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22년 印 일관 제철소 건설 방황의 끝 눈앞에 둬
이구택, 정준양, 권오준, 최준영 등 이어받은 회장만 5명째
서구 적대적 M&A에 대해 위한 반격 전략으로 시작했으나
사업 정체로 중국 철강업의 인해전술 못 막고 시장 내줘

포스코가 지난 20일(현지시간) 인도 현지에서 인도 1위 철강업체 JSW스틸과 일관제철소 건설을 위한 합작투자계약(JVA)을 체결하면서 22년간 품어왔던 사업 개시를 눈앞에 두고 있다.
2024년 시작했으니, 22년의 세월이 흘렀다. 현재까지 인도제철소 사업에 이름을 올린 포스코그룹 회장은 모두 장인화 회장을 포함해 5명이다. 현재까지 역대 포스코 회장이 10명이었으니 절반에 해당한다. 이구택 회장이 시작해 정준양 회장, 권오준 회장, 최정우 회장이 차례로 바통을 이어받아 가며 끝이 보이지 않는 트랙을 달려왔다가 장인화 회장이 드디어 결승 테이프를 세워 놓고 무사히 골인하려 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포스코는 조강 생산 규모에서 세계 1위를 경험했고, 양적 측면에서 최고 자리를 내준 뒤에는 고부가가치 제품 기술력과 철강 제품 생산성과 이익을 취하는 수익성 등 질적인 면에서는 최고를 지속했다. 당시만 해도 포스코는 현재고 그렇지만 단일 제철소로는 세계 1위인 광양제철소와 3위 포항제철소에서 만든 쇳물을 가공해 만든 철강 제품을 만들어 내수시장에 우선 공급하고 나머지 물량을 수출하는 등 세계화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비단 포스코뿐만 아니라 각국 철강업체들은 모두 비슷한 분위기에서 사업을 영위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산업자본이 지배해왔던 철강산업이 큰 변화를 일으켰다. 락시미 미탈이라 불리는 인물이 금융 투자 자본을 기반으로 무차별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세를 빠르게 키우더니 급기야 그의 회사 미탈이 당시 세계 1위였던 룩셈부르크의 아르셀로를 잡아먹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이를 통해 단일 기업 최초로 연간 조강 생산량 1억t을 넘는 초거대 공룡인 ‘아르셀로미탈’을 출범했다. 아르셀로미탈은 동쪽으로 전진해 한국과 일본, 중국이 자리 잡은 동북아시아 시장에 적대적 M&&A로 진출하려 했고, 일본제철과 포스코가 잠재적 공격 대상으로 거론됐다.
그런데 아르셀로미탈의 출현이 경이로움에서 공포로 바뀌면서 이러한 확신도 무너졌다. 전략 국가 곳곳에 철강재를 생산하는 설비 네트워크를 마련해 매출 규모를 키우는 것과 더불어 제2, 제3의 아르셀로미탈과 같은 기업 약탈꾼들의 공격으로부터 회사를 지킬 수 있는 지배구조를 갖추기 위해 세계 시장 진출을 결정했고, 첫 대상이 중국에 이어 떠오르는 국가인 인도였다. 당시 이구택 회장이 직접 밝힌 포스코의 인도 일관제철소 투자액은 120억 달러(약 12조8820억 원)로 당시까지 인도에 투자한 외국 기업 가운데 최고액이자, 한국 기업의 외국 투자액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인도 중앙정부가 포스코의 의견을 받아 낙점한 지역이 현 오디샤주의 옛 이름인 오리사주였다. 국유지인 제철소 부지를 인도 정부가 정비하면. 포스코가 이 부지를 임차해 설비를 들여와 제철소를 건설하는 방식이었다.
당장이라도 건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상황의 흐름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부지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너무도 오래 터를 잡고 살고 있어 다른 지역으로 이전을 거부하는 데다가, 비정부기구(NGO)와 시민단체들이 주민 측에 합세해 토지 정비를 맡은 인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아닌, 포스코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포스코는 반인권적 행위를 벌이는 기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다.
