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쓸모 있는 예측을 어떻게 가려낼까

기사입력 : 2018-03-08 11: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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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칼럼에서는 예측을 하는 이유에 대해 따져보았다. 예측은 예언이 아니라는 것, 대부분 예측은 틀린다는 것, 그럼에도 예측은 개인이나 기업에게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미 있는 답을 줬느냐는 부분에서 쓸모를 판단해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쓸모 있는 예측을 가려내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즉 질 좋은 예측을 어떻게 구별해내야 할 것인가의 문제다.

우리 사회에선 이것이 지나치게 인물의 역량을 평가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업계 사람들끼리 ‘선수’라고 칭하고, 선수 누구의 촉이 좋고, 이런 부분을 잘 본다고 말하는 식이다. 물론 의미 있는 말이며, 쓸모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애매한 말들에 숨겨진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데이터의 수집 자체에서부터 격차가 나는 경우, 우리는 무엇을 극복해야 할 것인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이 영역에선 대부분 시간이나 비용의 문제가 된다. 그러나 같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여러 사람들이 예측을 할 경우 무엇이 쓸모 있는 예측인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앞선 글에서 대부분의 예측은 틀린다고 말한 바 있다. 현실 사회가 워낙 복잡 다단하고, 우연성이 작용하는 부분도 많고, 일개인의 깜냥에는 한계가 있다. 결과적으로 여러 예측을 참조해야 하는데, 이 경우라도 신뢰할 만한 예측들을 가려내서 참조해야 한다.

실천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예측가의 실패한 예측을 추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성공한 예측이 왜 성공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쉽지 않다. 심지어는 다만 우연일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한 예측과 실제로 벌어진 현실을 비교해본다면, 그 사람이 간과하거나 잘 몰랐던 것이 무엇인지 보인다.

사실 실패한 예측도 보통은 개연성이 있다. 현실이 그 길로 갈 수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리 되지 않은 것이다. 다만 우연의 칼이 춤췄을 수도 있지만, 그 경우라도 참조할 부분이 있다. 예측과 현실이 틀어진 부분은 예측가가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다. 반면 예측에서 개연성을 주는 부분은 예측가가 잘 아는 영역이다.

예측은 변화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세상의 모든 요소가 변한다. 모든 영역이 변화무쌍하다면 예측이란 것도 의미 없을 것 같지만, 변화에는 속도의 차이도 있고 방향도 있다.

훌륭한 예측가는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영역에서 통찰을 발휘한다. 통상적으로 남들이 상수라고 보는 곳, 어제와 같은 흐름으로 비슷한 속도의 변화가 있을 거라 보는 곳에서 또 다른 흐름의 변화를 감지한다.

하지만 비록 그런 이라 하더라도, 모든 영역의 변화를 감지하진 못한다. 본인이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나, 변화가 없을 거라 가정한 영역은 어제와 같을 거라 가정하고 추리를 전개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예측은 실패한다.

정치 영역 예측으로 국한하더라도, 여론흐름을 잘 보는 이가 있고 권력기관의 작동 방식에 대한 이해가 탁월한 사람이 있다. 여론흐름도 세분화된다. 지역정서를 잘 아는 이가 있고, 세대정서를 잘 아는 이가 있으며, 각 정당 핵심지지층의 정서를 잘 아는 이가 있다.

잘 모르면 막연하게 상수로 두게 된다. 영호남은 굳어 있다 생각하고 수도권과 충청만 살펴봤는데 영호남에서 무쌍한 변화가 일어나서 선거가 뒤집어지기도 한다. 2016년 총선 국민의당 선전이 그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한편 2016년 가을 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민주당지지 성향 정치평론가들은 자유한국당 핵심지지층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여 2016년 10월말 기준으로 이미 박근혜 정부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상실되었다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했다.

그러니 그 실패한 예측들을 보면, 각 예측가가 어느 영역을 잘 보고 어느 영역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는지를 추측해볼 수 있다. 한 영역에선 전문가가 다른 영역에선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하는 일도 흔하다. 따라서 담론가들의 목소리에서 도움을 받으려면 그들의 지와 무지를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림’이 비슷한 예언 같은 예측이 아니라 지금 자신의 상황에서 정말 필요하고 대비해야할 변화 및 변동을 예측하는 정보를 구할 수 있다.

한국에선 예측의 영역이 아직은 영세하기 때문에, 본인의 잘못된 예측을 성실하게 복기하는 이가 환영받지 못한다. '장사'를 하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는 자신의 예측력을 과장하게 된다. 그러니 실패한 예측의 목록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 축적해야 한다. 같은 양의 자료를 가지고 벌어진 예측 경연대회의 역사 속에서 본인에게 필요한 예측의 흐름을 잡아야 한다.

기술이 더 발달하면 이 같은 예측의 목록도 정보화하여 데이터분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언제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즐거운 상상이다. 하지만 그런 날이 오더라도, 인간은 그 자료들을 활용해서 한층 더 메타적인 예측 경연대회를 치르고 있을 것이다.

한윤형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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