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2027 회계연도 예산안에 연구개발 18.5억 달러 책정
한국과의 협업에 초점 맞춰, HD현대重·한화오션에 기회

이지스 구축함의 경우 함정 크기에 한계가 있는 탓에 통로나 거주 시설이 상선에 비해 비좁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조대왕함은 덩치가 큰 미 군인이 생활하는 동급 미 이지스 구축함에 비해서도 넓고 짜임새 있는 설계를 갖춰 미 해군 장성과 간부들이 특히 놀랐다고 한다. 한번 출항하면 수 개월을 바다 위 함 내에서 생활하는 군인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있어 한국 함정이 비교 우위의 경쟁력을 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한국 함정의 장점을 살려 한국이 설계하고 한국에서 건조하는 미국 함정이 탄생할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미국 해군이 외국으로부터 미 해군 함정 설계도를 도입하고, 해외 조선소에서 미군 함정 부품을 생산하는 이른바 ‘아웃소싱’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USNI 뉴스가 보도했다.
이는 대한민국이 미국 측에 제한했던, 한국 조선소에서 미 해군용 함정을 직접 설계해 공급하는 방안과 유사한 개념이다. 연구 결과가 긍정적인 성과를 도출해 미국의 함정 확보 정책이 전향적으로 개편될 경우 한국과 외국 해군에 함정 건조 공급 노하우가 풍부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HJ중공업에 큰 기회가 될 전망이다.
예산안에는 해당 자금이 “미국 국내 조선소의 조선 역량을 확대하고 함대에 추가 함정을 도입하기 위한 모든 조달 방안을 조사하는 데 사용될 것이며, 여기에는 동맹국 조선업체의 함정 또는 부품 건조 능력에 관한 연구도 포함된다”고 명시돼 있다. 또 “이 자금은 함대의 미래 순양함, 구축함 및 호위함 재고 확보를 목표로 하는 두 가지 별도의 연구 및 조달 사업에 배분될 것”이라고 했다.
국방부 기본 예산 외에 제안된 예산 조정안의 일부인 연구 자금은 백악관 예산관리국이 자국 내 조선소에서 수상함과 잠수함을 더 빨리 인도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가운데 나왔다.
러스 보우트(Russ Vought) 미 예산관리국(OMB) 국장은 22일(현지시간) 열린 메릴랜드주에서 열린 ‘해군연맹 연례 해상·항공·우주 심포지엄’ 기조연설을 통해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더 많은 함선이 필요하고, 지금 당장 필요하다”며 “만약 우리가 기존 방식으로 필요한 함선을 비용에 맞춰 제 때 확보할 수 없다면, 다른 조선소에서 조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미 국방부는 해군에 일본 및 한국 조선소 설계 방식을 미 함대에서 사용할 함선으로 검토하도록 지시했다고 USNI News가 보도했다.
최근 사임한 존 펠런(John Phelan) 미 해군 장관도 물러나기 직전에 해당 연구에 대한 USNI 뉴스의 질문에 해군부가 보조 보급선뿐 아니라 함정 작업에도 해외 조선소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펠런 전 장관은 21일 “우리는 외국 전투함 도입 가능성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라며 “만약 우리가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생산 가능성이 높고 함대에 신속하게 배치될 수 있는 함선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생산 가능성 측면에서 볼 때 다른 나라들보다 한국이나 일본이 더 적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미국이 설계한 이지스 전투 시스템과 미국산 AN/SPY-1 레이더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유도미사일 구축함을 수상함 전력의 핵심으로 운용하고 있다.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페인과 같은 유럽 동맹국들도 자국의 유도미사일 구축함에 이지스 기본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다. 일부 함정은 시스템을 공유하지만, 미군 함정은 대부분의 동맹국 해군보다 높은 생존성 기준에 맞춰 건조됐다. 예컨대 미 해군은 이탈리아 조선업체 핀칸티에리에 컨스텔레이션급 유도미사일 호위함 6척을 발주했다가 2025년 11월 26일 이미 건조 중인 2척을 제외하고 4척을 취소할 계획을 발표했다. 원래 설계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설계 비용이 크게 초과됐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사업은 취소됐다.
국방부 예산 심의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USNI News에 18억5000만 달러 규모의 예산 항목의 목적은 미 해군 함정에 외국 설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며, 최소한 일부 작업은 해외 조선소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연구 추진은 해군 외부에서 비롯됐다. 소식통들은 또 한국과 일본의 설계 및 조선소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미 해군 및 해안경비대 조선소의 건조 속도에 불만을 품고 외국 조선소들이 미국 내에 조선소를 설립하도록 적극적으로 장려했으며, 보조함과 경비함 건조를 외국 조선소에 맡기려고 하고 있다.
