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치의 품격 높인 여의도 한 장면

기사입력 : 2019-11-22 09: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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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이사
최근 정치권에서 믿기 어려운 훈훈한 미담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낙연 총리가 강기정청와대정무수석의 고성사건에 관해 사과했는데 주광덕의원이 이에 대해 ‘감동적’이라고 한 것이다.

이낙연 총리의 사과는 장황하지 않았다. 강기정정무수석의 잘못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 ‘송구스럽다’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총리의 사과에는 진심이 담겨있었고 주광덕의원은 “멋지고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했다”며 이 총리의 사과표명을 극찬했다. 사실 주광덕의원은 2018년 국회를 빛낸 바른정치언어상과 2017년 국회의원 아름다운 말 선플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이 같은 내공이 정치인으로서 보여주기 쉽지 않은 훈훈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언어로 커뮤니케이션의 정도를 보임으로써 여의도 정치의 격을 한 단계 높이는 장면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 총리 역시 평소 언행에 신뢰가 담기지 않았다면 사과의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총리는 대선주자 중에서 지지율 1위로 국민적 선호도가 매우 높다. 더불어 민주당이 조국 사태로 지지율이 추락 할 때도 이 총리는 1위 자리를 꾸준히 이어왔다. 대선후보를 논할 때 가장 우선되는 자질이 리더십이라고 한다면 이 총리의 리더십은 어떤 이미지로 형성된 것일까?

한때 “이낙연 밀랍 인형 설”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 총리의 표정과 자세가 어떤 상황, 어떤 장소에서도 한결같다는 점을 포착한 네티즌들이 이 총리를 밀랍인형에 빗대 애정 어린 유머의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밀랍 인형 설 이후 이낙연 총리는 젊은 네티즌 사이에서 더욱 인기가 높아졌다.

커뮤니케이션의 이론 중 ‘메라비언의 법칙’에 따르면 스피치에 있어서 수용자가 받아들이는 메시지의 중요도는 언어적 메시지보다 비언어적 메시지가 압도적으로 높다고 한다.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 즉, 화자가 어떤 표정과 자세와 눈빛, 어떤 음색과 높낮이 등으로 말하느냐가 더 중요하게 와 닿는다는 것이다.

‘밀랍인형설’을 낳은 이 총리의 사진들을 보면 이 총리의 자세는 시종일관 침착하고 반듯하며 얼굴에는 가벼운 미소를 띠고 있는데 눈은 언제나 상대방을 정확히 응시하여 따뜻하다. 좌우 진영이 극심하게 나뉘어 혼란한 정국에서 이 총리의 흔들림 없는 비언어적 메시지는 국민에게 상당한 안정감을 준다.

비언어적 메시지는 자세와 눈빛 같은 외적요소 뿐 아니라 음성요소로도 이루어지는데 이 총리의 나지막한 음성과 적절한 속도, 부드러운 음색은 중후함과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스피치의 최종적인 완성은 뭐니 뭐니 해도 콘텐츠, 즉 말의 내용에 있다할 것이다. 이 총리의 레토릭은 총리에 갓 임명된 시절부터 지금까지 화제가 되고 있는데 정확하면서도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기지가 있다. 정치9단이라고 하는 박지원 의원조차 이 총리를 두고 ‘언어의 마술사’라고 지칭한 바 있다. 이 총리의 핵심을 찌르는 말솜씨는 상당한 카리스마를 풍기면서 리더십을 완성한다. 결국 이 총리의 리더십은 ‘따뜻함’, ‘안정감’과 더불어 화술에서 오는 ‘능력’있는 이미지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이 총리의 화술은 대정부질의에서 야당의원과 공방할 때 특히 빛을 발하곤 한다. 대정부 질의에 나선 야당의원은 언어의 창을 쥐고 화려한 검술을 자랑하게 된다. 하지만 방어를 해야 하는 정부인사는 그 창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게 마련인데 이 총리의 답변은 그렇지 않다. 예상을 벗어나 창의적일 뿐 아니라 소극적 방어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상대의 허를 찌른다.

그런데 야당의원들이 반발하지 않고 말문이 막히고 마는 것은 그의 공손한 태도 때문이다. 총리라고 거들먹거리거나 권위로 제압하려하지 않고 나지막한 목소리와 절제된 움직임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가운데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다.

그간 사이다 화법을 자랑하던 이 총리는 이번에 특유의 겸손함과 진정성으로 감동적인 사과를 했고 주광덕의원은 이에 반응하는 섬세함을 보여주었다.

현대의 정치인이 국민을 움직이는 힘은 물리력도 금력도 아닌 말의 힘에 있다. 자신의 말을 가다듬고 말로써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일부 정치인은 정제된 말보다는 자극적인 말, 심지어 막말로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려고 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거친 막말은 화자의 콘텐츠 부재를 확인 시켜 줄 뿐이다. 거친 언어로는 잠깐 국민의 시선을 끌 수 있을지 몰라도 설득시키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유권자에게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면 정치생명이 오래 갈 리가 없다.

총리와 야당의원의 훈훈한 미담 사례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상대를 향한 날선 지적과 거친 언어로는 소통할 수 없다. 소통 정치의 시작은 고운 말로 서로를 배려하고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아나운서 시절 고운말 바른말 사용에 많은 품을 들였던 필자 입장에서는 주광덕 의원의 품격 있는 언어와 이낙연 총리의 넉넉한 카리스마가 주는 메시지가 새삼 설득력 높게 다가온다. <김희정 / 전 KBS 아나운서.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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