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법 제682조는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사가 그 금액의 한도에서 피보험자의 제3자에 대한 권리를 취득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른바 보험자대위다. 보험사가 행사하는 것은 피해 업체가 가진 손해배상청구권이므로, 구상금 소송에서도 업체가 작업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가 먼저 판단돼야 한다.
도장작업을 하청받은 피고가 세척작업 중 화재를 겪은 사건에서도 이 부분이 문제 됐다. 피고는 크레인 부품에 묻은 기름기를 제거하기 위해 신너를 스프레이건으로 분사하고 있었다. 분사 과정에서 정전기로 불꽃이 발생했고, 불이 번지면서 공장 건물과 기계 등이 손상됐다. 원고 보험사는 업체에 보험금을 지급한 뒤 피고에게 그중 일부를 청구했다.
원고는 피고가 인화성 물질을 다루면서 화재 예방에 필요한 주의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도급계약상 의무를 위반했고 불법행위에 따른 배상책임도 있다는 입장이었다. 피고는 업체가 제공한 장비와 재료로, 현장에 게시된 작업지침에 따라 세척했을 뿐이라고 맞섰다.
법원은 사고 당시 적용된 도장작업지침서를 살폈다. 업체는 작업에 필요한 설비와 재료를 제공했고, 지침서에는 신너와 분사용 세척기를 이용하는 방법이 기재돼 있었다. 피고가 그 지침에 따라 세척한 사실도 인정됐다. 화재 후에는 고압세척기 사용을 배제하고 신너 사용을 최소화하는 내용의 운용방안이 새로 게시됐다.
이 사건에서는 작업지침의 내용과 피고의 실제 작업 방식, 위험을 예상할 수 있었는지가 함께 판단됐다. 작업자가 위험을 알고 있었거나 당시 상황에서 별도의 안전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었다면 책임에 관한 판단도 달라질 수 있다. 지침을 따랐다는 주장에는 당시의 작업 조건과 위험에 관한 설명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따라서 유사한 분쟁에서는 사고 당시의 지침을 특정하는 작업부터 필요하다. 작업지침이 개정됐다면 문서의 작성일뿐 아니라 언제 현장에 게시돼 적용됐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사고 후 마련된 안전기준과 사고 당시의 작업수칙을 구분하고, 변경 전후의 내용을 현장 사진이나 관계자 진술과 대조하면 당시 어떤 지시 아래 작업했는지 밝히는 데 도움이 된다.
장비의 소유·관리 관계와 안전교육 내용도 검토 대상이다. 계약서에 작업자의 안전관리 의무가 기재돼 있다면 실제로 누가 장비를 관리했고 어떤 작업 지시를 내렸는지 함께 살펴야 한다. 화재조사에서 정전기나 불꽃이 발화 원인으로 지목됐다면, 그것이 작업자의 어떤 행동이나 주의의무 위반과 연결되는지도 확인할 사항이다.
구상금 청구를 받은 작업자는 소장에 기재된 사고 경위와 손해액을 확인하면서 작업지침, 장비 사용설명서, 안전교육 자료, 화재조사 결과를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자료는 사고의 원인을 설명하는 데서 나아가, 당시 작업자가 어떤 의무를 부담했고 그 의무를 위반했는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글 : 법률사무소 제우 강병권 변호사
김성민 빅데이터뉴스 기자 ksm@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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