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철의 펀치펀치] 재벌집 막내아들과 내부거래

2022-12-02 10:08:50

문인철 위원
문인철 위원
한 종편 방송사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인기가 매우 높다. ‘재벌집 막내아들’이다. 우리나라 현대사에는 굵직한 사건이 많았다. 이 사건들과 재벌을 연결해서 그런지 현실감이 크다. 드라마는 픽션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의 고민과 실제 재벌총수가 고민하는 한 가지가 똑같다. 후계자 선정에 관한 것이다.

재벌총수의 후계자는 총수가 정하면 끝이다. 막힘이 전혀 없다. 80년대에는 공익재단을 통한 방법이 있었다. 총수는 후계자가 대주주인 공익재단에 주식을 양도한다. 이후 후계자는 세금 조금 내고 공익재단을 통해 그룹을 장악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안 통한다. 이러한 편법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막았다.

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지주회사 지분을 통한 방식이 많았다. 지주회사는 그룹 내 수십 개 계열사의 대주주다. 지주회사만 장악하면 모든 계열사를 지주회사 대주주인 후계자가 장악하게 된다. 대부분의 재벌들이 이 방식을 선호했다. 지금은 이 방식도 여의치 않다. 조세제도가 촘촘해지면서 천문학적인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2010년대부터는 비상장사를 통한 방식이 꽤 많이 이용됐다. 후계자에게 비상장사인 작은 기업의 지분을 대폭 증여한다. 작은 기업이기에 증여세도 쥐꼬리만 하다. 이제 작업을 시작한다. 이 작은 기업을 지주회사가 될 정도로 키운다. 결국 이 작은 회사가 지주회사가 되면 후계 작업은 끝난다. 모든 계열사가 후계자의 손아귀에 들어오게 된다.

계열사 중 작은 기업을 키우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다. 그룹에서 일감을 몰아주면 된다. 몇 년 안 되어 작은 기업은 대기업이 된다. 바로 내부거래다. 그룹 계열사의 지분까지 갖게 된다. 지주회사 위치까지 오른다. 그동안 재벌의 후계 구도가 제도나 세금 때문에 실패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여기에 언급되지 않은 방법들이 수없이 많다. 재벌집 자녀로 태어난 행운 하나로 재벌총수에 오른다.

2010년대 중반에서야 공짜로, 저절로 재벌을 대대로 이어받는 구조를 손보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내부거래에 대한 제한이다.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6조가 만들어졌다. 처벌조항이 세진 않다. 재벌의 내부거래가 좀 낮아졌다지만 여전히 횡행한다. 물론 내부거래가 모두 나쁘진 않다. 수직 계열화된 그룹에서는 효율성이 있다. 원재료 구입, 가공, 제품생산, 판매에 이어지는 수직관계에서는 필요한 측면도 있다.

문제는 내부거래로 총수나 그 가족의 이익만을 추구했을 때이다. 재벌에 속하지 않은 다른 일반기업들은 망한다. 재벌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일반기업은 거의 없다. 시장경쟁력은 약하지만 재벌 소속이라는 이유 하나로 승승장구한다. 재벌 소속 기업은 커지고 돈을 벌지만 그 산업 자체 경쟁력이 약화 될 수밖에 없다. 결국 국제경쟁력도 약화된다.

12월1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내부거래 현황을 발표했다. 대상 기간은 2020년과 2021년이다. 총수가 있는 66개 재벌을 대상으로 하였다. 총수나 총수 2세의 지분율이 높을수록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 상위 10대와 나머지 재벌을 비교해보자. 삼성, 현대자동차, SK 등의 상위 10대와 나머지 재벌과의 비교다. 상위 10대 재벌의 내부거래 비중은 20.7%이다. 나머지 56개 재벌의 비중은 6.1%이다. 규모가 큰 재벌일수록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 역시나 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 때문에 10대 재벌이 더 높을까. 경제 효율성 때문이라면 보는 우리도 얼마나 맘이 편할까 싶다. 공정위의 조사에서는 내부거래 현황만 따져봤다. 총수나 총수 2세의 이익만을 위한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아쉬운 대목이다.

공정위는 내부거래 현황 발표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어떤 이유로 내부거래가 많았는지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0대 재벌뿐만 아니라 나머지 재벌들의 내부거래가 더 증가할 것이다. 바보가 아니라면 후계자 승계를 위해,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를 위해 이 방법을 쓰지 않을리 없다.

재벌집 자녀로 태어나 떵떵거리고 사는 모습을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갑으로 사는 삶이 보장된다. 그게 뭐가 문제야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것도 능력이니까. 부모 잘 만난 덕이니까.

공정을 생각해본다. 재벌 문제에서의 공정은 사익편취를 최소화하고, 부당한 내부거래를 막는 것이다. 하지만 허망하다는 느낌이 든다. 공정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서다.

(문인철/빅데이터뉴스 논설위원)


<저작권자 © 빅데이터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