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품산업협회, 우여곡절 많은 차기 회장직 선임 '막바지'

한국식품산업협회, 차기 회장 선출 수개월 '혼란'
박진선 샘표 대표, 황종현 SPC삼립 대표 사퇴에 사실상 유력
무보수 명예직에 때아닌 경합…"상징 이상 실리 노렸나"

최효경 기자

2025-06-05 10:07:06

한국식품산업협회 CI. ⓒ한국식품산업협회
한국식품산업협회 CI. ⓒ한국식품산업협회
[빅데이터뉴스 최효경 기자] 한국식품산업협회(이하 협회)의 차기 회장 선출이 수개월간의 혼란 끝에 박진선 샘표 대표의 단독 후보 체제로 막바지 수순에 접어들었다.

당초 협회장 자리를 두고 박진선 샘표 대표와 황종현 SPC삼립 대표가 함께 출사표를 던지며 협회는 진땀을 흘렸다. 지난 1969년 설립 이래로 복수 후보 경합이 벌어진 것은 최초이기 때문이다. 이에 협회는 '이사회 추천제'를 신설하는 등 회장 선임 구조를 마련했다.

하지만 최근 황 대표가 돌연 사퇴 의사를 전하며 두 후보가 경쟁해야 하는 경선은 무마된 상황. 박 대표의 회장 선임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수월하게 마무리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전무했던 선출 규정…'이사회 추천제' 도입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협회는 지난 4일 오후 협회 회의실에서 임시 총회를 열고 회장 선출 관련 정관 개정안을 원안대로 가결했다. 의결 안건은 차기 협회장 선출을 위한 추천 권한을 명문화하는 정관 개정이다.

이번 임시 총회에서 논의된 정관 개정안은 지난 5월 15일 열린 이사회에서 마련된 것으로, 이사회 추천을 통해 협회장을 선출하는 '이사회 추천제' 도입이 핵심이다.

개정안 의결을 통해 정관 제14조(임원의 선임) 제1호 "회장 및 부회장은 비상근으로 하되, 총회에서 선출하여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보고하여야 한다"는 현행 규정에 "다만, 회장의 경우 이사회의 추천을 받은 자 중에서 선출하며, 회장 선출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별도의 규정으로 정한다"는 내용이 신설됐다.

앞서 협회는 지난 2월 28일 정기총회를 통해 이효율 협회장(풀무원 이사회 의장)을 이을 차기 협회장을 선출하려고 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박 대표는 지난해 10월, 황 대표는 지난해 11월 각각 협회 차기 회장직에 출사표를 던졌다. 복수 후보가 경합을 벌이게 된 것은 협회 설립 이후 55년간 전례 없던 최초 사례다.

설립 이래 단일 후보 추대만 이어졌던 협회는 회장직 경합을 전제로 한 선출 규정 자체가 없었다. 192개 회원사 중 일부는 "회원사 직접 투표로 회장을 선출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이사회를 중심으로 한 방식이 효율적이라는 주장도 맞섰다. 결국 협회는 차기 회장 선임을 한 차례 연기했다.

무보수 명예직에 경합 왜?…무너진 SPC의 '묘수'

갑작스러운 경합 상황에 협회는 회장 선임 구조를 마련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지만 경합 구도는 한쪽의 자진 사퇴로 싱겁게 막을 내린 모양새다. 황 대표는 최근 협회와 SPC 양측에 출마 철회 의사를 전달했다. 지난달 SPC 시화공장에서 발생한 노동자 사망 사고로 인해 소비자들 사이에서 불매운동이 거세지자, 출마를 강행할 경우 여론 악화를 피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일부 소비자단체들은 황 대표의 출마를 "책임 없는 도전"이라며 비판했고, 황 대표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서도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황 대표의 출마 포기로 박 대표가 단독 후보로 남게 됐다. 다만 협회 측은 "회장 선임은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며 "식약처 승인 등 절차가 남아 있으며, 이달 중 최종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차기 협회장 선임을 둘러싼 혼란 사태와 관련해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나타났다. 한국식품산업협회 회장은 무보수 명예직임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유력 인사가 출마를 결정하면서 이목이 집중된 것이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식품산업협회장직은 과거 상징적 자리에 가까웠지만 최근 들어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정부 부처와의 정책 소통이 확대되고 업계 대표로서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업계 내 위상이 높아졌다"라며 "특히 최근 ESG·노동 규제·소비자 권리 등 이슈가 커지는 가운데, 협회장직은 기업의 입장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황 대표가 출마를 결심한 것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인명 사고 등으로 인한 이미지 타격을 일정 부분 상쇄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업계 안팎에서는 "협회장직은 무보수지만, 향후 정부 정책이나 업계 현안 조율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상징 이상의 실리'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박 대표는 협회 전신인 한국식품공업협회 15~17대 회장을 지낸 고(故) 박승복 선대 회장의 아들로, 협회장에 선출될 경우 선친에 이어 '부자 협회장'이라는 상징성을 얻게된다는 점에 긍정적인 평가가 주도적이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출신으로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박 대표는 1988년 샘표에 입사해 1997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경합은 비록 중도에 무산됐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협회 운영의 투명성과 제도 정비 필요성이 표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며 "박 대표가 새로운 리더십으로 협회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협회는 이번에 의결된 정관 개정안에 대해 이달 2주차에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승인을 거쳐 이달 내로 차기 협회장 선출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협회가 내놓은 정관 개정안을 두고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당초 두 후보의 경합에 대해 투표 방식을 주장했던 회원사 중 일부는 '이사회 추천제' 방식이 협회 내 특정 이사진의 입김을 강화하고 대부분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회원사들의 의견을 등한시한다고 지적하며 여전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4일 열린 임시 총회에서도 일부 회원사는 이사회 추천을 거치는 정관개정에 반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효경 빅데이터뉴스 기자 chk@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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