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의 운명-1] 10년 후 비철금속판 영화 ‘카트’를 보시겠습니까?

채명석 기자

2026-03-08 15:00:00

3월 24일 고려아연 정기 주총서 회사 미래 결정
투자자의 선택 따라 회사의 미래는 크게 바뀔 듯
진정으로 기업가치를 높은 이들에게 회사 맡겨야

[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고려아연이 2026년 3월 24일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한다. 2024년부터 시작한 고려아연과 MBK파트너스·영풍 연합 간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이번 주총을 승자와 패자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분쟁 이슈를 분석하는 일은 이미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의견을 내놓았으므로 이를 반복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양 진영 간 갈등이 확산한 근본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특히 분쟁과 갈등이 고려아연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빅데이터뉴스>는 주총을 앞두고 이 문제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고려아연이 2025년 5월 31일 서울 강남의 한 키즈카페에서 개최한 ‘키즈 플레이’ 행사에 참가한 회사 직원과 가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6년 3월24일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에서 임직원의 기대를 저버린 지배구조 변화가 일어날 경우 사진과 같은 임직원들의 화목한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사진= 고려아연
고려아연이 2025년 5월 31일 서울 강남의 한 키즈카페에서 개최한 ‘키즈 플레이’ 행사에 참가한 회사 직원과 가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6년 3월24일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에서 임직원의 기대를 저버린 지배구조 변화가 일어날 경우 사진과 같은 임직원들의 화목한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사진= 고려아연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오늘 하루 잘 보내십시오. 고객님.”

2014년 11월 개봉한 영화 ‘카트’에서 배우들이 전한 대사의 하나다. ‘카트’는 대형마트의 계약직, 인턴, 파견직, 비정규직이라고 불리는 직원들이 부당해고를 당한 이후 이 부당함에 맞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2000년대 초반의 까르푸 파업, 후반의 홈에버 파업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카르푸, 홈에버는 이후 홈플러스가 되었고, 2025년 기업회생절차 신청에 이어 매각 절차에 들어가면서 매장 폐쇄 등으로 인해 직장을 잃은 홈플러스 직원들은 ‘카트’의 주인공처럼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코웨이, 네파, KT렌탈 등 소비재, 유통 분야에서 노조와의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성공적인 기업 가치 증대를 모색해 왔다. 홈플러스도 이해관계자들과 생산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회사 경영진과 긴밀하게 협력할 것이다.”(2015년 9월 7일, 언론 인터뷰에서)

“홈플러스 회생을 위해서는 삼일회계법인 조사보고서의 권고대로 인가 전 인수·합병(M&A)이 최선의 방법이며, M&A가 수월하게 진행되도록 기존 주주인 MBK는 2조5000억 원의 보통주 투자금을 무상소각 할 것이다.”(2025년 6월 13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일부 의원들과 비공개 면담에서)

두 발언의 주인공은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다. 2015년 홈플러스 우선인수대상자로 선정된 직후, 김 회장은 성취감에 도취한 성공인으로서 홈플러스 정상화를 자신했다. 10년이 지난 뒤, 김 회장은 홈플러스를 살리지 못한 실패자가 되어 M&A를 구걸하고 있다. 그런데, 업계 관계자들은 그의 발언에서 경영자로서 경영실패를 인정하고 사죄하려는 마음보다는 더 이상 빼먹을 것 없는 홈플러스를 빨리 손절하고 싶은 조급함만 엿보인다고 지적한다.

MBK는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인 7조2000억 원 규모의 홈플러스 M&A 거래에서 최종 승리했다. 대한민국 1호 사모펀드(PEF) 운용사로 칼라일 그룹과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등 유수의 해외 PEF 운용사를 제치고 거둔 성과라는 점이 주목받았다.

