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위기에 긴장 고조된 정유·석화업계…"4월이 '생존 마지노선'"

김유승 기자

2026-03-23 15:10:03

美, 이란에 최후통첩…이란 맞대응 시사에 확전 위기↑
정유업계 "4월까지는 기존 재고와 추가 물량 활용 가능"
석화업계는 비축분 2주 불과…"4월이 기업의 마지노선"

전남 여수시 석유화학단지 공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전남 여수시 석유화학단지 공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빅데이터뉴스 김유승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르무즈 해협 개방’ 최후통첩 시한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계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정부는 4월까지는 원유 수급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비축유 등으로 버틸 수 있는 마지노선을 4월로 보고 있다. 5월부터는 원유 부족에 따른 공급 위기가 현실화할 수 있다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 시각) 이란이 48시간 이내에 호르무즈 해협을 전면 개방하지 않을 경우 이란 발전소를 파괴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이란 측은 미국의 위협이 현실화할 경우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겠다고 맞서며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확전 위기가 커지면서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계도 직격탄을 우려하며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내 수입 원유의 약 70%는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중 90%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정유업계에서는 4월 말까지는 기존 재고와 추가 도입 물량으로 버틸 수 있어 아직 가동에 큰 차질은 없지만, 5월부터는 상황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유사들은 원유 확보를 다변화하기 위해 대체 수급망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에쓰오일(S-Oil)은 대주주인 사우디 아람코를 통해 홍해 연안 얀부 항구에서 원유를 들여오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도 얀부 및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 항구 송유관 활용을 검토 중이다. 다만 해당 경로의 수송 능력은 기존 중동 물량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미국·호주·동남아 등 비중동 지역에서 원유를 들여오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으나 물량이 제한적인 건 마찬가지다.

석유화학 업계의 타격은 더욱 심각하다. 원유를 기반으로 생산되는 나프타의 국내 재고가 약 2주 분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가격도 연초 톤당 480달러에서 23일 기준 873달러까지 급등했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은 이미 가동 중단에 돌입했다. 여천NCC는 공급 불가항력을 선언하고 올레핀 전환 공정 가동을 멈췄으며, LG화학은 여수 NCC 2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롯데케미칼 역시 정기 보수를 앞당겨 공장 가동을 멈추고 확보한 나프타를 다른 공장으로 재배치하기로 했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질 경우 4월부터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 생산이 급감해 플라스틱, 비닐, 가전, 타이어 등 산업 전반으로 공급 차질이 확산될 우려가 크다.
정부는 4월까지는 수급 관리가 가능하다며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양기욱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이날 “최근 국제유가 상승 속도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보다 더 가파른 유례없는 상황이지만, 4월 중 국내 원유 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4월에 도입되는 원유 물량이 평소보다 줄어드는 것은 맞지만, 대체 물량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고 4월 중순에는 비축유 방출도 계획돼 있어 전체 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정부는 UAE에서 도입하기로 한 2400만 배럴 가운데 400만 배럴을 3월 말과 4월 초에 우선 반입하고, 나머지 1800만 배럴도 4월 초·중순부터 순차적으로 확보할 계획이다. 또한 민간 재고가 소진되는 시점에 맞춰 비축유를 방출하고, 정유사들과 협의해 수출용 나프타를 국내로 전환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이 같은 긴급 수급 조정 명령이 발동될 경우 가동 중단 시점을 5월까지 늦출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4월까지는 버틴다 해도 그 이후가 수급의 마지노선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확전 위기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인 만큼, 공급망 안정을 위한 정부의 선제적인 대응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정부가 수급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기업에서도 러시아산이나 이란산 정유 물량이 들어오게 될 경우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기대가 있지만, 이는 아직 가정에 불과하다”며 “현재로서는 4월이 대부분 기업의 마지노선이다. 이후 원료 수급이 더 어려워지면 상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정부의 수출 제한 검토와 관련해서는 “해외 수출 물량 일부를 국내로 전환하면 도움이 될 수 있어 내부적으로 국내 공급 비중을 90%대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면서 “석유화학 제품 가격은 국제 시세에 연동되기 때문에 임의로 크게 올리기는 어렵다. 다만 최근에는 전반적으로 가격이 상승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민간 재고 현황 등 구체적인 데이터는 정부가 관리하고 있어 업계 차원에서 정확히 평가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원유 수급 차질을 막기 위해 비축유 방출 등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유승 빅데이터뉴스 기자 ky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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