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안정에도 갈 길 먼 석화 구조재편…정부 역할론 재부상

김유승 기자

2026-06-29 15:46:19

유가 안정세 접어들자 석화 구조재편 논의 재부상
대산 1호 빼면 진전 없어…이해관계 인한 교착 지속
업계 눈치 게임 지속에 정부 주도 조정 시급 지적

서산 석유화학단지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산 석유화학단지 모습. 사진=연합뉴스
[빅데이터뉴스 김유승 기자] 미국과 이란의 협상 타결로 국제유가가 안정세에 접어들면서, 전쟁 여파로 지연됐던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구조재편 논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은 각자의 이해관계로 인해 눈치싸움을 이어가고 있어 구조재편 진도가 지지부진한 만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사업을 주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정상화되면서 국제유가는 약세로 돌아섰다. 실제로 국내 수입 원유의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현물시장의 두바이유 가격은 한 달 만에 배럴당 98달러에서 64.4달러로 34.3% 급락했다. 정부의 제7차 석유제품 최고가격 인하 조치까지 더해지면서 서울 지역 휘발유·경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각각 29.2원, 28.9원 내려 4월 초 이후 약 두 달 만에 리터당 1900원대로 내려앉았다.

대외적인 유가 불안은 한시름 놓은 만큼, 이제는 지연됐던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납사분해시설(NCC) 생산능력을 약 370만 톤 감축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구체적 추진이 확정된 것은 롯데케미칼·HD현대케미칼의 대산 1호 NCC 통합(110만 톤)과 여천NCC·롯데케미칼의 설비 조정(140만 톤) 등 약 250만 톤에 불과하다. 여수산단 2호 프로젝트는 참여 업체 간 지분 산정과 이해관계 충돌로 협상이 장기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울산 지역 사정은 더욱 복잡하다. 에쓰오일이 9조원을 투입한 '샤힌 프로젝트'의 상업 가동이 임박하면서 구조재편 방향성과의 충돌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돼서다. 일각에서는 대규모 신규 설비가 추가되는 것이 구조개편의 방향성과 상충된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반면 에쓰오일 측은 최첨단 설비를 통한 원가 경쟁력 확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 역시 이해관계가 상충해 자발적 통합이나 설비 조정 논의를 진척시키기 어려운 환경이다.

그런 만큼 업계에서는 구조재편 지연의 원인으로 '눈치 게임'을 입을 모아 지적한다. 석유화학은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이 때문에 먼저 설비를 줄였다가 향후 호황이 돌아왔을 때 경쟁사에게 시장점유율만 내어주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이다.

그러나 업계 추산에 따르면, 휴업이나 폐쇄 없이 100만 톤 규모의 NCC 설비를 과잉 상태로 유지할 시 개별 기업은 연간 1500억 원 안팎의 막대한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유가 변동 과정에서 누렸던 일시적인 래깅(재고평가이익) 효과도 끝나가고 있다. 이에 따라 다가오는 3분기에는 수익성이 다시 악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우려는 이미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최근 한국기업평가는 LG화학의 신용등급을 기존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로 한 단계 낮춘 바 있다. 한국신용평가 역시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 전망을 'AA-(안정적)'에서 'AA-(부정적)'로 하향 조정했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적극적 중재를 촉구하는 분위기다. 구조재편을 기업들의 자율적인 시장 논리에만 맡겨두면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어서다. 이는 결국 국내 석유화학 산업 전반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석화업계 한 관계자는 "김 장관이 전쟁 발발 전까지만 해도 석유화학 사업재편의 필요성을 직접 언급하며 전면적인 메시지를 내놓는 등 적극적으로 임했으나, 전쟁 국면을 거치면서 원유 수급과 유가 안정 등 급박한 현안에 매몰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구조조정 논의에 손을 놓은 모양새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구조재편에 앞장섰다가 독박 손실을 보게 되지 않을까 우려할 수밖에 없다"며 "업계의 눈치싸움만으로는 이 교착 상태를 절대 풀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업계 전반의 구조재편을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정부는 올 3월 화학산업 혁신 얼라이언스 총회를 열고, 4월에는 석유화학 특별법 시행령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키며 구조재편 지원 기반을 닦았다. 이를 통해 사업재편과 고부가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인허가 특례와 환경기준 초과 특례를 신설했다. 기업결합 심사·공동행위·정보교환에 관한 공정거래법 특례 등도 함께 마련했다. 그러나 전쟁 국면을 거치면서 관련 논의는 사실상 동력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김유승 빅데이터뉴스 기자 kys@thebigdat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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