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 D&A 50년-15] 구자원 회장, LG이노텍 방산 인수…'넥스원퓨처' 설립

채명석 기자

2026-07-17 09:00:00

10년 넘는 방산업계 불황 속 LG그룹 구조조정 차원서 방산 매각키로
계열분리한 LG화재에 인수 제안, 구자원 회장이 검토 끝 결정
2004년 7월 1일 방산 전문 업체 '넥스원퓨처' 출범 선포식 개최
10년 후 매출 규모 6배 이상 성장하며 세계적 방위산업체로 성장

LG그룹에서 계열분리되어 첨단 방위사업 전문 기업으로 2004년 7월1일 출범한 ‘넥스원퓨처.’ 사진= LIG D&A
LG그룹에서 계열분리되어 첨단 방위사업 전문 기업으로 2004년 7월1일 출범한 ‘넥스원퓨처.’ 사진= LIG D&A
[빅데이터뉴스 채명석 기자] 2000년대 초반 국내 방위산업체들은 10년 넘게 불황에 허덕이고 있었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는 그해 국내 방산물자 완성장비 360개 품목의 국산화율이 평균 69.81%에 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는 속 빈 강정에 불과했다. 사실 국내 방위산업체들은 방산물자를 조립 생산하거나 모방하는 방식으로 재래식 무기의 조기 전력화에 치중했다. 첨단 무기의 독자 개발 프로젝트는 뒷전으로 밀려난 상태였다.

그 이유는 우리 군이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신속한 무기 도입을 원했고, 독자적으로 무기를 연구 개발하는 데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이었다. 이런 까닭에 단기적으로 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해외 무기 직구매가 크게 늘었다. 다만, 장기적으로 무기생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라이선스 생산이 추진됐다.

선진국에 핵심 기술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방위산업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는 기술 경쟁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정부의 주요 국방사업 실적을 종합한 <1908-2002 국방정책>은 2001년 현재 국내 방위산업계 가동률이 50.3%라고 밝혔다. 이는 일반 제조업체 가동률 73.2%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수치였다. 국내 방위산업체의 미미한 가동률은 10년째 지속됐다. 재래식 기본 병기류의 군 소요 물량이 충족된 상태이므로 방위산업체의 가동률은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방위산업계는 해마다 1,000억 원 정도의 적자를 내고 있었다. 업계 불황은 개선되기는커녕 갈수록 악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일각에서는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국가 전략산업인 방위산업이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1976년 금성정밀공업으로 출발해 수차례 매각과 회사 합병 등이 잇따랐지만 LG이노텍은 국내 최대 방위산업체로서 긍지와 위상을 갖고 우리 군의 방위력 증강에 일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 방위산업이 처한 시장 환경 및 산업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자원과 역량의 집중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가 필요했다. 이런 여건 속에서 사업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던 LG그룹은 LG이노텍 방위사업부문을 분리해 1999년 LG그룹에서 계열분리한 LG화재해상보험에 매각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LG이노텍의 양대 사업부문이었던 전자부품사업과 방위사업에 대해 각 사업별 특성을 고려한 전문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있어 왔다.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이 되려면 사업별 전문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구자원 회장은 당시 LG화재 회장으로서 어떤 사업보다 공익성이 강한 보험업계에 종사하면서, 평소 기업의 사회적 기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울러 방위산업체가 후방에서 우리 군의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지원하며 국가와 사회를 위해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고의 기술력과 품질로 자주국방을 책임져 온 LG이노텍 방위사업부문의 사업 활동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LG그룹이 인수 제의를 했지만 구자원 회장의 입장에서는 섣불리 수락할 일은 아니었다. 당시 방위산업계는 구조적 불황을 겪고 있었고 경영 여건이 호전될 기미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 전반의 면밀한 분석과 검토 끝에 구자원 회장은 방위산업체 경영이 당장은 어렵더라도 인재 양성과 기술력을 갖추기 위해 아낌없이 투자한다면 세계적인 군수업체와 당당히 경쟁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투철한 기업가 정신과 사업보국의 경영이념을 갖고 있던 구자원 회장은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LG이노텍 방위사업부문을 인수하기로 뜻을 모은 것이다. 이는 LG그룹과의 윈윈 전략이 맞아떨어져 곧 인수 계약이 성사됐다.

