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명칭 '럭키금성그룹'으로 바꾸는데 따른 것, 금오공장도 '구미공장'으로
주력인 창정비 사업에 레이다. 통신전자, 항공전자 등으로 사업영역 확대
항공전자 부문을 새사업으로 선정, 1986년 CVR 수출, 대한항공과 협력 체결
민수사업 모터와 카메라 계열사에 이관하고 계측기 사업에 집중해 사업 성장

그룹 행보에 발맞춰 회시는 1983년 3월 1일, 상호를 '금성정밀주식회사(Goldstar Predsion Co. Lid.)'로 변경했다. 금오공장도 같은 날부터 구미공장(GUMI Plant)으로 명칭을 바꿨다. 그룹 차원에서 선진화 확립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금성정밀도 미래 지향적인 새로운 경영전략을 추진했다. 방위사업뿐만 아니라 민수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는 데 기업 역량을 모았다.
상호를 변경한 1983년, 효과적인 민수사업 전개를 통해 전년 대비 매출이 76% 신장했다. 사기가 오른 임직원들은 민수사업부문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 나갔다.
방위사업 부문은 정부 긴축정책의 영향으로 활황 시기를 기약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매출액 대비 5.4%를 투자하는 등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데 정성을 쏟았다. 지속적인 투자는 금성정밀이 국내 방위산업체 중 최고의 기술력을 축적하는 토대가 됐다.
일례로 고도 정밀병기 정비 및 생산과정에서 축적한 기술은 해외도입 장비에 대한 절충교역 및 기술도입, 생산체제 등을 착실히 갖춰 나갈 수 있는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첨단무기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기술축적과 연구 개발 능력을 배양할 수 있었고, 금성정밀이 각종 해외도입 장비에 대한 절충교역 업체로 지정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러한 경영환경 변화에 맞춰 금성정밀은 주력 분야인 창정비 사업의 역량 강화와 동시에 레이다. 통신전자, 항공전자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레이다 분이에서는 죽적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해상감시레이다. 항공관제레이다. 소나 장비 등을 본격 생산했다.
국내업체 중 유일하게 기술도입 생산업체 자격을 보유한 금성정밀은 1984년 12월, 조달본부와 해상감시레이다(GPS-100)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까다로운 시험 절차를 거쳐 납품한 후에도 수차례 검사를 거쳐야 했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완벽한 품질 수준으로 고객을 만족시키자 2차, 3차 계약을 성공적으로 체결할 수 있었다. 해상감시레이다는 우리나라 해안을 지키는 첨병이 됐다. 레이다 분야에서 기술적 진보를 착실히 쌓아온 금성정밀은 이후 대공저고도 탐지리이다(GLAS-830M)와 표적제원 수신기(TDR) 등을 자체 개발하는 능력까지 확보했다.
통신전자 부문에서는 무선중개단말기 세트, FM 소형무전기, 반송장비 등을 생산하기 위한 방안이 추진됐으며 지휘통제부문에서는 발간레이다 및 다연장 사통장비 사업을 전개했다.
특히 사이드와인더와 항공기에 탑재되는 통신장비를 생산하던 금성정밀은 항공전자부문을 새 사업영역으로 선정하고 시장 진출에 힘썼다.
그동안 축적한 기술은 금성정밀이 CVR(Cockpit Voice Recorder, 조종석 음성기록장치)을 성공적으로 개발하는 기반이 됐으며 1986년 5월, 미국의 정밀전자제품 제조사인 선드스트랜드 데이타 콘트몰에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으로 수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같은 해 7월에는 대한항공과 국내 항공산업 발전에 노력한다는 상호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서 조인으로 금성정밀은 항공산업에 본격 진출하는 기틀을 마련했고, 항공전자 기술 수준을 한 차원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금성정밀은 1984년, 기계장치용 모터 개발에 성공하며 본격적인 민수사업 확대를 가속화했다. 그러나 그룹 차원의 사업조정에 따라 1988년 1월, 인력과 설비 등 사업 일체를 금성부품(주)으로 이관하게 된다.
그 대신 금성정밀은 카메라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방위산업 분야에서 창정비와 레이다를 생산하며 쌓은 기술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광학기기 분야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는 판단에서였다.
그 무렵, 국내 카메라 업체들은 일본 카메라 전문회사와 제휴를 맺고 국내시장 선점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국내시장은 일본 메이커들의 대리전 양상을 띠면서 그들의 각축장이 돼 있었다.
금성정밀도 1987년 1월, 일본의 캐논과 기술도입 계약을 맺었다. 이에 따라 캐논으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아 복합 옵토트로닉스(Optotronics) 제품을 생산 판매했다. 중급형 카메라 ‘오토보이 3’와 보급형 ‘스내피 S’ 등이 이때 출시됐다.
“디자인으로 선택하고, 선명 화질로 감탄하는 오토보이 3.”
이 같은 광고(<경향신문, 1987.6. 30) 카피를 앞세운 ‘오토보이 3’는 출시 4개월 만에 기대를 뛰어넘는 매출 실적을 거뒀다. 하지만 카메라 사업 역시 그룹이 추진한 사업 구조조정 결정에 따라 금성사에 이관됐다.
모터 사업과 카메라 사업을 이관하고 난 뒤 민수 분야에는 계측기 사업만이 남았다. 계측기 사업은 창립 이래 검교정 업무 및 방위산업 영업활동을 통해 쌓은 경험과 기술 노하우를 활용해 사업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기대감을 갖게 했다.
계측기 개발 전담팀이 구성되고 가장 먼저 주파수측정기(Frequeny Counter) 및 디지털 멀티메터(Digital Multimeter) 개발에 나섰다. 처음 개발한 제품은 150·250·520MHz 주파수 측정기였다.
이즈음 일본 히타치(日立)로부터 도입한 기술은 계측기 사업을 보다 강력하게 추진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고정빌 전자계측기인 오실로스코프(Oscilloscope)에서 첫 결실을 맺었다. 오실로스코프는 각종 통신 및 전자장비·항공장비 등에서 광범위하게 이용되는 필수장비로 1986년 2월부터 오실로스코프 20·40·60·100MHz 4개 모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해 6월에는 디지털 멀티메터를 개발해 계측기 품목이 한층 다양해졌다.
금성정밀은 빠른 속도로 핵심 기술을 습득해 자체 성능 개선과 국산화 실현을 이룩했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1987년 2월, 20MHiz급 오실로스코프(모델명 OS-7020)를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또한 종전에 전량 수입하던 디지털 스토리지 오실로스코프와 신호발생기를 상품화했다. 1987년 하반기부터는 오실로스코프 1개, 디지털 멀티메터 4개, 주파수측정기 9개모델에 대한 양산체제를 구축했다.
<자료: 나라지키기 40년 LIG넥스원>
<용어설명>
O디지털 멀타미터(Digital Multimeter) : 전압, 저항, 전류 등 기본적인 전기적 특성을 측정할 수 있는 계측기. 미터 방식과 디지털 방식이 있으며, 테스터라 부르기도 한다.
O오실로스코프(Oscilloscope) : 특정시간 간격(대역)의 전압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전자 신호를 표시하는 데 사용한다.
채명석 빅데이터뉴스 기자 cm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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