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춘천 소양댐까지 200㎞ 타보니
강렬한 외관, 완성도 높은 실내 인상적
패밀리카다운 부드러운 주행 질감 갖춰
동급 유럽 전기차 중 가격 경쟁력 충분

옛 르노삼성자동차 시절까지 포함하면 르노는 다른 완성차 브랜드에 전혀 밀리지 않을 만큼 전기차에 진지했다. 2013년 출시된 SM3 Z.E는 2020년 말 단종될 때까지 국내 유일 전기 세단으로 독보적인 입지를 과시했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초소형 전기차 트위지나 소형 해치백 조에 같은 차량을 꾸준히 국내에 선보이며 명맥을 이어 왔다.
최근 시승한 르노 세닉 E-테크는 전기차를 향한 르노의 애정이 여전히 식지 않았음을 보여준 차였다. 소형 SUV와 준중형 SUV의 경계에 있으면서 준수한 외관·성능·편의 사양을 뽐냈다. 전기차 시장에서 출발은 빨랐으나 템포를 놓친 르노의 역작 같았다. 매서운 폭염이 일찌감치 덮친 지난달 서울 르노 성수에서 강원 춘천시 소양댐까지 왕복 약 200㎞ 구간을 르노 세닉 E-테크와 함께했다.

르노 세닉 E-테크는 외관부터 강렬한 인상을 풍기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체적으로 낮게 깔리면서 안정감을 주는 외형에 가늘게 찢어진 헤드램프(전조등)로 체급에 걸맞은 날렵함을 담았다. 화살촉 모양으로 전방을 향해 파고 드는 주간주행등은 밤낮 할 것 없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전면 그릴 부분엔 안팎으로 두 번 꺾인 면에 더해 비늘 모양으로 음각 패턴을 넣으면서 입체감을 높였다.
옆 모습은 문짝 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창문 면적이 작아 보이는데 그 덕분에 차체가 조금 더 낮게 느껴지게 했다. 특히 뒤쪽으로 갈수록 지붕은 아래로 내려오고 창문과 문짝의 경계는 위로 향하는 유선형으로 돼 있어 낮은 무게 중심이 강조됐다. 이 같은 특성은 면적이 최소화된 뒷 유리와 이어지며 전면에서 드러난 굴곡과 만나 완성된 형태를 이뤘다.

아무리 디자인이 훌륭해도 운전자가 사용하기 불편하면 무용지물이다. 요즘 일부 전기차 브랜드는 '미래 지향'을 명분으로 안전 운행에 필수적인 버튼들조차 죄다 없애 버리는 기행을 일삼는다. 그러나 르노는 세닉 E-테크에 있어야 할 것들을 그대로 놔뒀다. 이것만 해도 꽤 만족스러웠다. 컵 홀더 개수와 위치가 아쉬웠지만 스마트폰 무선 충전 패드를 비롯해 각종 수납 공간은 부족하지 않았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반응 속도나 조작감이 나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생산해 국내로 수입되는 만큼 르노코리아 부산 공장에서 만들어진 그랑 콜레오스와 달리 티맵 오토는 빠져 있다. 따라서 내비게이션을 쓰려면 안드로이드 오토나 애플 카플레이 같은 스마트폰 연동 기능을 사용해야 한다.

실내에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자유자재로 이용 가능한 뒷좌석 암레스트(팔걸이)였다. 컵 홀더 역할을 겸하는 암레스트는 태블릿 PC 거치대와 수납함으로 활용할 수 있어 편리했다. 뚜껑을 열면 USB-C 타입 단자도 함께 나타난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곳은 통유리로 된 천장이었다. 테슬라나 폴스타 전기차에서 볼 수 있는 글래스 루프가 세닉 E-테크에도 들어갔다. 그 덕분에 개방감이 확실히 뛰어났다. 유리 지붕은 여러 칸으로 나뉘어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었는데 햇빛을 완전히 막아주는 블라인드가 따로 없어 아쉬웠다.
소재의 질감은 체급 대비 준수한 편이다. 도어 트림(문짝 내장) 일부와 대시보드 하단 패널 등을 제외하면 생 플라스틱이 그대로 노출되는 부위가 적었다. 살갗이 닿는 부분과 시트는 가죽으로 마감돼 있었다. 대시보드 상단, 바닥 카펫, 스티어링 휠 등 각 부위에 폐 플라스틱을 재활용하거나 바이오 소재를 쓴 점도 돋보인다.

