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사 선정 RFP 발송 단계 진입…용인 클러스터·HBM 투자 재원 마련 포석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업계 등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미국 증시 ADR 상장을 위한 주관사 선정 작업에 착수, 외국계 증권사들에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했다. 지난해 12월 시장 안팎에서 미 증시 상장 추진설이 처음 제기된 지 약 4개월 만에 실질적인 준비 단계에 진입한 셈이다.
SK하이닉스 측은 "ADR을 포함해 다양한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검토 중"이라면서도 "공모 규모와 방식, 일정 등 세부 사항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ADR은 외국 기업의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JP모건·씨티뱅크 등 미국 현지 예탁기관이 발행하는 증서로 외국 기업이 미국 증시에서 주식처럼 거래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이번 ADR 상장을 통해 신주를 발행, 최소 10조 원에서 최대 15조 원 규모의 달러 자금을 끌어모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처럼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선 결정적 배경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인프라 청구서'가 있다. 조달된 자금의 최우선 투입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다. 당초 2019년 발표 당시 128조 원으로 추산됐던 클러스터 조성 비용은 원자재 가격 급등과 인플레이션 직격탄을 맞으며 600조 원 규모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자체 영업현금흐름만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수준에 이르자 가장 유동성이 풍부한 미국 자본시장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SK하이닉스는 시설 투자(CAPEX)를 대대적으로 끌어올리며 '초격차' 방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청주 M15X를 HBM 전용 생산 전초기지로 육성하기 위해 20조 원 이상을 쏟아붓고 올해 전체 설비투자 규모를 30조 원대 중반까지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핵심 거점인 용인 클러스터의 1기 팹 신규 시설 투자비 21조6000억 원도 2030년 말까지 우선 집행하기로 했으며 첫 클린룸 가동 시점 역시 당초 예정된 5월에서 2월로 3개월 앞당겼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지난 16일 엔비디아의 연례 개발자 회의 'GTC 2026' 현장에서 "ADR 상장을 검토 중"이라며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주주들에게 노출돼 더 글로벌한 회사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힘을 실었다.
하지만 자본시장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당장 대규모 신주 발행에 따른 기존 주주들의 '지분 희석' 우려가 도마 위에 올랐다. 앞서 SK하이닉스는 보유 중이던 자사주(2.4%)를 ADR 기초자산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피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에 직면하자 지난달 9일 지분 2.1%(12조2400억원 규모)를 전격 소각한 바 있다.
주주 환원을 내세워 대규모 자사주를 태운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다시 조 단위 신주 발행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최근 정부가 강력히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기업 밸류업' 흐름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신주 발행으로 인한 오버행(잠재적 매도 물량) 우려와 주당순이익(EPS) 하락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라며 "SK하이닉스는 이번 조달 자금이 차세대 AI 반도체 선점을 통한 압도적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한편 SK하이닉스는 이날 오전 10시 경기도 이천 본사에서 제78기 정기 주총을 연다. 주총 의장은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이 맡는다. 이번 주총의 핵심 안건은 재무제표 승인과 이사 선임을 비롯해,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 삭제와 전자 주주총회 도입 등 이사회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정관 변경안이다. 신기술 도입과 재무구조 개선, 전략적 제휴, 사업구조 개편, 인수합병 등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기 주식을 보유 또는 처분할 수 있다는 정관 변경 건도 안건에 올랐다. 이사 선임 안건도 다뤄진다. 사내이사로 차선용 미래기술연구원 원장이, 기타비상무이사에는 김정규 SK스퀘어 사장이 이름을 올렸다. 사외이사로는 고승범 전 금융위원장, 정덕균 서울대 교수, 최강국 법무법인 가온 고문, 김정원 김앤장 고문 등이 선임될 예정이다.
조재훈 빅데이터뉴스 기자 cjh@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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