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8년 선제 투자, 피지컬AI로 꽃 핀다...LG 계열사 총력전 성과 '가시화'

조재훈 기자

2026-05-06 16:04:59

LG전자, 60년 모터 기술 기반 액추에이터로 '로봇 근육' 시장 도전
원통형 2170 배터리 가진 LG엔솔...휴머노이드 로봇 심장 낙점
LG테크놀로지벤처스, 피규어AI·스킬드AI 등 베팅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손잡은 LG이노텍...야간·악천후 대응 로봇 눈 개발

구광모 LG그룹 회장(오른쪽에서 첫번째)이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아비나브 굽타 스킬드AI 공동 창업자와 휴머노이드 로봇 시연을 보고 있다. /사진=LG그룹
구광모 LG그룹 회장(오른쪽에서 첫번째)이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아비나브 굽타 스킬드AI 공동 창업자와 휴머노이드 로봇 시연을 보고 있다. /사진=LG그룹
[빅데이터뉴스 조재훈 기자]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2018년 취임 직후부터 시작한 인공지능·로봇 분야 선제 투자가 피지컬AI(Physical AI) 시대를 맞아 그룹 전체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결실을 맺고 있다. 경쟁사들이 피지컬AI를 한발 늦게 화두로 꺼내고 있는 가운데 LG그룹은 이미 하드웨어부터 파운데이션 모델, 산업 현장 훈련 체계까지 수직 계열화에 준하는 포트폴리오를 손에 쥐고 있는 상황이다.

6일 재계에 따르면 구 회장은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를 찾아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RFM) 전문기업 스킬드 AI(Skild AI)의 디팍 파탁(Deepak Pathak)·아비나브 굽타(Abhinav Gupta) 공동창업자를 직접 만났다. 피지컬AI 생태계가 제조·물류 등 실제 산업 현장에 미칠 파급력을 직접 현장을 발로 뛰며 확인하고 온 것이다. 대기업 총수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창업자를 직접 찾아가 기술을 점검하는 것은 이례적인 행보다.

구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기술의 패러다임과 경쟁의 룰은 바뀌고 고객의 기대는 더욱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성공방식을 넘어 새로운 혁신으로 도약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수십 년간 LG의 먹거리였던 가전·디스플레이·배터리가 피지컬AI 도입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담긴 발언으로 해석된다.

구 회장 취임 첫해인 2018년 LG전자는 로봇 개발업체 로보티즈(Robotis)에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이후 산업용 로봇 제조사 로보스타(Robostar) 경영권을 인수했고, 지난해에는 미국 자율주행로봇 기반 모빌리티 기업 베어로보틱스(Bear Robotics) 경영권 확보와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제조사 애지봇(AgiBot) 전략적 투자를 잇달아 집행했다. 7년 동안 피지컬AI 밸류체인 완성에 공을 들인 것이다.

그룹 벤처 투자 플랫폼인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통한 스타트업 베팅도 구 회장 체제에서 본격화됐다. 지난해 LG테크놀로지벤처스는 미국 AI 로봇 스타트업 다이나 로보틱스(Dyna Robotics), 피규어 AI(Figure AI), 스킬드 AI에 잇달아 투자했다. 피규어 AI는 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와 투자기관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의 대표 스타트업이다. LG CNS도 지난해 6월 스킬드 AI와 별도 투자·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산업 현장 행동 데이터를 RFM 학습에 반영하는 공동 개발을 진행 중이다. 구 회장이 직접 검증한 기업에 그룹 차원의 복수 채널 투자가 이뤄진 것이다.
계열사별 역할 분담도 가시화됐다. LG전자는 올해 1월 CES 2026에서 '제로 레이버 홈(Zero Labor Home)' 비전을 담은 AI 홈로봇 'LG 클로이드(CLOiD)'를 선보였다. 가사 전반을 로봇이 수행하는 청사진으로, 함께 공개한 독자 액추에이터 기술이 업계 시선을 끌었다. 액추에이터는 전기 신호를 운동 에너지로 전환해 로봇 동작을 제어하는 '로봇의 근육'에 해당한다. LG전자는 세탁기·청소기 등 생활가전을 통해 60년 이상 모터 기술을 검증해왔으며, 이 기반이 정밀 액추에이터 개발의 핵심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말 HS사업본부 산하에 HS로보틱스연구소를 신설하며 피지컬AI 전담 연구 조직을 공식화했다.

LG전자의 AI 홈로봇 'LG 클로이드'. / 사진=LG그룹
LG전자의 AI 홈로봇 'LG 클로이드'. / 사진=LG그룹

LG AI연구원은 구 회장 취임 이후 그룹 차원의 AI 역량 결집을 위해 출범한 조직이다. 지난해 7월 'LG AI 토크콘서트'에서 AI의 다음 단계로 피지컬AI를 공식 지목했고, 올해 1월에는 기존 비전랩(Vision Lab)을 '피지컬 인텔리전스랩(Physical Intelligence Lab)'으로 개편했다. 피지컬 인텔리전스랩은 VL(Vision-Language) 기술 고도화를 통해 로봇·자동차·가전에 시각 지능을 탑재하는 연구를 수행한다. 사물이 현재 상황을 인지하고 다음 상황을 예측하는 시각 지능 구현은 기술 난이도가 매우 높은 영역으로 꼽힌다.

LG디스플레이는 차량용 OLED에서 쌓아온 기술력을 로봇 얼굴 디스플레이로 전환하는 전략을 택했다. CES 2026에서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용 디스플레이는 플라스틱 OLED(P-OLED)를 적용해 곡면 구현과 경량화를 동시에 달성했다. 로봇 얼굴부의 자연스러운 곡선 표현이 필수적인 시장에서 비정형 디스플레이 원천기술은 시장 선점 요건으로 꼽힌다.

LG이노텍은 지난해부터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와 협력해 RGB 카메라와 3D 센싱 모듈을 단일 모듈에 통합한 '비전 센싱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야간·악천후 환경에서도 복합 센싱을 통해 주변 상황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LG이노텍은 센싱·기판·제어 원천기술을 토대로 로봇 액추에이터, 모터, 촉각센서 등으로 사업 영역을 지속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이 공급한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탑재 공간이 협소한 구조 탓에 소형·경량이면서 순간 고출력과 안전성을 동시에 갖춘 배터리가 필수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4년 베어로보틱스와 원통형 2170 배터리 단독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지난해에는 네이버랩스 자율주행 로봇 '루키'에 자사 원통형 배터리를 탑재해 공개했다.

LG CNS는 소프트웨어와 훈련 체계로 피지컬AI 상용화를 뒷받침한다. 제조·물류·유통 산업 현장에서 쌓은 운영 데이터를 바탕으로 로봇에 '산업 지능'을 심는 훈련 체계가 핵심이다. 현재 미국·중국 로봇 기업들과 다수의 개념검증(PoC)을 진행 중이며, HD현대로보틱스와는 조선소 품질 검사 휴머노이드 실증을 추진하고 있다. 스킬드 AI 외에도 휴머노이드 양팔 제어 특화 RFM 기업 컨피그(Config)와도 파트너십을 확장했다.

재계 관계자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투자 등을 모두 아우르는 LG그룹의 피지컬AI 사업 확장은 구 회장 취임 이후 8년간 한 방향을 향해 누적된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조재훈 빅데이터뉴스 기자 cjh@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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