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논단] 치사한 패배자(bad loser)-트럼프 대통령 몽니로 미국 위신 추락

2020-11-30 10:47:13

사진 = 남영진
사진 = 남영진
영어에 bad loser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치사한 패배자’정도 될 것이다. 게임이나 운동시합을 해서 졌을 때 그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끈질기게 버티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어릴 때 가위바위보를 할 때도 자기가 지면 꼭 ‘3세판’을 하자며 룰을 바꾸는 친구들이 있었다. 팔씨름을 할 때도 거의 넘어가면서도 팔목만 꺾어서 손등이 닿지 않았다며 버티는 친구들도 이런 부류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말이다. 지난11월3일 미국 대선 후 3일후에는 거의 바이든 승리가 굳혀졌다. 큰 나라라 동서부의 주에 따라 개표시간이 달라 윤곽이 드러나는 데만 3일 정도 걸렸다. 경합주였던 서부의 알라바마 네바다주 그리고 동부의 플로리다 미시간 조지아주와 러스트벨트인 위스컨신, 동북부의 펜실바니아등은 우편투표 개표까지 겹쳐 거의 1주일 후에야 윤곽이 드러났다. 트럼프는 부정선거라며 6개 주요경합지에 30여건의 소송을 제기했다가 거의 기각됐다.

현장투표에서는 트럼프가 유리했다가 3일후부터 우편투표가 개표되자 바이든 몰표가 쏟아져 전세가 뒤집혔다. 이번 선거는 ‘코로나선거’였기 때문에 코로나방역에 실패한 트럼프대통령에 대한 심판투표였다. 현장에 나오지 않고 우편으로 투표한 유권자들은 당연히 코로나를 의식해 바이든을 지지했다.

사전에 이 흐름을 안 트럼프캠프는 선거전부터 우편투표가 부정선거의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한 발언을 해왔다. 이미 20여 년 전부터 실시해온 법적인 투표행위인데도. 근소하게 진 조지아주에서는 ‘0.5%내의 격차율때는 재검표를 하여야 한다’는 주법에 따라 다시 수개표를 했다. 결과는 격차는 줄었지만 바이든의 승리였다.

바이든이 이미 서부의 네바다, 알라바마주에서 승리해 선거인단의 과반인 270표를 얻어 주요 언론들이 바이든 승리를 보도했는데도 트럼프는 ‘부정선거’라며 30여개의 소송을 제기했다. 물론 주법원에서 거의 기각됐다. 트럼프는 3일이 지나도 우편투표를 인정하는 상징적인 접전지였던 펜실베니아주에서는 80만여표에 대해 개표를 중지하는 소송도 제기했다. 개표가 끝나지 않았으니 아직 지지 않았다는 전형적인 ‘배드 루저’의 모습이었다.

20일이 지나 박빙을 벌였던 미시간, 펜실베니아주에서 바이든의 승리를 공식선포했다. 트럼프는 그래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채 ‘몽니’를 부리다 3주가 지난 이때서야 연방총무청(GSA)에 바이든측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협조할 것을 지시했다. 참 끈질긴 배드 루저다.

미국 대선결과는 먼저 주류 언론에서 당선을 보도하면 이후 패배자가 당선자에게 축하전화를 함으로써 매듭지어왔다. 2000년 부시2세와 앨 고어부통령이 붙었을 때 플로리다가 박빙의 결과에서 주법원이 부시의 승리를 선언하자 앨 고어는 재검표를 하지 않고 곧바로 부시에게 당선축하전화를 함으로써 매듭지었다.

후에 부시대통령은 민선이 아니라 ‘법선대통령’이라는 조롱도 받았으나 앨 고어 부통령은 미국민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멋쟁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는 곧바로 정치계를 떠나 자기의 전공인 기후문제 해결을 위해 분주히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나는 이때 미국이 왜 민주주의의 수호자인지, 왜 아름다운 나라인지를 알게 됐다. 다수결에 승복하고 깨끗한 패배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의 청교도(pilgrim fathers)들이 성공회의 핍박을 피해 신대륙으로 건너가 ‘하느님의 나라’를 만들었다. 150년 뒤 쯤 영국의 식민지에 대한 과세와 억압이 심해지자 조지 워싱턴장군을 중심으로 ‘대표없는 세금없다’며 독립전쟁을 치루고 1776년 독립을 선포했다. 독립전쟁의 영웅 워싱턴대통령은 재선을 끝내고 은퇴했다. 이후 미국대통은 재선까지만 하는 전통이 이어졌다. 2차대전의 국가위기에 처한 프랭클린 루즈벨트대통령만 4선을 했다.

이 연방제도의 요체가 큰 주나 작은 주나 2명의 상원의원을 선출하는 제도다. 국가의 외교나 안보, 대통령 탄핵 같은 국가기본 정책에 대한 결정은 각주가 동등한 권리로 참여한다. 또한 대선에서도 각주에서 이긴 당이 대의원의 전체 표를 몰아서 투표한다. 아바(ABBA)의 노래제목처럼 각 주(state)가 통일된 의견을 가지는 ‘승자독식’(The winner takes all)제도도 연방(The United States)의 특징이다.

취임후 트럼프의 대통령의 ‘미국우선’(AMERICA FIRST!)을 내세운 독재적 행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후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기후협약에서의 탈퇴, 오바마대통령과 독일 프랑스 등이 이란과의 맺은 핵 협정 탈퇴, 멕시코장벽 쌓기, 무슬림에 대한 이민통제, 오바마 케어 무효시도, 부자감세, 주한미군을 비롯한 외국주둔 미군에 대한 방위분담금 대폭 인상, 트윗을 통한 가짜뉴스 남발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건국 이래 지난 230여 년간 미국 대선은 평화적 정권 이양의 역사였다. 1860년 대선에서 노예제 폐지를 내건 에이브러햄 링컨이 승리하자 민주당의 스티븐 더글러스 후보는 “모든 당파적 이해를 내려놓자”며 승복을 선언했다. 이 전통은 미국에서 62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남북전쟁을 계기로 거부할 수 없는 불문율이 됐다.

전 세계는 트럼프의 코로나 방역대처와 흑인차별에 이어 이번 대선을 보면서 미국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억지 몽니’는 우리가 북한 역대 지도자들에게 쓰던 말이다. 대통령의 인격이 국격까지 떨어뜨린 것이다. 당연히 바이든 새 미합중국 대통령이 첫 번째 할 일은 국내적으로는 코로나 대처, 대외적으로는 신뢰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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