홈플러스의 원주인이었던 영국 테스코를 비롯해, 프랑스 까르푸와 미국 월마트 등 한국에 진출했던 글로벌 유통 공룡 기업들이 국내시장에 적응 못 하고 철수했다는 점도 토종 PEF MBK가 홈플러스 경영의 묘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렇게 MBK는 10년간 홈플러스를 끌고 왔다. 결과는 기업회생절차(워크아웃) 신청 및 매각이다. 경영에 실패했다. 토종 PEF는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갖지 말아야 했다는 후회만 남는다. 김 회장을 비롯한 MBK 주요 경영진은 미국 국적을 취득한 ‘검은 머리의 외국인’이다. 이들은 미국 PEF의 M&A 기법, 즉 거액의 차입금 회수와 LP(사모펀드에 자금을 제공하는 투자자)에 수익금을 돌려주는 데만 집중할 뿐 홈플러스의 발전은 관심 밖이었다. 그들은 국적을 떠나 그저 PEF일 뿐이라는 것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경쟁력을 훼손한 홈플러스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지 1년을 넘은 지금도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방황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체력은 더 떨어져 매각에 성공해도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큰 노력과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럼에도 새 주인을 찾지 못한다면 최악의 결정(청산)을 내릴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한다. ‘카트’ 속에선 매장이 존재했고, 파업과 협상 끝에 일부 해고 직원들은 복직하는 절반의 승리를 거뒀다. 현실에선, 홈플러스가 사라지면 종업원들은 직장을 잃는 안타까운 끝을 보게 된다. 손을 턴 최대 주주 MBK는 여전히 살아있고 말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홈플러스 비극은 MBK를 주인으로 맞아들이면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홈플러스뿐만 아니라 딜라이브(케이블TV)와 네파(아웃도어), 영화엔지니어링(플랜트) 등의 기업도 MBK가 인수한 뒤 실적이 악화했다는 점을 주목하자. MBK는 변명한다. 이들 기업 경영 실패의 원인은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경영진의 책임이라고. 이들은 대주주인 MBK가 선임하면서 회사를 정상화할 적임자라고 홍보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은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MBK를 기업 사냥꾼으로 존재하게 한 장본인은 누구일까. 바로 ‘주주’와 ‘투자자’다.

투자자들은 당연히 고수익을 추구하는 데, 투자 원금에 이자를 제때 상환하고, 거액의 배당금까지 꼬박꼬박 지급해 주는 MBK는 백골난망(白骨難忘)이다. 이미 MBK가 제시하는 장밋빛 숫자와 도표에 눈과 귀를 홀려 거액을 내놓은 투자자는 이들이 돌려주는 수익이 기업을 사들인 뒤 마른 수건을 짜내듯 유무형 자산을 내다 팔아 마련한 돈이라는 사실, 투자 원금과 목표이익을 모두 뽑아먹은 다음 껍데기만 남은 인수기업은 간단히 청산해 버린다는 사실은 관심이 없다. 퇴출당한 기업 종업원이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려 피눈물을 흘리는 동안, MBK와 투자자는 다음 사냥감(인수 대상기업)을 찾아다니며 기쁨의 흥분에 젖어있다.

그들이 말하는 다음 목표 가운데 하나가 고려아연인 듯하다. MBK가 고려아연을 표적으로 한 그것은 한때는 한 식구였으나 지금 갈등의 대척점에 서 있는 영풍과 손잡은 덕분이다. MBK·영풍 연합의 고려아연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는 진심으로 집요하다. 편집증 환자처럼 광적인 MBK·영풍 연합의 공세는 2025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또다시 공격을 밀어붙이며 2026년 3월 24일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에서 회사를 장악하려고 하고 있다.

투자자, 즉 주주는 이날 고려아연의 미래를 건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은 주주의 자유다, 다만, 고려아연을 지금까지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키워냈고, 성장 곡선을 그려 나갈 비전과 실행계획을 제시하고 실천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임직원의 지지를 받는 경영진이 누구인지는 이미 드러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구체적 실체도 없는 주주가치 향상이라는 이유를 들먹이며 기업 고유의 활동에 발목만 붙잡고, 오로지 배당금에만 혈안이 된 이들에게 우량기업 고려아연을 맡긴다면, 위에서 언급한 홈플러스의 쇠퇴 과정을 고스란히 반복할 우려가 크다. 이러면 10년 후에 국민은 고려아연 임직원이 주연으로 출연한 비철금속판 영화 ‘비트’를 상영할지 모른다.

재계 관계자는 “홈플러스의 과거와 현재에서 고려아연의 현재와 미래가 보인다. 고려아연으로선 적대적 M&A를 방어하는 게 시급한 당면 과제다”라면서 “고려아연의 주인이라면 눈앞의 고수익을 노리다가 회사의 가치를 훼손하기보다 영속적으로 동반성장 할 수 있는 방안을 선택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채명석 빅데이터뉴스 기자 cm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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