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광장] 정치인의 말실수, 정말 실수일까?

기사입력 : 2020-02-19 11: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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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 이사. 전 KBS 아나운서
총선이 두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정치인들의 말실수가 연일 이슈가 되고 있다. 바로 얼마 전 정세균 국무총리는 한 식당에서 나눈 말로 곤욕을 치렀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점원에게 “요새는 좀 손님들이 적으니까 편하시겠네”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가 구설에 오른 것이다. 현실감 없이 어려운 이들을 조롱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야당은 강도 높게 직격탄을 날리며 ‘무개념 발언’, ‘달나라 총리’, ‘민생 막장쇼’ 등 거센 언어로 날 선 논평을 내놨다. 급기야 정 총리는 다음날 출입 기자 간담회를 통해 해명하는 일까지 벌여야 했다.

총리 신분이 아니고 그 누구라도 신종코로나 여파로 온 국민 힘들어하고 있는 어려운 이 시기에, 더구나 식당 매출 부진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조롱할 리가 없다. 위로를 건넨다는 말이 잘못 왜곡되었거나 이도 아니면 단순한 말실수였을 테지만, 말이란 이렇게 한번 입 밖으로 나오면 주워 담을 수도 없고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여당 정치인만 실수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제1야당의 황교안 대표 역시 심각한 말실수로 구설에 오르곤 한다. 외국인노동자 차별, 아들 채용 의혹 발언 등 적지 않은 말 실수로 신중하다는 그간의 이미지를 깎아 먹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는 한 분식집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무슨 사태가 있었죠? 1980년. 그래서 뭐 학교가 휴교가 되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라고 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1980년에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을 ‘무슨 사태...’라고 모호하게 표현한 것이다. 황 대표는 ‘휴교령’을 말한 것이라며 해명을 했지만 이말을 듣는 청자 입장에서는 쉽게 납득이 안되는 모양새다. 실제 앞뒤 문맥상 광주민주화운동을 무슨 사태라고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떨치기는 힘들어 보인다.

조금 오래된 일이기는 해도 국회의원 신분으로 어이없는 말실수가 원인이 되어 소속 정당에서 제명된 사례도 있다. 현재는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나 여전히 그는 말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10년 전 국회의원 시절 그는 약 20여명의 대학생과 나눈 대화에서 아나운서를 지망한다는 한 여학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이다. 그는 대학생 토론대회를 마치고 뒤풀이를 하는 자리에서 청중과 자신의 위치를 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화의 상대방인 대학생들이 국회의원인 자신으로부터 뭔가를 배우겠다는 의도를 가진데 비해 그는 유흥을 즐기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 여대생에게 현직 국회의원이 해주어야 할 말은 언론의 힘과 역할에 대해 알려주고 공인의식을 심어주는 것인데 엉뚱하게도 성적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이다. 명심할 것은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청중은 언제나 말하는 이의 정체성에 입각한, 적절한 말을 원한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정치인들의 말 실수가 자주 화제가 되고 있는데 이유가 뭘까.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 어째서 그렇게 어이없는 말실수를 하는 건지 그 속내는 알 수가 없다. 오랫동안 아나운서로 방송현장에서 스피치 전문가로 활동해온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말 실수를 하는 원인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실수하지 않으려는 과도한 긴장감이 되레 실수를 부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원인은 말을 할 때 청자의 입장을 헤아리기보다 자신의 감정에 휩쓸릴 때 실수할 확률이 높다.

말실수란, 따지고 보면, 자질과 전문성이 부족하거나 준비가 충분하게 갖춰 있지 않을 때 부적절한 어휘로 드러나게 된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Freud)는 분석에 의하면 말실수란 '억눌러져야 할 생각이 입 밖으로 표출됨으로써 난처한 지경에 이르는 것'이라고 한다. 말실수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덜 절제 되거나 덜 다듬어진, 한마디로 준비가 덜 된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정치인에게 있어서 ‘말’은 곧 생명이고 인격이다. 리더십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인에게 있어서 스피치 능력은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다. 말 실수가 잦은 정치인이 국민에게 사랑받고 신뢰받기는 어렵다. 국민의 선택을 받기는 더 어려운 일이다. 화자 중심이 아니라 청자 중심의 언어로 듣는 이를 배려하는 말에는 설득력이 생긴다. 말에는 모든 것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단순한 이 말이 세삼 깊게 다가 온다. (김희정 / 글로벌빅테이터 연구소 이사·전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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