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월21일 북한 특수부대원 서울 한복판서 전투 벌인 '1·21사태' 발발
1969년 1월23일 미군 정보함 북한이 강제 나포한 '푸에블루호 사건' 벌어져
1969년 닉슨 독트린 발표, 박정희 대통령 '우리 손으로 자주국방 실현'
향토 예비군 창설 이어 ADD 설립, 4년 만인 1974년 첫 국산화한 무기 공개

1968년 1월 21일, 청와대와 1Km도 떨어지지 않은 북악산 남쪽 기슭에서 한밤의 정적을 깨는 요란한 총과 수류탄의 폭발음이 연이어 울렸다.
정확히 종로구 청운동 세검정 고개에서 발생한 이 굉음은 다급한 비명과 함께 계속 이어졌다. 이른바 ‘1·21사태’ 또는 ‘김신조 사건’으로 불리는 북한의 게릴라전이 대한민국 한복판, 수도 서울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혼란을 야기한 범인들은 4일 전인 1월 17일 자정, 휴전선을 동해 서울로 잠입한 31명의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이었다. 1967년 창설된 북한의 유격전 특수부대인 ‘124부대’ 소속인 이들은 청와대를 급격해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을 암살할 목적으로 남하했다.
청와대 진입 직전, 자하문(창의문)에서 우리 경찰의 검문을 받아 그 정체가 드러나자 경찰과 민간인들을 향해 기관단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투척했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을 포함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21사태로 제2의 6·25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국민은 이틀 후인 1968년 1월 23일, 북한의 또 다른 도발에 경악했다. 북한 원산항 앞 공해(公海)에서 미국의 정보수집함이 북한의 해군초계정에 의해 납치된 ‘푸에블로호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듬해인 1969년 4월, 미 해군 EC-121 정보기를 격추한 데 이어 12월에는 승객으로 가장한 간첩이 강릉발 서울행 대한항공(KAL) 여객기를 공중에서 납치해 북으로 끌고 갔다. 북한의 만행은 다음 해에도 이어져 1970년 6월에는 해군 방송선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련의 사건으로 남북한 사이의 군사적 긴장감은 더욱 고조됐다.
계속된 북한의 도발에 최대 동맹국인 미국은 과거와 달리 자국과 관련된 사안에만 관심을 보이며 대응했다. 이는 중동전쟁 발발에 따른 오일쇼크, 베트남 전쟁 지속에 따른 여론 악화, 대통령 선거 등 복잡한 대내외 요인이 작용한 결과였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오해할 만한 여지가 다분했다.
때마침, 미국 대통령 닉슨은 1969년 7월 25일, 해외 순방 중 괌에서 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안보 전략인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을 발표했다. 이 선언대로라면 이제부터 한국의 안보는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철수 문제를 그대로 실행해 1971년 3월, 약 2만 명을 철수시켰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 주도의 국가 방어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국민을 대상으로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박정희 대통령은 향토예비군 조직을 200만 명으로 확대 개편하는 한편 미국과의 협상을 동해 1억 달러의 추가 군사원조를 약속받았다.
‘우리나라는 우리 힘으로 지킨다’는 정부의 자주국방 의지는 이후 방위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촉매로 작용했다. 가장 먼저 정부는 1970년 8월 자주국방의 초석'이 될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신설해 무기, 장비, 물자 등의 조사·연구·개발·시험 등을 담당하게 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제반 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기본화기 개발에 성공했고 무기제계 회득과 관련된 기술 검토, 시험평가 등을 통해 국방은 물론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해가 바뀐 1971년 4월, 정부는 방위산업 육성책을 마련하고, 무기체계별 주요 생산업체를 선정했다. 정부는 이들 업체에 차관 융자 혜택을 제공해 병기, 장비 및 군수물자 등을 생산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1973년 하반기부터 주요 방위산업체가 가동되기 시작해 1974년 10월, 드디어 국내 기술로 개발된 무기 및 장비가 처음으로 국민에게 공개됐다. 이는 자주국방 의지를 천명한 지 4년 만에 이룬 쾌거로 방위산업 육성책 발표 이후 착실하게 기술개발을 한 결과였다. 또한 한국군 전투력 극대화 및 실질적 전력 증강을 위한 ‘율곡사업(전력증강계회)’에 따른 실질적인 투자가 이뤄졌다. 이는 방위산업의 지속적인 발전과 성장을 이룩하는 자양분이 됐다.
1975년 말 <위싱턴 포스트>지는 우리나라의 군사력 중강계회을 다음과 같이 예측했다.
“한국은 1980년 초 북한의 남침을 국군 단독으로 격퇴할 수 있는 전력을 목표로 고성능 무기를 포함한 130여 종의 무기와 장비를 도입 및 개선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자료: 나라지키기 40년 LIG넥스원>
<용어설명>
O 닉슨 독트린
1969년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 괌에서 발표한 대외 안전안보 정책의 하나로 아시아를 대상으로 하는 새 안보정책
O 울곡사업(전력증강계획)
‘한국군 전력증강사업’이라 일컬어지는 율곡사업은 무기의 수입에서부터 고도 정밀장비의 기술을 도입 생산하는 것을 총칭하며, 10만 양병설을 주창한 이이의 호를 따서 명명됐다.
채명석 빅데이터뉴스 기자 cm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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