새롭게 출범하는 회사의 이름은 ‘다가오는 미래, 최고의 첨단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의미를 담아 ‘넥스원퓨처’로 정해졌으며, 유도 수중무기, 레이다·전자전 및 통신장비 등 방위사업부문 사업 일체를 그대로 승계했다. 자산 2700억 원 및 부채 2000억 원을 포함해 양도가액은 738억 원으로 결정됐다.

2004년 7월 1일을 기해 새로운 비상(飛翔)이 시작됐다. 먼저 첨단 방위산업 전문업체로의 위상을 굳건히 하고자 ‘넥스원퓨처(Nex1 Future)’의 출범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자리를 마련했다. LG강남타워 아모리스홀에서 임직원 및 대내외 귀빈이 참석한 가운데 기업 이미지 통합(CI) 선포식을 갖는 동시에 평석태 사장의 취임식을 거행했다.

평석태 사장은 1976년 금성정밀공업 창립 멤버로 입사해 직원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방위산업 대표 전문경영인이었다. 그는 사업 예측이 빠르고 트렌드를 정확히 읽어내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난 경영자로 정평이 나 있었다. 대주주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평석태 사장은 방위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경영활동을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방위산업의 특성에 맞춰 중장기 전략을 새롭게 마련하는 동시에 회사의 질적 성장을 도모했다.

단일 회사로서 독자적인 사업을 영위하게 된 만큼 내부 의사결정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평석태 사장은 부임 직후부터 스피드경영을 중시하며 직원들과 끊임없는 소통을 강조했다.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은 업무 효율성을 높여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또한 본부별 책임경영체제를 도입, 경영 성과를 중시하는 한 단계 성숙한 조직문화를 정착시켜 나갔다.

넥스원퓨처 출범 전부터 회사는 임직원에게 최상의 보상을 약속했다. 그러나 LG그룹에서 분리되는 것을 위기로 받아들이는 직원들도 적지 않았다. 불안감과 침체된 분위기는 한동안 이어져, 일부 직원에게 박탈감마저 안겨줬다.

사업 분리 과정에서 회사를 그만두거나 전자부품사업부로 소속을 변경하는 직원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분리 이후 넥스원퓨처는 전문 방위산업체로 거듭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했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그대로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대다수 임직원은 사업 분리가 진정한 방위산업 전문업체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룹의 규제로 추진하지 못하던 사업들을 향후에는 얼마든지 펼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사업 분리 전, 그룹 내에서는 방위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해 선택과 집중이라는 논리에 의해 주요 사업에서 배제되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 여파로 추진 중이던 민수사업이 지원 부족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거나 성장 가능성 있는 사업이 자매회사로 이관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혼신의 힘을 쏟아 사업 활성화에 매진하던 임직원들은 허탈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이제 과거에 있었던 아픈 기억에 불과했다. 넥스원퓨처는 공식적인 사업 일정을 정하고 대내외에 제시할 비전을 새로이 수립하는 등 본격적으로 독자 사업화에 나섰다.

2004년 넥스원퓨처의 탄생은 LG그룹과 LIG그룹 모두에게 득이 된 최고의 의사결정으로 평가됐다. 넥스원퓨처는 독자적 경영 시스템을 갖춰 방위산업 전문 기업으로 성장을 거듭하면서 분리 당시보다 매출 규모가 6배 이상 성장(2015년 기준)한 세계적 방위산업체로 성장했다. LG이노텍 또한 핸드폰 전자부품 전문업체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며 2015년 매출 6조원을 달성하는 LG그룹 효자 계열사로 성장했다.

<자료: 나라지키기 40년 LIG넥스원>

채명석 빅데이터뉴스 기자 cms@thebigdata.co.kr
<저작권자 © 빅데이터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