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 이후 2달 반 만에 돌파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이날 장중 5000선을 처음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한국 증시가 공식 출범한 지 70년을 맞는 해에 이룬 성과로 국내 자본시장의 성장사를 상징하는 이정표로 평가된다. 코스피 4000 이후 2달 반만의 결과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지난 1월 2일 증시 개장식에서 “코스피가 5,000을 넘어 프리미엄 시장으로 도약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연초 제시된 이 같은 기대는 시장 예상보다 빠르게 현실이 됐다는 평가다.
한국 유가증권시장의 출발점은 1956년 3월 3일 대한증권거래소 출범이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1953년 11월 설립된 대한증권업협회가 주식시장 개설을 추진하면서 현대적 의미의 증권거래소가 태동했다.
개장 당시 상장사는 모두 12개에 불과했다. 조흥은행, 저축은행, 한국상업은행, 흥업은행 등 4개 은행과 대한해운공사, 대한조선공사, 경성전기, 남선전기, 조선운수, 경성방직 등 일반 기업 6곳, 정책적 목적의 대한증권거래소와 한국연합증권금융이 전부였다.
이후 정부 주도의 제도 정비와 산업화가 맞물리며 시장은 점차 외형을 키웠다. 1962년 1월 증권거래법 제정을 계기로 거래가 본격화되면서 1961년 4억원에 머물던 연간 주식 거래대금은 이듬해 1000억원 수준으로 급증했다.
다만 같은 해 5월 투기 과열로 촉발된 이른바 ‘증권 파동’으로 거래소가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지며 첫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 여파로 시장은 장기간 휴장에 들어갔고 사회적 충격도 컸다.
정부는 이후 1968년 자본시장육성 특별법과 1972년 기업공개촉진법을 제정하며 자본시장 정상화에 나섰다. 그 결과 1970년대 들어 기업들의 상장 러시가 이어졌고, 상장사 수는 1973년 처음으로 100개를 넘어섰다.

코스피 지수는 1983년 1월 4일 122.52로 처음 공표됐다. 이는 1980년 1월 4일 시가총액을 기준값 100으로 산출한 것이다. 이후 1989년 3월 31일 1000선을 돌파하며 ‘네 자릿수 지수’ 시대를 열었다.
1980년대는 서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이어간 시기로, 이른바 ‘3저 호황’과 국민주 보급 확대에 힘입어 주식 대중화가 본격화됐다. 1992년 외국인 직접 투자가 전면 허용되면서 국내 증시는 글로벌 자본시장과 본격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코스피는 1998년 6월 277.37까지 급락했고, 다수 기업이 상장폐지되며 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구조조정과 제도 개선을 거쳐 1999년 1000선을 회복했지만, IT 버블 붕괴와 9·11 테러 여파로 다시 400선까지 후퇴했다.
2007년 글로벌 경기 호황과 펀드 투자 열풍에 힘입어 코스피는 2000선을 넘어섰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다시 1000선 아래로 밀렸다. 2017년 반도체 호황 국면에서 2500선을 회복했지만 미중 무역갈등 등 대외 변수로 상승세는 제한됐다.
2020년 3월 코로나19 충격으로 1500선까지 추락한 코스피는 개인 투자자 유입과 글로벌 초저금리 기조 속에 빠르게 반등했다.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에 힘입어 2021년 1월 3000선을 돌파했다.
이후 조정 국면을 거쳐 2024년 말 2399.49로 마감했던 코스피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증시 부양 기대가 확산되며 반등했다. 지난해 6월 3000선을 회복한 데 이어 10월에는 4000선을 넘어섰고, 새해 들어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조재훈 빅데이터뉴스 기자 cjh@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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