더군다나 지역 주민과 갈등에는 한국의 시민단체도 합류해 인도는 물론 한국에서도 포스코가 제철소 건설을 철회하라며 타협 없는 반대만 외쳤다. 이들을 달래야 할 책임은 인도 정부에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작업은 진척이 이뤄지지 않았고 아까운 시간만 흘러갔다.
결정타는 2008년 벌어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금융은 물론 철강 제품을 원료로 하는 세트 상품 생산 업종이 모조리 불황의 늪에 빠졌다. 이 시기에 포스코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일부 고로의 가동을 중단했을 정도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질 때도 인도제철소는 답보상태였다. 그런데 포스코는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업종이 불황인데 철강 생산을 늘려봐야 제품을 팔 곳도 없어 재고만 쌓이고, 투자비는 물론 가동 후 늘어나는 비용 부담을 고려할 때 제철소 투자가 안 된 것이 더 나았다는 것이다.
2010년경,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난 뒤 포스코는 다시 해외 진출을 추진했다. 인도 사업의 경우 기존 오디샤주 이외에도 여러 지역에서 한꺼번에 포스코에 고로를 지어달라고 요청해 모두 성사되었다면, 포스코는 인도 내에서 오디샤주를 제외하더라도 최소 3개 지역에서 고로를 가동하고 있어야 했다. 제휴 업체만 해도 인도의 유력 기업이 모두 거론됐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하나도 성사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정준양 회장의 포스코는 인도네시아와 일관제철소 건설을 위한 투자 계약을 성사시켰다. 인도네시아는 인도와 달리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됐다. 크라카타우포스코는 2010년 착공 후 2013년 화입식을 개최하며, 포스코가 세운 최초의 해외 일관제철소로 이름을 올렸다.
인도네시아 제철소가 가동하면서 인도제철소에 관한 관심은 뚝 떨어졌다. 더군다나 건설이 왜 필요하냐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커졌다. 포스코는 공식화하지 않았으나 권오준 회장 취임 후 인도제철소 건설에 나서지 않는 것으로 사실상 중단했다.
권오준 회장에 취임한 최정우 회장의 포스코에선 철광석 등 자원 확보와 이차전지 소재 개발에 집중해 인도제철소 사업은 더 잊혀 갔다. 인도제철소 사업이 수면으로 떠오른 건 중국에 대한 미국의 통상 압박 등으로 제조업의 탈 중국 바람이 일자 대체 국가로 인도가 떠오른 것이 계기였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2기의 미국은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기 위해 통상 압박의 강도를 더욱 끌어올렸고, 미국이 일으킨 지역주의 바람에 목표 국가 시장을 잡기 위한 현지 진출 필요성이 커지면서 포스코고 인도제철소 사업을 다시 적극 추진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JSW와의 JVA 체결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하지만, 안심해선 안 된다. 인도의 정서와 그동안 사업을 추진해 본 경험을 놓고 보면, 협의는 언제라도 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는 이미 오래전부터 외국 기업들이 사업하기 가장 어려운 국가로 꼽혀왔고, 많은 글로벌기업이 떠났다. 평화로울 땐 괜찮지만, 어려운 시기가 도달했을 때 인도 정부와 국민도 마찬가지로 자국 편을 들어 외국투자기업의 현지 시장접근을 제한하는 차별을 가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따라서 포스코가 인도제철소 사업에 성공하려면 포스코가 투자 지분과 경영권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제철소 부지를 인도 정부로부터 이양받아 주민 이동 등 정비 사업을 포스코가 직접 진행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며, 고용 인력의 노무 문제도 포스코가 전향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해 줘야 한다.
그런데 JVA는 투자 비율이 50대 50이고 건설 장소는 그동안 말썽을 피웠던 오디샤 주이며, 건설하는 고로는 파이넥스(FINEX)가 아닌 일반 고로라는 것만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합작사의 사내이사 구성 인원수와 비중,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EO) 제철소장을 비롯한 생산 책임자 등의 지배구조와 경영에 있어 핵심 이슈는 앞으로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투자 비율이 동일하다면, 경영진 구성 논의에서 양사 간 입장 차이가 커질 수도 있고, 때에 따라 산 협상 결렬로 이어질 가능성조차 배제할 수 없다.