르노 성수를 출발해 시내 도로로 나서자 부드러운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상위 트림(모델 등급) 기준 1915㎏으로 동급 전기차 대비 가벼운 차체에 최고 출력 218마력, 최대 토크 30.6㎏f·m를 내는 모터가 탑재돼 가속 성능은 여유롭다. 그러나 일상 주행에서 탑승객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가속 페달 반응이 잘 조율돼 있었다.
그렇다고 달리는 맛까지 지우지는 않았다. 페달을 좀 더 깊이 밟으면 전기차 특유의 튀어나가는 가속감이 등 뒤로 오롯이 전해졌다. 스티어링 휠을 돌렸을 때 재빠르게 바퀴가 따라오는 민첩함까지 갖추고 있었다. 회전 반경은 국산 준중형 세단 수준으로 작아 유턴이나 주차를 하기에도 편했다. 외형은 SUV지만 세단과 비슷한 주행 감각을 갖도록 설계됐다는 게 르노코리아의 설명이다.
승차감은 여느 유럽 차와 마찬가지로 탄탄함이 묻어났다. 이는 곡선 도로에서 좀 더 안정적인 거동을 보여주기에 유리하다. 시승 경로가 대부분 시내 도로와 고속도로로 이뤄져 하체의 능력을 시험해 볼 순 없었다. 다만 일반적인 주행 환경에서는 부담 없이 타기에 균형이 잘 잡혀 있었다.
정숙성은 통상 준중형급으로 불리는 C세그먼트인 점을 고려하면 평균적인 수준이다. 최근 출시된 전기차들이 워낙 소음 차단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보통이란 얘기다. 실제 타보면 60㎞/h 정도에선 외부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다. 100㎞/h를 넘어서부터는 동승석에서 바람 소리와 노면 소음이 살짝 올라왔다.

이번에 세닉 E-테크를 시승한 기자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2% 부족한 점'도 있었다. 아무리 등급을 높여도 통풍 시트가 없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시승이 진행된 7월 상순은 체감 온도가 40℃에 달했다. 에어컨 바람 방향을 아래쪽으로 둬도 시트에서 뿜는 냉기만은 못했다. 유럽도 올해 여름 기록적인 폭염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까지 속출한다는데 통풍 시트에 대해 전향적으로 생각해 봐도 좋지 않을까.
그래도 가격만큼은 동급 유럽 전기차와 비교해 경쟁력이 충분해 보인다. 친환경차 세제 혜택 적용 후 트림별 예상 가격 범위는 △테크노 5159만~5290만원 △테크노 플러스 5490만~5790만원 △아이코닉 5950만~6250만원이다. 원화로 환산한 프랑스 현지 가격이 7000만~8000만원에 이르는 데 비하면 르노코리아의 판매 의지가 느껴진다.
가격표를 보면 테크노 트림이 가장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뛰어나다. 상위 트림에서 선택 사양으로 제공되는 솔라베이 파노라믹 선루프(통유리 선루프)나 360도 어라운드 뷰, 주차 조향 보조 같은 사양은 구태여 넣을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테크노 트림은 서울시 기준 4700만원 안팎으로 구매 가능할 전망이다.
◆르노 E-테크 제원
△전장=4470㎜ / 전폭=1865㎜ / 전고=1590㎜ / 축거=2785㎜
△서스펜션=(전)맥퍼슨 스트럿 (후)멀티 링크
△브레이크=(전·후)벤틸레이티드 디스크
△공차중량=1855㎏ 또는 1915㎏(트림별 상이)
△최고 출력=160㎾(218ps) / 최대 토크=300Nm(30.6㎏f·m)
△배터리=(용량)87㎾h (셀 소재)NCM (셀 제조사)LG에너지솔루션
△연비=(복합)4.4㎾h/㎞ (도심)4.7㎾h/㎞ (고속)4.1㎾h/㎞
△1회 충전 주행 가능 거리=(산업부 기준)460㎞
성상영 빅데이터뉴스 기자 ssy@thebigdata.co.kr, showing199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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