 막히는데 유머조차도 유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에 답답함이 가중되는 느낌이다.
유머와 웃음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귀중한 능력으로 평가된다.

적재적소에 유머를 잘 활용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 공감을 받고 설득 능력도 함께 높일 수 있어 인기를가 높다. 이 전 총리의 아들의 유머가 엄중한 국가 위기 앞에서 공감이 안 될 수 있다. 웃을 여유가 없는 그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단순 유머까지 정치적인 논리의 비판으로, 힘든 우리 사회를 더 경직시킬 필요가 있는지 안타깝다. 간호학대사전에 의하면 유머와 웃음은 건강 유지를 위해서도 유용하고, 일상적인 스트레스 해소에 응용할 수 있어 환자 간호에 유머 역할이 명시되어 있다.

우리사회도 이제 유머에 좀 더 관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유머를 구사한다는 것은 실패할 수도 있는 위험을 딛고 상대방에게 부드러운 분위기를 서비스하는 것이다. 어설픈 유머는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 유머이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스피치를 강의하고 있는 필자는 유머가 한 사회의 포용력과 성숙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라고 본다. 유머를 구사하는 사람이 낭패를 겪거나 공격을 당하지 않는 여유로운 사회, 우리 사회도 이제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김희정 / 글로벌빅테이터 연구소 이사·전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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