과거에 이같은 합작투자를 논의했다면 포스코의 협상력이 커서 이를 주도할 수 있었다. 인도제철소가 조강 생산 규모 면에서 포스코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달라졌다. 세계철강협회(WS)가 발표한 2024년 기준 철강업체 조강 생산량 순위에서 포스코홀딩스는 8위(3779t), JSW는 12위(2695t)로 격차를 많이 줄였다. 그만큼 협상에서 JSW의 목소리가 커진다는 것이다.
포스코는 전통적으로 합작을 했을 때 큰 성과를 보지 못한 사례가 많았다. 소위 말하는 ‘파트너 징크스’다.
포스코는 2018년 대한통운(현 CJ대한통운) 인수전에 삼성SDS와 손잡고 뛰어들었으나 CJ의 거액 베팅에 밀려 패배했다. 2008년엔 GS와 함께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를 추진, 본입찰 서류를 제출했다가 GS가 돌연 인수를 포기해 컨소시엄이 무너졌다. 이로 인해 포스코는 막판에 한화에 밀렸다.
2004년에 벌어진 한보철강 인수전도 포스코는 전략적 우군인 동국제강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인 INI스틸(현 현대제철)-현대하이스코 컨소시엄과 2파전을 치렀다. 포스코는 한보철강 인수를 통해 현대차의 고로 사업 진출을 막고자 치열한 경쟁을 펼쳤으나, 금액이 아닌 고용 보장 등 부수 조건에서 밀려 고배를 마셨다.
설비 투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포스코는 세아제강, US스틸과 합작해 200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피츠버그에 API 고강도 강관 생산 공장 USP(United Spiral Pipe, LLC)를 설립했다. 하지만 사업이 부진해 어려움을 겪자, 포스코는 지분을 매각하려 했지만, 이 또한 추진이 안 돼 결국 2015년 USP를 청산했다.
포스코는 동국제강이 2007년부터 추진한 브라질 고로 제철소 건설사업에 지분 참여를 했고, 브라질 고로 제철소는 2016년 6월 화입해 가동했다. 이 제철소도 운영난이 가중되어 동국제강이 지분을 아르셀로 메탈에 남길 때 포스코도 함께 매각했다.
크라카타우포스코(PTKP)는 인도네시아 현지 철강사인 크라카타우 스틸과 합작해 설립했다. 애초 지분율 포스코가 70%, 크라카타우스틸이 30%였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정부의 자국 철강산업 육성 정책에 따라 크라카타우가 크라카타우 포스코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지속적으로 지분 확대를 요구해 왔으며, 그 결과 2022년 포스코 지분율이 70%에서 50%로 축소되고, 크라카타우 스틸이 50%를 보유하게 되었다. 크라카타우스틸은 신규 공장 현물 출자 및 우선주 인수를 통해 지분을 늘렸다. 이를 통해 크라카타우포스코의 생산능력을 300만t에서 1000만t 수준으로 확대하고 동남아시아 시장 수출을 강화할 예정이다. 지분율은 동일해졌지만, 포스코가 경영권은 계속 유지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물론 포스코가 합작을 통해 훨씬 많은 성공을 일궈냈지만, 눈에 띄는 이러한 경험이 인도제철소 사업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는 게 사실이다.
장인화 회장의 임기는 내년 정기 주주총회까지다. 그로선 임기 내에 착공식까지 진전시키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그러나 인도 또한 인도네시아 못지않게 협상의 불안 요소가 많으므로 포스코로선 쉽게 임할 수 없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강산이 두 번 바뀌어 인도 내의 사업 환경도 좋은 방향으로 많이 개선되었을 것이지만, 그들은 포스코를 외국 기업으로만 보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면서. “계약서에 서명을 하더라도 착공을 시작하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기 전까지는 안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채명석 빅데이터뉴스 기자 cm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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