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50년 돌아보기-6] 1984년 5개사 통합 ‘현대상선’ 출범

채명석 기자

2026-04-03 08:52:10

경기 불황에 선복량 과잉으로 해운사 영업난 빠지자
정부 ‘해운산업 구조조정’ 시행, 66개사 → 20개사
현대, 한라·신한·동해 통합하고 계열 선일까지 묶어
향후 2년 안 합병 전제로 보유 선박 수탁 운영키로

현대상선의 살물선(벌크선) ‘현대16호’가 항해하고 있다. 사진= HMM50년사
현대상선의 살물선(벌크선) ‘현대16호’가 항해하고 있다. 사진= HMM50년사
[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1984년 2월 4일 5개 해운사가 한 울타리로 묶인 ‘통합 현대상선’이 출범했다.

출범 배경은 정부의 해운산업 구조조정 정책에 있었다. 3년여 동안 계속된 세계 해운시장의 불황으로 1983년 무렵 국내 해운업계는 사실상 빈사 상태에 놓여 있었다. 해운사들의 1982년도 경영 실적을 보면, 59개 업체 가운데 47개 업체가 적자를 내면서 총 1024억 원의 결손을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선방했다고 평가받았던 현대상선 실적도 초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980년에는 1000억 원대 매출에도 100억 원이 넘는 흑자를 기록했지만, 1981년에는 매출이 전년 대비 46% 증가한 1,573억 원을 달성하고도 당기순이익은 1억여 원에 그쳤다. 1982년에는 전년 대비 8.7% 증가한 1710억 원의 매출에도 불구하고 결국 35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벌크선 시장의 불황으로 주요 시장이던 중동 영업의 채산성이 악화하고, 석유파동 이후 지속된 고유가로 운항 원가가 높아진 것이 원인이었다.

적자 운항과 함께 당시 한국 해운업이 안고 있던 가장 큰 난제는 선복 과잉이었다. 한국 해운업은 1982년부터 선복 과잉 상태가 되었다. 1970년대 말부터 1981년 사이에 왕성하게 선대 확대 정책을 추진한 결과였다.
그런데 한국 해운업은 단순히 선복의 과잉이라는 양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큰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이 보유한 선박의 절대다수가 외국에서 구입한 중고선이었는데, 중고선 중심으로 선대 구성을 하다 보니 연료 효율이 떨어져 고유가 시대에 높은 연료비 부담을 안게 되었다. 여기에다 한국의 해운사들은 재무구조가 극히 취약하여 불황 대응력이 상당히 낮은 상태였다. 선진국 해운사들의 자기자본비율이 40~50% 수준인 데 비해 한국의 해운사들은 12%에도 미치지 못했다.

더욱이 선복 확대를 추진하면서 구매 자금을 차입해 쓴 것이 고스란히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이어져 많은 선사가 적자 속에서도 금융비용의 압박에 허덕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기간산업 육성 시책에 따라 주어지던 조세감면 혜택이 1981년 확정된 정부의 산업 간 조세 형평화 정책에 의해 폐지되는 바람에 해운업계는 2중, 3중의 타격을 받았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정부는 1983년 10월 7일 해운산업육성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이어 12월 29일에는 선사 간의 통폐합을 골자로 하는 ‘해운산업 합리화 계획’을 의결·공고했다. 이 계획은 1984년 5월 12일 산업정책심의회를 통과해 시행에 들어갔다. 8월에는 기존 해운진흥법을 해운산업육성법으로 개정하여 효율적 추진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도 마련했다.
해운산업합리화 정책 기준. 표= HMM 50년사
해운산업합리화 정책 기준. 표= HMM 50년사
해운산업 합리화 계획은 선복 과잉을 줄이기 위해 노후선을 해체·매각하는 등의 선복 구조조정,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 해운사를 통폐합 및 정리하고 일정 규모 이상으로 합병·통합하도록 하는 선사 구조조정, 금융 및 세제 지원, 정기선 사업 지원, 질적 성장 중심으로의 해운정책 방향 전환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선사 구조조정이었다. 한마디로 해운사를 통폐합해 국내 해운업계를 재편하겠다는 것이었다. 해운산업 합리화 계획의 대상 선사는 66개 사였다. 이 중 1984년 3월 31일 합리화 계획 제출을 마감한 결과, 외국과의 합작사라는 이유로 불참 의사를 표시한 3개 선사를 제외하고 63개 선사가 대상이 되었다. 이 선사들이 신고한 내용을 보면 채무액이 2조5163억 원, 채권 및 자산액이 2조7972억 원이었다.

