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50년 돌아보기-30] 현대건설 인수 실패와 그 여파

채명석 기자

2026-05-02 09:28:16

2010년 채권단 현대건설 매각 발표에 응찰해 현대차그룹과 경쟁
현대그룹의 정체성과 생존전략 지켜내기 위한 인수전에 총력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자금조달 문제로 현대차그룹에 뺏겨
인수전 올인하다 현대상선 구조개편 시기 놓치고 체력도 고갈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사옥 전경 사진= 현대건설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사옥 전경 사진= 현대건설
[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해운업의 침체가 심화하던 2009년에 큰 폭의 적자를 기록했던 현대상선은 1년 만인 2010년에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며 다시 흑자로 돌아섰다. 이때만 해도 해운시장의 침체가 장기화할 것으로 예측하기도 어려웠으므로, 금융위기의 파고를 조기에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해운 경기가 일시적이나마 회복 조짐을 보이던 2010년 6월 현대건설 채권단이 현대건설을 매각하는 절차에 들어간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에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에 그룹의 명운이 걸렸다고 보고 그룹 차원에서 현대건설 인수전 준비에 들어갔다. 그룹 차원이라고는 하지만 그룹에서 현대상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큰 만큼 현대상선이 앞장서야 하는 중요한 프로젝트가 되었다.

원래 현대건설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종합건설사로서 옛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가진 대표기업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의 여파로 2000년 8월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이후 부도를 맞기도 했다. 2001년 8월 계열분리되어 채권단의 공동 관리를 받다가 2006년 5월 졸업하는 등 적지 않은 고난을 겪었다. 그리고 2010년 6월 채권단이 보유 중이던 현대건설 지분 34.88%를 매각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새 주인을 찾기 위한 절차가 시작된 것이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에 사활을 걸다시피 했다.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것은 단순히 건설사 하나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룹의 정체성과 생존전략을 지키기 위한 종합적인 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총력을 다한 구체적인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대건설 인수를 그룹 정통성 회복의 상징으로 인식했다. 현대건설은 현대그룹의 창업 모태가 된 기업으로서, 정주영 창업주가 창립한 이후 오랫동안 ‘현대 신화’를 대변하는 상징이었다. 그러므로 현대자동차그룹 독립으로 ‘정통 현대’의 정체성이 분열된 상황에서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것은 그룹의 역사·브랜드·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인식한 것이다.
둘째, 해운–건설–금융의 삼각체제를 구축해 사업의 시너지를 제고하고자 했다. 현대그룹은 해운(현대상선), 금융(현대증권), 엘리베이터·리조트 등을 주력으로 삼았지만 그룹의 규모나 위상은 매우 취약해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건설이 대형 프로젝트 수주, 해외시장 진출, 부동산 개발 등에서 해운·물류·금융을 연결하는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현대건설을 중심으로 해외 플랜트 사업과 해운 물류의 결합, 그룹 내 자산개발 프로젝트 추진, 금융·보험 계열과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연계가 가능해 시너지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현대건설의 재무적 안정성과 자금력을 통해 현대그룹의 신용 기반을 재건하고자 했다. 당시 현대그룹은 주력사인 현대상선이 해운시장의 불황으로 적자(2009년 결산 기준)를 내고 있었고, 금융계열인 현대증권도 수익 구조에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반면 현대건설은 워크아웃 졸업 이후 국내외에서 수주가 급증하고 현금흐름도 안정된 우량 기업이었다. 따라서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그룹 전체의 신용도와 자금조달 여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보았다.

넷째, 그룹의 경영권을 안정시키고 내부의 결속력을 높이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 현대차, 현대중공업, 현대백화점 등 주요 계열사들의 그룹 분리와 정몽헌 회장 타계 이후 현대그룹은 오너 가족들 간의 분열로 인해 끊임없이 경영권에 위협을 받는 등 불안정한 구조에 놓여 있었다. 이 때문에 현대건설 인수를 통해 밖으로는 그룹 리더십의 정통성을 인정받고 안으로는 구성원의 단합과 결속력을 확립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현대차그룹과 경쟁하며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범현대가로 분류되는 현대중공업그룹과 KCC가 현대건설이 가진 현대상선 지분까지 염두에 두고 참여를 저울질하기도 했지만, 사실상의 경쟁 구도는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의 2파전이었다. 현대그룹은 독일계 M+W그룹을 컨소시엄 파트너로 하여 입찰에 참여했다. 현대차그룹도 ‘현대’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현대건설 인수에 공을 들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치열한 경쟁을 펼친 결과, 2010년 11월 16일 채권단은 현대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11월 29일에는 MOU까지 체결되었다.

