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금융권의 주축중 하나인 카드업계가 위기를 맞고 있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에 풍전등화이다.
금융감독 당국의 가맹점 수수료 인하 조치에 이어 핀테크산업의 급부상으로 결제, 송금 등의 고유 영역이 잠식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생존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카드업계는 이달 초 발표된 수수료 인하 조치로 예상되는 6,700억원 가량의 수익 감소분을 메우기 위해 부가서비스 축소를 검토하고 있지만, 자칫 고객이 대거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쉽게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대형가맹점들의 수수료 인하 요구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달 중순 한때 삼성그룹의 삼성카드 매각설(또는 포기설)이 나돌기도 했다. 22일 현재 마땅한 돌파구를 모색하지 못하고 있는 카드사들은 결국 자신들의 위협요인인 핀테크로 갈아타려는 역설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사면초가의 카드업계
카드사들은 신제품 출시를 최대한 미루고 아예 출시 자체를 전면 재검토하는 등의 작업에 돌입했다. 앞서 당국이 영세ㆍ중소가맹점의 우대수수료율을 기존보다 0.7%포인트 낮추는 방안을 발표한 데 따른 긴급 조치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기존 수익구조를 바탕으로 설계한 카드를 그대로 출시했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라며 “줄어드는 수익을 고려해 카드 설계를 처음부터 다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 때문에 감독당국에 접수되는 신제품 사전 약관 심사 건수도 예년에 비해 줄어들었다고 한다. 카드사들이 상품 재검토에서 가장 집중하는 부분은 부가서비스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카드사가 부가서비스에 지출하는 비용은 2013년을 기준으로 전체 비용의 50%를 넘는다. 판매관리비 등의 기타비용은 줄이면서도 부가서비스 비용은 꾸준히 늘려온 것이다. 하지만 당장 내년부터 수익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이를 늘릴 수만은 없다는 게 카드사의 입장이다. 그렇다고 부가서비스를 단기간에 대폭 줄이기도 어렵다. 고객 이탈이 가속화하는 경우 현금서비스, 카드론 등의 다른 수익원까지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앞으로 가맹점 업종별, 고객별 선택과 집중이 보다 정교하게 이뤄질 것”이라며 “부가서비스의 허들을 높여 제한적으로만 혜택을 주는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일부 대형가맹점들의 수수료 인하 요구까지 더해지면서 카드사들이 더욱 궁지에 내몰리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주유소협회의 경우 현재 1.5%인 가맹점 수수료를 1% 수준으로 낮춰줄 것을 주장하고 있고, 한국외식업중앙회의 경우 현재 2.5%인 수수료 상한선을 2% 안팎으로 대폭 낮춰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기준금리 인하로 조달비용이 하락한 만큼 대형가맹점 수수료도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대형가맹점들은 연 매출보다는 업종별 특성을 반영한 수수료 체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한 대형가맹점 관계자는 “대표적 대형가맹점 중 하나인 주유소의 경우, 기름값의 절반 가량을 세금으로 내기 때문에 실질적인 영업이익이 크지 않음에도 다른 대형가맹점들과 같은 수수료를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카드사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대형가맹점은 절대적인 수는 적지만 매출 규모가 크기 때문에 수수료를 조금만 낮춰도 타격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실제 카드사의 가맹점 수익 중 절반 가량은 대형가맹점에서 나온다.
카드사가 여러모로 수세에 몰리는 사이 일부 카드사는 매각설까지 불거졌다.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잇따라 매각되면서 삼성카드 또한 매각되는 것이 아니냐며 구체적인 매입사까지 나돌았으나 17일 삼성카드가 공시를 통해 ‘사실무근’임을 밝히면서 일단 수그러든 상태다.
■ 구세주 핀테크(?)
사느냐 죽느냐의 막다른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카드사들은 핀테크와 빅데이터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모습니다. 이 두 시장을 선점하려는 카드사들의 경쟁도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KB 카드업계에 따르면 카드사 가운데 핀테크와 빅데이터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는 곳은 KB 국민카드다.
국민카드는 지난 2일 서울시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공공서비스 정책 수립 및 운영을 위한 ‘빅데이터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KB국민카드가 보유한 카드 사용 정보를 분석해 서울시의 대중 교통이나 도심 활성화 등의 공공정책 개발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KB국민카드가 보유한 대중교통 승·하차 정보가 담긴 후불교통카드 빅데이터와 서울시의 공공 데이터를 결합 분석하면 노선 및 배차 간격 조정 등 대중교통 접근성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된다.
또 방대한 카드 이용 데이터와 지역 상권 정보를 KB국민은행이 보유한 부동산 시세 정보 등과 연계 분석하면 도심 개발에 따른 기존 거주자 이주 가능 지역 예상과 상권 변화 예측 등 ‘도시 재활성화(Gentrification)’ 관련 이슈를 발굴하고 공공 정책을 수립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아울러 KB국민카드는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과 손잡고 기부와 핀테크가 접목된 기부 단말기 보급에도 나섰다.
후불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신용·체크카드 또는 모바일 앱카드 ‘K-모션’으로 간편하게 터치 결제해 기부에 참여할 수 있는 단말기를 보급하겠다는 것이다.
‘사랑의 빵 나눔 단말기’로 불리는 기부 단말기는 △KB국민카드 본사 커피숍과 직원식당 △수도권 소재 KB국민은행 영업점 및 KB손해보험 고객센터에 우선 설치되며, 추후 지방 소재 KB국민은행 영업점과 KB손해보험 고객센터를 비롯해 고객들의 이용이 많은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영화관 등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신한카드는 경기도와 빅데이터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신한카드는 경기도 창조경제 혁신센터 입주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지원은 물론 경기도 내 소상공인 영업활성화를 위한 빅데이터 분석업무를 공동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특히 소상공인 대상 경기도 상권 및 업종 분석 도구를 제공하고 빅데이터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용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공공서비스 개발 및 공익사업 관련 도정 현안 이슈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지원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BC카드 역시 서울대학교 빅데이터연구원과 빅데이터 연구 협렵 협약을 맺었다.
BC카드는 자체 보유한 신용카드 거래 실적·상권·입지 정보 등 다양한 가맹점 융합 데이터를 활용해 서울대학교 빅데이터연구원과 △자영업자 생존률 분석 △권역·업종별 자영업 생존 전략 분석 등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를 공동 수행하기로 했다.
특히 분석한 빅데이터 자료는 정부 및 공공기관에 제공돼 경제·복지·사회안전 분야 등 국가 정책 수립에 활용될 수 있게 된다.
삼성카드는 한국 NFC·KG이니시스와 업무제휴 계약을 맺고 터치형 NFC간편결제 서비스를 연내 출시할 계획이다.
NFC간편결제는 모바일 쇼핑을 할 때 신용카드 실물 터치와 비밀번호 2자리 입력만으로 결제 가능하다. NFC간편결제는 NFC칩 인식 기능이 있는 휴대폰에 후불교통카드 기능이 탑재된 삼성카드를 터치하는 방식으로 이용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