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의 운명-8] 배당금에 깨진 ‘76년 동업 경영’

채명석 기자

2026-03-09 09:20:00

영풍의 고려아연 욕심은 개성상인 기업가 ‘무차입 경영 철학’ 왜곡
고려아연의 미래보다는 신사업 투자로 배당금 줄어들까에만 우려
전문경영인 체제 옹호한다던 장형진 고문, 차남을 후계자로 암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가운데)이 온산제련소를 방문해 생산한 아연괴를 살펴보며 직원들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고려아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가운데)이 온산제련소를 방문해 생산한 아연괴를 살펴보며 직원들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고려아연
[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고려아연 주주와 투자자들은 영풍이 MBK파트너스를 끌어들여서 고려아연을 차지하려고 하는 이유가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주주가치 증대와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을 통한 경영의 투명성 확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들여다봐야 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주식으로 대주주 행사를 하면서 권리는 다 누리려고 한다. 막대한 배당금은 이러한 권리 가운데 하나다.

사업이 잘 돌아가는 평화로운 시기에는 최고경영자(CEO) 등기임원 명함을 들고 다니며 연봉도 챙기고 기업을 다스린다. 그러나, 경영이 어려워지는 중대 사안이 닥쳤을 땐 책임 있는 직책을 떼어낸 뒤 전문경영인 뒤에 숨어 상왕 경영에 몰두한다. 대주주로서 도리는 어떻게 해서든 회피하려고 한다.

기업가의 가장 큰 덕목은 결정과 선택, 책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전망 좋은 본사 집무실 안락의자에 앉아 전문경영인이 만들어온 결재 서류에 사인하기만 즐긴다. 신사업에 대한 도전과 모험에 대한 투자는 비용 낭비라며 질색한다. 아니, 그냥 싫다. “내가 버는 내 돈인데, 그 돈을 왜 투자해? 그럼에도 내 말을 안 듣고 자기들이 맘대로 하겠다고? 내가 못 가진다면 남이 가지라고 하지. 난 돈만 받으면 되니까.” 돈을 잃지 않기 위해 이런 생각을 하고, 실천까지 한다. 내 자리는 내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 전문경영인이 고생했지만, 그들은 나와 내 자식의 지위를 유지해 주는 소모품일 뿐이다.

그들은 말한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참된 기업가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고.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사람을 기업가라 칭하지 않는다. ‘소유와 경영 분리’가 정착한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은 물론,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도 이런 기업인들은 부모 잘 만나 호의호식(好衣好食)하는 이들로 치부된다.
적어도 선대 창업주의 도전·개척 정신과 위기 돌파 의지를 인생의 교과서 또는 이정표로 삼고, ‘산업보국(産業報國)’이라는 철학과 신념에 따라 기업을 일으켜 나와 내 가족만 잘사는 게 아니라, 국민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나라도 부강하게 만드는 원대한 꿈을 실현하는 이를 기업가로 인정한다.

재계 차원의 자정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나 반재벌 정서, 총수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은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기업가’의 탈을 쓰고 자기 호사만을 누리는 일부 기업주의 부도덕한 만행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겠다.

고려아연 경영권을 놓고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영풍그룹 오너 일가, 특히 장씨 일가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이렇다. 광복 후 북한에서 혈혈단신으로 남하해 사업을 일으켜 6.25 전쟁 등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며 영풍그룹을 일으킨 최씨와 장씨 일가의 동업 경영은 복원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까지 치달았다.

루비콘강을 건넌 원인 제공자에 대해 말이 많지만, 산업계는 ‘캐시카우’인 고려아연을 놓치고 싶지 않은 영풍 오너 장씨 일가의 과욕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고려아연은 막대한 현금 창출원이다. 돈줄이 끊어지니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

장씨 일가의 가장 큰 과오는 고려아연의 미래 성장동력 날개를 꺾으려 한다는 것이다. 재계에선 북한 출신 기업가를 일반적으로 ‘개성상인’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의 공통된 원칙은 ‘무차입 경영’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건넌다는 신중함과 함께 조금 느리고, 규모는 작더라도 내가 번 돈으로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그릇의 한계를 염두에 두고 분수에 맞게 기업을 경영하겠다는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을 향한 장형진 영풍 고문의 ‘차입금 확대’ 비판은 개성상인 기업가 정신과 결이 다르다. 괜히 신사업을 벌리고, 돈을 낭비한 끝에 사업이 제대로 안 되면 배당금이 줄어들까 봐 두렵다. 가만히 있어도 들어오는 돈을 잃으니, 장 고문으로서는 최윤범 회장이 눈엣가시 같다. 영풍과 MBK는 고려아연의 지배구조 개선이 주주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했다. 고려아연의 최대 주주가 MBK‧영풍 연합이고, 주주가치 극대화의 결실도 가장 많이 가져간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또한 지배구조에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들이 일반 개인 투자자라는 점도 염두에 두자.

동업 경영을 깨뜨려서라도 그를 쫓아내어 고려아연을 뺏는 방법밖에 없다. 이러려고 장형진 고문은 재계 총수들 가운데 해서는 안 될 일을 벌였다.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를 끌어들인 것이다. 석포제련소의 주인이자 제조업체 경영자 출신인 인 장형진 고문이 고려아연 경영권을 약탈적 금융자본으로 불리는 MBK에 넘기면서까지 고려아연의 온산제련소를 빼앗으려는 파행을 서슴지 않았다. 76년 동업 경영을 깬 책임은 영풍, 장 고문에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잘못된 지배구조의 정상화’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달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없다. 전문경영인 체제의 우수성을 높이 평가하던 장형진 고문의 발언이 거짓이었음을 확인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25년 고려아연 주총을 앞두고 느닷없이 그의 둘째 아들인 장세환 영풍이앤이 부회장이 공식 석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장세환 부회장은 영풍이 고려아연을 이끌어야 한다며, 최윤범 회장의 고려아연이 추진하는 미래 사업과 지배구조를 비판하는 등 자신이 회사 주인이 될 것임을 암시했다.

업계 관계자는 “시간이 갈수록 영풍 측의 의도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고려아연에 대한 집착이 결국 배당금 때문이 아니었냐는 의심을 확신하고 있다”라면서, “주주와 투자자, 나아가 국민은 고려아연 경영권 다툼의 본질은 결국 영풍의 이권 유지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명석 빅데이터뉴스 기자 cm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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