현대건설 인수전은 이렇게 현대그룹의 승리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곧바로 현대그룹의 자금조달 문제가 쟁점으로 불거지며 다시 혼란에 빠져들었다. 핵심은 현대그룹이 제시한, 프랑스 나티시스(Natixis) 은행에서 조달하기로 한 1조2000억 원이었다.

그런데 이 자금은 현대상선의 프랑스법인 계좌를 통해 확인서로 제시되었는데, 자본금이 33억 원 수준인 현대상선의 프랑스법인이 담보 없이 어떻게 1조2000억 원을 조달했는가가 거센 논란을 낳았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대출계약서 원본 제출을 요구했고, 현대그룹은 ‘담보·보증 없는 대출’ 임을 주장하며 확인서를 제출했지만 의혹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 무렵 이른바 ‘승자의 저주’ 우려가 제기되며 계열사들의 주가가 흔들리고, 노조까지 공개적으로 반대 성명을 내는 등 그룹 내부의 부담도 커졌다.

결국 2010년 12월 20일 채권단은 현대그룹의 자금 증빙 불충분을 이유로 협상 중단을 선언하고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해지했다. 현대그룹이 강하게 반발하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2011년 1월 4일 법원마저도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차순위였던 현대차그룹과 본격 협상을 벌였다. 그리고 2011년 2월 25일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지분 34.88%를 4조9601억 원에 인수하는 것으로 최종 합의하고, 4월 인수 절차를 종결했다. 이에 따라 현대건설은 현대차그룹으로 편입되었다.

현대건설 인수전은 현대그룹에 큰 상처를 남겼다. 특히 현대상선이 받은 타격은 적지 않았다.

먼저, 현대그룹이 제시한 나티시스 1조2000억 원 조달 구조에 현대상선 프랑스 법인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현대상선이 그룹 차원의 거래구조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을 시장에 각인시켰다. 이는 현대상선의 재무·거버넌스 리스크가 시장에 그대로 노출되는 결과를 낳았다.

무엇보다 주목받은 것은 현대상선의 경영권에 관한 문제였다. 인수전 막바지에 채권단은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약 8.3%의 처분 문제를 거론했는데, 이는 현대그룹의 현대상선 지배력에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당시 현대그룹 측 지분과 현대차·현대중공업 등 범현대가 지분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이 어느 쪽으로 가느냐에 따라 경영권 구도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현대건설 인수전은 단순히 건설사 하나의 인수·합병(M&A)이 아니라 현대상선의 장래 지배구조 지형에도 영향을 준 사건이었다.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인수전이 전개되는 동안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주가 급락이 이어지자 ‘승자의 저주’ 논란까지 불거졌다. 전문가들은 이때의 경험이 2010년 이후 현대상선과 채권단과의 관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고, 2013년 이후 구조조정 국면에서도 현대상선에 대한 시장 및 채권단의 시선이 냉정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분석했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경영 에너지의 소모 부분이었다. 2010~2011년은 세계 해운시장의 구조적 불황이 깊어져 운임하락·과잉공급·금융경색 등의 한파에 대응해야 할 시기였는데, 이러한 때에 현대상선의 경영진이 그룹 차원의 빅딜 이슈 대응에 많은 에너지를 할애하느라 경영 어젠다를 분산시키는 결과가 되었다는 것이다. 정보화·얼라이언스·자산매각 등 내부 체질 개선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야 할 시점에 외부 요인에 에너지 소모가 너무 많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자료: HMM 50년사>

채명석 빅데이터뉴스 기자 cms@thebigdata.co.kr
<저작권자 © 빅데이터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