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폭언, 말뿐이라서 더 오래 남습니다

황인석 기자

2026-03-18 10:59:34

윤보현 변호사
윤보현 변호사
“때리진 않아요. 그런데 매일 사람을 깎아내립니다.”

배우자폭언 상담에서 여성 의뢰인들이 가장 자주 꺼내는 말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가 없다는 이유로 “내가 예민한가” “이 정도는 참고 사는 건가”를 되묻지만, 반복되는 폭언과 모욕은 생활 전체를 잠식한다. 그리고 법원도 이를 단순한 부부싸움으로만 보지 않는다. 폭언이 누적돼 혼인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면, 정신적 학대로 평가돼 이혼과 위자료 판단의 핵심 사유가 될 수 있다.

재판에서 배우자폭언이 문제 되는 지점은 “기분이 나빴다”가 아니라, 그 폭언이 얼마나 반복되고 구조적으로 지속됐는지다. 특정 단어 하나의 수위보다, 매일같이 인격을 비하하거나 “네가 문제다” “나가라” “죽어라” 같은 말로 공포를 주고, 통제·고립을 강화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특히 시댁·처가 앞에서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거나, 아이 앞에서 상대를 깎아내리는 방식이 반복되면 혼인 파탄의 책임이 더 무겁게 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행위는 감정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고 법적 책임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폭언이나 모욕이 반복된 사실이 인정되는 경우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가 인정된 사례도 상당하다. 다만 법원은 폭언이 ‘일시적 언쟁’이 아니라 상습적·일방적 폭력에 가까웠는지, 그로 인해 우울·불안·불면 같은 건강 악화가 있었는지, 실제로 별거·가출·치료로 이어졌는지를 함께 본다. 즉, 폭언이 혼인관계를 무너뜨린 핵심 원인이었음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서 배우자폭언 사건에서는 ‘증거의 질’이 중요하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격한 장면을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다. 평소 폭언이 나오는 대화 녹음, 문자·카톡 캡처, 반복된 폭언이 있었던 날짜와 상황 메모만으로도 충분히 구조가 잡힌다. 정신과·심리상담 기록, 병원 진단서, 주변인에게 도움을 요청한 메시지도 “참고 살 수 없는 상태”였다는 객관 자료가 된다. 다만 이러한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맞대응하며 욕설을 주고받은 정황만 남게 될 경우 사안이 쌍방 간 다툼으로 평가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일방의 책임이 희석되면서 위자료 인정 범위나 금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대응 방식 역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안전 확보와 일상생활의 안정이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폭언이 협박과 통제로 이어지는 경우, 이혼을 결심하기 전에 연락·주거 안전, 경제적 독립, 자녀 돌봄 구조부터 점검해야 한다. 급하게 협의이혼을 밀어붙이다가 더 큰 압박을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폭언이 지속되는 관계에서는 “대화를 통해 풀자”는 시도가 오히려 폭언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여울 여성특화센터 윤보현 변호사는 “배우자폭언은 ‘때리진 않았으니 괜찮다’로 넘길 일이 아니라, 오랜 기간 누적되면 명백한 정신적 폭력으로서 이혼·위자료 판단에 반영될 수 있다”며 “여성 피해자는 스스로를 탓하며 버티기보다, 폭언의 반복 패턴을 기록으로 남기고 안전과 경제·양육 계획을 먼저 세운 뒤 법적 절차를 검토하는 것이 현실적인 보호 전략”이라고 조언했다.

황인석 빅데이터뉴스 기자 hi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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