2027 회계연도 예산안 설명 자료에 따르면 해군은 새로운 전략 수송함급의 첫 두 척과 연료 운반선급 건조에 대해 “해외 조선소에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2025년 미국 해안경비대는 새로운 중형 쇄빙선급 북극 안보 경비함(Arctic Security Cutter) 설계안 두 가지를 선정해 건조하기로 결정했다. 핀란드 조선소들이 미국, 핀란드, 캐나다 간의 빙산 협약(Ice Pact) 협력 계약의 하나로 선도함을 건조할 예정이다.
캐나다 조선업체 데이비의 텍사스 조선소와 볼링거의 루이지애나 조선소는 ‘핀란드 모델’에 따라 후속 함선을 건조할 예정이다.
한국과 캐나다의 조선소들은 이탈리아와 호주 기업들에 이어 미국에 조선 자회사를 설립했다.
해안경비대의 중형 경비함 중 하나를 건조하는 데이비 조선소는 텍사스에 있는 걸프-쿠퍼를 인수하고 10억 달러 규모의 확장을 약속했으며, 한화는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필리 조선소를 인수하고 미 해군의 추가 조선 사업 수주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해군 예산 담당 차관보 벤 레이놀즈(Ben Reynolds)) 소장은 한화의 필라델피아 조선소 투자 사례를 언급하며 미국이 조선 능력 확대를 위해 추진하고자 하는 방식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강조했다.
레이놀즈 소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해답은 미국 내 조선소 발전을 도울 외국인 투자, 즉 외국과의 파트너십을 유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는 충분한 생산 능력이 있으며, 다른 산업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러한 전문성을 활용해야 한다. 외국 파트너와 협력하여 다른 산업에서 성공을 거둔 것처럼 조선업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레이놀즈 소장은 미국이 수용 능력 확대를 위해 모든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앞으로 1년 이상 동안 해외 조선소와 협력하여 건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지 계속해서 살펴볼 것이지만, 우리가 가장 집중하고 싶은 것은 해외 조선소와의 협력을 통해 미국에서 건조하는 선박”이라고 전했다.
해외 조선소에서 선박이나 선박 부품을 건조하려면 의회의 지원과 면제가 필요하다. 미 연방법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대통령의 예외 승인이 없는 한 미 해군용 군함 건조를 미국 조선소로 제한하고 있다. 미국은 과거에 동맹국으로부터 초계함이나 고무보트와 같은 소형 함정을 구매한 적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역무장 리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캐나다로부터 소형 호위함을 구매했다. 이러한 예외를 제외하면 미국이 외국 조선소로부터 대형 수상 전투함을 마지막으로 구매한 것은 19세기 후반 영국 조선소인 암스트롱 휘트워스로부터 뉴올리언스급 순양함 두 척을 구매했을 때다.
군함이나 부품을 해외에서 건조하려는 움직임은 미국 내 조선소들이 생산 능력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일부 국회의원들과 국내 조선업체들로부터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미국 조선업체들을 대표하는 무역 단체는 USNI 뉴스에 보낸 성명에서 해당 연구를 비판했다. 매튜 팩스턴(Matthew Paxton) 미국 조선업협회 회장은 성명에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연구하는 데 수 백만 달러의 납세자 돈을 쓸 필요가 없다. 미국은 해양력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산업력, 숙련된 인력, 기술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팩스턴 회장은 “미국 조선 산업 기반은 세계에서 가장 첨단적인 해군 함정을 정해진 시간과 예산 내에서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해 왔다. 지속적인 투자와 정책 입안자 및 행정부의 명확한 방향 제시가 있다면, 국내 조선 산업은 국가 안보를 저해하지 않으면서 증가하는 수요를 충족하고 해군의 장기적인 임무를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팩스턴 회장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미 해군은 함정을 제 때 공급 받지 못하고 있다.
관련해 한국은 2000년대 초반 미국 측의 제안으로 미국의 이지스 시스템을 한국이 건조한 함정에 얹은 한미 공동 개발 이지스 함정을 우방국에 세일즈 한 적이 있다. 당시 양국 정부가 승인한 가운데, 이지스 시스템을 개발한 록히드마틴과 한국형 이지스 구축함을 개발해 건조한 HD현대중공업이 제휴를 맺고 추진했다.
수주 성과는 올리지 못했으나, 양국 승인만 획득한다면 이러한 형태의 함정 건조는 당장이라도 실현할 수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이들은 이번 미 해군의 해외 군함 조달 연구도 결국 한국과의 협력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덧붙였다.
채명석 빅데이터뉴스 기자 cm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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