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지정학 쇼크' 리포트①] 통행료 고심 정유·석화업계...“수입국 변경, 신중한 접근 필요”

김유승 기자

2026-04-09 14:47:42

美·이란 휴전에도 이스라엘 공습에 해협 재봉쇄
통행료 논의까지 겹치며 상시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
정치권서 석유 수입 다변화 추진...미국 등 대안 검토
"원유 성질 달라져 수출 포트폴리오 변화...최선은 아냐"

호르무즈 해협 내 유조선 모습. 사진=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 내 유조선 모습. 사진=연합뉴스
[빅데이터뉴스 김유승 기자] 미국과 이란의 전격적인 휴전 합의로 안정세를 찾는 듯했던 중동 정세가 다시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에 의해 재차 폐쇄된 데 이어 거액의 통행료 부과 움직임까지 가시화되며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계에 ‘상시적 지정학 리스크’가 현실화됐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도입선 다변화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통행료 등을 감안하더라도 중동산 원유의 가격 경쟁력이 여전히 높아 업계 현실을 고려할 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석화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전날 발효된 미국과 이란의 휴전 합의에도 불구하고 호르무즈 해협은 하루 만에 다시 봉쇄됐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 지속과 이란의 보복 검토 소식이 맞물리며 긴장이 재차 고조된 영향이다.

더 큰 문제는 이란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해협 통행권의 무기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란은 선박 통행을 엄격히 제한하는 동시에 배럴당 1달러 수준의 통행료 부과를 추진 중이다. 초대형 유조선(VLCC) 한 척이 해협을 통과할 때마다 약 200만 달러(약 30억원)를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현재 해협 인근에 발이 묶인 국내 정유사 관련 유조선은 총 7척으로, 이들이 국내로 반입되기 위해서는 약 207억 원에 달하는 통행료를 지불해야 할 상황이다. 문제는 이러한 비용 증가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다. 통행료는 수입 원가의 약 1% 수준이나, 국내 정유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1.7% 내외에 불과해 수익성에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정유사들이 이를 제품 가격에 반영하면 기름값 상승은 물론 나프타를 원료로 하는 플라스틱·포장재·의료용 주사기 등 산업 전반으로 영향이 확산될 수 있다.

이 같은 우려로 인해 정치권과 업계 일각에서는 ‘중동 의존도 70%’를 낮추고 미국 등으로 도입선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2015년 82.3%에 달했던 중동 의존도를 2021년 59.8%까지 낮췄으나, 2023년 이후 다시 70%대로 상승한 바 있다.
다만 현실적인 제약도 적지 않다. 국내 정유 설비는 중동산 ‘중질·고황 원유’ 처리에 최적화된 구조로, 이를 기반으로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방향으로 고도화돼 왔다. 이러한 설비에 미국산 ‘경질 원유’를 대거 투입할 경우 공정 효율 저하와 함께 휘발유 과잉 생산 등 제품 포트폴리오 불균형이 발생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제성 측면에서도 차이가 뚜렷하다. 2025년 기준 중동산 원유의 수송 단가는 배럴당 1.87달러로, 미국산(3.93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통행료를 고려하더라도 중동산 원유의 가격 경쟁력이 여전히 유지된다는 평가다. 이는 중동 외 지역 평균 수송 단가(배럴당 2.99달러)와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운송 기간 역시 중동은 약 20일이 소요되는 반면 미국 등 타 지역은 두 배 이상 걸린다.

그런 만큼 전문가들은 원유 도입선 다변화를 단순한 대안으로 보기보다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장기적으로 신규 도입처 발굴과 함께 에너지 믹스 전환, 정유 설비의 체질 개선 등을 병행할 필요는 있지만, 업황과 구조적 특성을 고려할 때 중동 의존도를 무조건적으로 낮추는 것이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는 “중동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런 얘기들이 나오고 있지만, 우리가 구입할 수 있는 경질유가 그렇게 많지 않다”며 “미국산을 언급하지만, 미국이 우리에게 원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고도화 설비는 조 단위 투자가 필요한 시설인데 이를 어떻게 버릴 수 있겠느냐”며 “여기서 나오는 부산물들도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라 매우 유용한 산업 자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반세기 이상 중질유 최적화 시스템을 구축해 왔는데, 일부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이를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덧붙였다.

정유·석유화학 산업은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에 밀접하게 연결된 핵심 기간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012년 중국의 비료 산업 확대를 계기로 국내 비료 산업이 수입에 의존하게 되며 사실상 퇴출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유·화학 산업 역시 환경과 에너지 문제만을 이유로 축소될 경우, 2021년 요소수 사태와 유사한 공급망 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에너지 집약적이고 오염 산업이라는 이유로 부정적 인식을 받아온 정유·석유화학 산업이 종량제 봉투부터 병원의 일회용 주사기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중동 전쟁 이후 최고가격제 등을 검토하며 업계를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당시 우리가 큰 어려움을 겪은 것은 중국의 요소 공급 제한 때문이며, 이는 공급망을 외부에 의존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지금 상황도 유사하다. 중동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정유·석유화학 산업을 축소하면 오히려 중국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해당 산업이 국가 기관 산업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국민에게도 이를 명확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유승 빅데이터뉴스 기자 ky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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