63개 선사는 17개 그룹 선사로 통폐합되었다. 이들 17개 합리화 대상 선사를 항로별로 보면, ▲‘원양항로’에 현대상선을 비롯해 고려해운·대양선박·대한선주·대한해운·두양상선·범양상선·조양상선 등 8개 그룹 ▲‘동남아 항로’에 동남아해운·세양선박·오성해운·조양근해상선 등 4개 그룹 ▲‘한일 항로’에 남일상선·동진해운·신라해운·한일해운 등 4개 그룹 ▲‘특수선 그룹’에 한국특수선 등이었다.

이 가운데 고려해운·대양상선·대한선주·대한해운·범양상선·세양선박 등 6개 그룹이 합병 선사 그룹이고 나머지 11개 그룹은 2년 뒤 흡수합병을 전제로 참여 선사의 선박을 수탁 운항하게 되는 운영 선사 그룹이었다. 또 범주해운·보양선박·삼원선박·서진해운·선일상선·성운물산·유공해운·중앙상선·한림해운 등 9개 선사는 계열 선사로 참여했다.

해운산업 합리화 계획은 1984년 5월 12일 제13차 산업정책심의회에서 원안대로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해운업계는 66개 선사 중 합리화 대상 17개 그룹 선사와 3개 불참 선사를 포함해 20개 선사로 대폭 정비됐다. 1984년 11월 대양선박을 마지막으로 이들 17개 그룹 선사에 대한 신규 면허가 발급됨으로써 해운업계의 재편 작업은 일단락되었다.

한편, 현대상선은 애초 물리적으로 통폐합을 추진하는 해운산업 합리화 계획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이 계획에 불참하는 선사에 대해서는 모든 세제 및 금융 지원을 중단한다는 등 강력한 의지를 내비침에 따라 정부 방침에 따르기로 했다.

대신에 ‘통합운영’ 방식이라는, 실질적으로 합병이나 다름없는 운영회사 형태를 구상해 합리화 시책에 대응했다. 통합운영 방식은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할 수 있고 신규 회사를 설립하는 데 따르는 번거로운 절차와 자본금 부담을 피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또 대기업 현대상선의 상호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 국제적으로 인지도와 신뢰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런데 정부가 제시한 합리화 기준에는 당시 현대상선이 속한 원양선사 일반화물선부의 경우 선복량이 130만 총톤수(G/T) 이상이어야 하고 합리화 계획 승인 후 2년 이내에 합병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합리화 계획이 발표된 1983년 12월 기준으로 현대상선의 선복량은 100만G/T 수준이었다.

이에 현대상선은 합리화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1984년 2월 한라해운·신한해운·동해상선과 합병 동의서 및 위탁운영계약을 체결하여 부족한 선복량을 확보했다. 2월 4일에는 실제로 신한해운의 선박에 대해 위탁운영을 시작하며 사무실을 현대상선으로 통합했다.
통합 현대상선 참여 선사 현황 표= HMM 50년사
통합 현대상선 참여 선사 현황 표= HMM 50년사
1984년 2월 현대상선이 제출한 합리화 계획서의 주요 내용은, 이 계획 참여 선사 중 4개 사의 총 57척, 134만G/T에 달하는 선복의 통합 운영을 위해 총선복의 82%를 보유하고 있는 현대상선을 주축으로 하여 4개 선사의 궁극적인 합병을 추진하고 선일상선을 계열 선사로 한다는 것이었다.

또 합병 여건이 성숙될 때까지 최장 2년 동안 주축 선사인 현대상선이 전체 보유 선박을 수탁 관리함으로써 영업활동을 통합해 수행하도록 했다. 위탁 선사 3사는 기존의 운항사업면허를 반납하고 합병 이행 등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직 및 인원만 잔존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이러한 합리화 계획의 특징은 참여 선사들의 합병을 전제로 한 과도기적인 형태로써 별도의 운영 선사 설립 없이 현대상선이 참여 선사의 보유 선박 전체를 수탁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통합 운영 선사의 명칭은 ‘현대상선주식회사’로 정했다.
<자료: HMM 50년사>

채명석 빅데이터뉴스 기자 cm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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