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국적선사 최초 철도로 컨테이너 나르는 DST 운행 개시
1996년 매주 1회씩 정요일 정시 DST 출발시켜 서비스 제공
복합운송 전문회사 ‘현대인터모달’ 설립, 트럭운송 계약 추진
1995년 7월 국내에서도 컨테이너 수송열차 확보해 운행 시작

당시 미주 시장은 1983년 이후 극동~미주 항로에 대형 경제선 투입, 1984년의 신해운법 발효, 세계일주 서비스 체제 출현 등 다양한 요인이 상호 작용하면서 해운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이 같은 환경에서 내륙의 각종 운송수단과 연계하여 수송하는 복합운송 방식은 선박 이용률뿐 아니라 선사의 전체 수익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복합운송의 경우 육상운송비 점유율이 컨테이너 운송 원가의 60~70%를 차지한다는 분석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DST(Double Stack Train, 2단적재열차)이다. 1984년 5월 미국의 APL이 LA~시카고~뉴욕 구간에서 전용 DST 운행을 통해 미 내륙으로의 컨테이너 복합수송을 실행한 것이 그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APL의 DST 운송 방식은 화물의 안전수송 능력을 높이고 운송 규모의 경제성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내륙운송 분야에서 ‘수송혁명’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를 계기로 내륙운송 분야의 경쟁이 가열되었다.
현대상선은 이보다 조금 늦은 1988년 2월 미국의 철도회사 ATSF(The Atchison, Topeka &
Santa Fe Railway)와 전용 DST 계약을 체결하고, 국적선사 중 최초로 미주 지역에서 2단적재열차 수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마침내 미주 지역의 내륙운송사업에 진출한 것이다. 미주내륙운송 사업은 1988년 3월 1일 부산에서 출항한 현대 익스플로러호와 연결해 3월 16일 롱비치에서 전용 DST가 출발해 시카고를 거쳐 6일 만에 뉴욕에 도착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출발했다.
이후 현대상선은 미국 전역으로 DST를 확장했다. 이스트바운드 화물뿐만 아니라 극동행 웨스트바운드 화물도 고정 요일제로 수송했다. 1996년 1월에는 DST 운행 스케줄에 맞춰 항로별로 매주 1회씩 정요일 정시에 DST를 출발시켜 내륙 12개 허브센터에 화물을 직송함으로써 미주 전역에 서비스를 제공했다.
DST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현대상선은 국적선사로는 처음으로 EDI(전자문서교환) 서비스도 시작했다. 이를 통해 서류 없이도 본선 도착 전에 통관이 가능한 자동통관시스템을 개설해, 화주들의 비용 절감과 통관시간 단축에 크게 기여했다.
DST 운행을 통해 미국에서의 내륙운송사업을 시작한 현대상선은 복합운송사업을 더욱 확대하고 전문화하기 위해 국적선사로는 처음으로 1990년 4월 1일 미국 LA에 미국 국내영업 및 인터모달을 전담할 ‘현대인터모달’(영문명 HII, Hyundai Intermodal Inc.)을 설립했다. 복합운송사업을 분리해 독립된 전문회사 운영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설립 이후 현대인터모달은 미국 내 화물운송사업, 현대화물의 국제화물 운송, 공(空) 컨테이너 회수 등의 업무를 수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먼저 미국 내에서 국제화물과 국내화물 운송이 가능하도록 철도 계약을 재정비하고, 트럭운송 계약을 추진해 LCL(부분적 화물) 영업을 시작했다. 장기적으로는 CFS(화물 적입장) 영업에도 착수한다는 단계별 사업전략도 마련했다.
사업전략에 따라 현대인터모달은 LA·시카고·뉴욕·휴스턴 등 미국 내 주요 거점에 지점을 설치했다. 또한 롱비치~캔자스시티 등의 노선을 지속적으로 추가 개설하여 내륙복합운송 서비스의 범위를 확대해 나갔다. 이로써 현대상선은 미국 내륙운송 분야에서 APL·씨랜드 등 선진 선사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현대상선은 하루 13회 운행하는 경부선 열차편을 이용해 연간 4만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를 수송했다. 이에 따라 안정적인 적기 수송이 가능해졌고, 도로 정체 등으로 인한 시간 지연과 비용의 낭비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자료: HMM 50년사>
채명석 빅데이터뉴스 기자 cm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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